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 어플의 이면
베를린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했던 공통적인 얘기가 있다. 베를린의 데이트 시장은 정말 거지같다고.
모두가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결국에는 혼자 남는편을 택하게 된다고.
유학 도중 싱글이 된 나는 주변 친구들의 필수템인 데이팅 어플을 깔았다. 내가 알고 있던 데이팅 어플은 틴더가 유일했지만 이미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범블이나 힌지라는 어플이 굉장히 보편화 되어있었다. 캘리포니아 출신 친구 A는 베를린에 오자마자 모든 데이팅 어플을 깔았고 각각의 특징을 브리핑 해주기까지 했다 ㅎㅎ
의심반 기대반으로 어플을 깔고 나서 곧 바로 현타가 왔다. 프로필 사진을 고르는 것도 낯간지러운데 물어보는 건 또 어찌나 많은지, 마치 이 정도 정성도 들이지 않고 사람을 만나려 했어? 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구구절절 인적 사항을 입력하고 나니 드디어 오른쪽, 왼쪽으로 넘기며 상대방을 선택하는 익숙한 인터페이스가 나왔다.
수많은 젊은이 들이 모이는 베를린 답게 짝을 찾아 헤매는 싱글들이 시시각각 어플에 가입한다. 즉 pool이 어마어마 하다는거다. 그러나 매칭이 된다고 해도 잠수를 타는 경우도 흔하며, 한두번 만나다 흐지부지 되는 경우도 많다. 데이팅 어플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 편리함 때문이다. 새로운 데이팅 상대를 언제든지 쉽게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굳이 한명의 데이트 상대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는 셈이다. 이는 마치 쇼핑 카트에 끊임없이 물건을 담고나서 결국 아무것도 결제하지 않고 빈손으로 마트를 떠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이러니 한것은 데이팅 어플에 신물이 나서 삭제를 했다가 막상 오프라인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가 어려워 다시 온라인 세계로 뛰어들게 된다는 거다. 많은 베를리너들은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는 겨울 즈음 데이팅 어플을 깔았다가, 여름이 다가오는 4월이 되면 어플을 삭제한다. 파티와 술이 있는 곳은 언제나 새로운 만남이 따라오기 마련이니깐.
어플이 싱글들의 데이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비단 베를린 뿐만은 아닌것 같다. 뉴욕에서 온 친구M은 미국도 베를린과 다르지 않다며 좋은 사람을 만나는 건 하늘에서 별 따기라고 했다. 스몰 톡이 훨씬 자연스러운 미국이나 독일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게 좀 더 쉽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 재밌는 서베이. 의외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만남을 통해 커플이 된다!..
베를린에서 싱글들이 상처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많은 이들이 짧게 베를린에 머물다 떠난다는 거다. 학생과 구직자들은 베를린에 뼈를 묻기 위해 온다기 보다 젊은시절 잠깐 공부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러 온다. 이후 많은 이들이 다시 베를린을 떠나거나 다른 독일의 도시로 이사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서울에서 서울 토박이를 찾기 어려운것 처럼, 베를린에서도 베를린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을 만나기가 희귀하다. 다른 도시 출신 독일 친구들도 20,30대 젊음을 즐기기에 베를린 만한곳은 없다고 하지만 파트너를 만나 정착을 하거나 가족이 생기면 다른 도시로 떠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평일에는 직장에 치이고 퇴근후에는 취미생활에 시간을 쏟아야 하며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위해 자기개발까지 해야하는 바쁘디 바쁜 현대인들에게 간편히 손가락을 통해 매칭하고 대화를 이어나갈수 있다는건 얼마나 편리한가. red flag가 확인되는 즉시 대화를 종료하거나 잠수를 타면 그만이라 특별한 에너지 낭비도 없다. 새로운 사람과 매칭하여 또 다른 데이트를 하면 그만이니깐, 슬퍼할 겨를도 없고 감정이 쉽게 소비되고 충전된다.
나 또한 어플을 쓰며 이런 저런 인연들을 만났지만, 옛말 틀린거 없다는 거 하나는 배웠다
Easy come, easy go. 쉽게 만난 인연들은 떠나는 것도 쉽다는 것. 데이팅 어플 유저들도 비슷한 단계를 겪었는지, 범블 그리고 대부분의 데이팅 어플을 보유한 매칭 그룹은 상장이후 주가가 엄청나게 떨어졌다. 다만이 회사들의 실적이 부진하다는 것뿐이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데이팅 어플을 손에 쥐고 있을것 같다는생각이 든다. 항상 새로운 것을 좆는 대도시사람들의 속성과 편리함의 콤보를 포기 하기 어렵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