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이스 Mar 26. 2022

건강이냐, 예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늘고 길게 살게 되지 않을까





  처음부터 내 체력이 이 정도로 바닥이었던 것은 아니다. 운동 마니아였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집 주변 산을 일주일에 한 번은 가뿐히 올랐고, 역시나 아빠를 따라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같이 차는 게 일상이었다. 5학년 때 인가는 방과 후에 또래 남자아이들과도 축구경기를 했었는데, 남자아이의 공을 악착같이 빼앗아 뿌듯했던 기억도 난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에는 댄스 동아리에 들어 걸스힙합을 췄었다. 엄마가 하시는 말로는 나의 담임 선생님이 “그레이스는 조금만 더 공부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을 것 같으니, 댄스팀 하는 걸 말려달라”는 이야기도 들으셨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종종 이 사건을 나에게 하시는데, 그때 자기가 오히려 담임 선생님을 말렸다고, 하고 싶은 거 하게 그냥 두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후에 담임 선생님이 나의 춤추는 것을 보시더니 엄마에게, “어머니, 그레이스가 잘하긴 잘하대요.”라고 하셨다며 뿌듯해하신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당시 댄스팀에서 내가 키만 큰 허우대이고, 내가 잘 추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약간 민망해진다. 여하튼 살아가면서 내 체력이 약하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0대~20대 까지야 가장 튼튼할 나이라서 체력이 약하다는 걸 못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어릴 때 운동했던 걸 “라떼”삼아 이야기하는 게 의미 없다는 생각도 든다.






출처: 삼성생명




  어쨌든 최근 뮤지컬 작업을 했던 것들을 떠올리면 내 체력이 얼마나 저질이 되었는지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3년 전쯤부터 매번 뮤지컬 공연이 끝날 때쯤마다 병원 갈 일이 생겼다. 3년 전에 올렸던 뮤지컬 작품 때는 준비 중에 기력이 너무 딸려서 링거를 맞고 왔고, 공연 시작 직전에는 원인 모를 손바닥 발열과 가려움 때문에 엄청 고생을 했다. 그다음 해, 2020년에는 공연이 끝나고 이석증이 왔다. 며칠을 어지러움에 시달리고 병원을 다녔다. 이제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석증이 낫고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별건 아니지만 시간을 정해서 달리기를 하거나 집에서 운동 영상을 보며 홈트를 했다. 일주일에 3회 이상은 했다. 좀 체력이 올라왔다고 생각했다. 4달 이상을 지속했으니 꽤 훌륭했다. 그리고 작년, 2021년 올렸던 작품 때는 놀랍게도 몸에 이상이 없었다. 운동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품이 끝난 바로 다음날 교통사고가 났다. 꽤 크게. 고속도로에서 뒤차가 시속 60km 이상 달리다가 우리 차가 멈춘 것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박았다. 그 사고로 꽤 오랜 시간 고생했는데 더 억울한 건 교통사고로 운동을 쉬는 동안 체력이 다시 저 바닥, 원점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출처: 치즈덕






  게다가 몇 년 전부터는 건강보조제를 챙겨 먹기 시작했는데, 약이 몸에 잘 받고, 안 받는 게 느껴진다. 선천적으로 위가 안 좋은 나는 3년에 한 번 하는 건강검진 때마다 “위염”이라는 항목을 달고 살았다. 위염이라는 진단을 세 번은 봤으니, 적어도 9년은 위염인 채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겨울에는, 추워서 몸도 움츠리다 보니 밤마다 체하는 건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랬던 내가 한 건강식품 영상을 보고 유산균을 먹어보기 시작했는데 더부룩함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유산균의 먹이라는 프리 바이오틱스와 함께 먹고는 큰 효과를 보았다. 꿀, 홍삼 이런 것들은 대중교통을 1시간 이상 타야 할 때 꼭 챙겨 먹는 것이 되었고, 매일 아침 비타민과 오메가 3을 챙겨 먹으며 더 챙겨야 할 것은 없나 검색창을 두리번거린다. 커피는 오후 3시 이후에 먹지 않기로 알람을 맞춰두었고, 저녁형 인간이라 밤 9시쯤부터 정신이 말짱해지지만 숙면을 위해 12시 전에는 누우려고 노력한다.







  때로 유명한 뮤지션들과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예술에 몰두하다가 일찍 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럴 때면 예술과 건강, 두 갈래의 길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렇게 열심히 건강을 챙기며 살지만 멋진 작품 하나 세상에 내놓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일까, 만약 그 작품이 새벽에나 잘 써진다면, 나는 오후 3시 넘어서 커피를 마시는 삶을 택할 것인가, 12시 전에 잠자리에 드는 삶을 고수할 것 인가하는 나름 진지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한없이 유리멘탈이 되어버리는 나를 내가 잘 알기에, 예술보다 조금 더 건강을 챙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살게 된다. 모든 예술가가 다 그런 건 아니니까. 그렇게 극단적으로 삶을 살다 간 예술가들이 더 주목을 받으니 그런 이야기가 더 많이 퍼지는 거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또 이렇게만 이야기를 끝내기엔 나는 너무 게으르다. 오늘도 게으른 나 자신과 싸워 이겨야만 운동을 하겠지. 적어도 나에겐 ‘건강한 몸에는 좋은 작품이 따라올 것’이라는 말이 해당된다고 믿고 오늘도 운동해보자 하고 나를 계속 타일러 본다.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재즈 공연을 보러 가게 됐을 때 대처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