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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May 19. 2019

스페인 사람들은 샌드위치를 어떻게 먹을까?

스페인식 샌드위치 보카디요와 함께, 엘 브리얀테 



12월, 마드리드의 아침 8시는 어두컴컴하다. 소란스런 거리는 조용해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몇 안된다. 이렇게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거리에 나온 이유는 마드리드를 떠나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하면서도 고요함이 느껴지는 여러 색깔이 담긴 이 도시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보기 위해 모처럼 일찍 일어나 거리로 나왔다. 하지만 이 시간 가게 문을 연 곳이라곤 카페와 베이커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모처럼 부지런히 마드리드를 다니고 싶지만 기력이 딸려 든든한 아침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가볍게 빵만으론 아쉽다. 그럴 땐 보카디요가 정답이다. 




‘보카디요(Bocadillo)’는 스페인식 샌드위치이다. 바삭한 바게트빵 안에 오징어 튀김, 하몽이나 치즈를 넣어 먹기도 하는데 가장 인기가 많은 샌드위치는 오징어 보카디요(보카디요 데 깔라마레스)이다. 안에 들어있는 오징어만 쏙쏙 빼먹으면 먹다 뱉을 정도로 짜지만 바게트빵과 함께 먹으면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여기에 맥주만 있으면 미슐랭 레스토랑이 울고 갈 정도이다. 샌드위치라고 하면 저렴하고 가벼운 식사라 생각하지만 워낙 맛있고 대중적인 음식이라 공항, 기차역, 버스터미널 등 안 파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스페인에서 보카디요란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먹을 수 있는 식사이다. 두둑히 먹고 싶을때도 좋고 시간이 없을 때도 좋다. 돈이 없을 때도 안성맞춤이고 우울할때도 보카디요 한 입이면 딱이다. ‘우울’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생각이 나는 이야기지만 수년전 어느 여름 스페인에 갈 일이 있었다. 한창 태풍이 많이 불때였는데 여행 가는 것만 신났지 기상악화는 관심사 밖의 일이었다. 어떤 도시를 경유해서 갔는데 ‘마드리드’에 도착을 하고 보니 나만 무사히 도착하고 정작 내 캐리어는 오지 않은 것이었다. 귀찮다고 지갑이며 옷이며 화장품까지 모두 캐리어에 넣었더니 캐리어는 없고 내 몸뚱아리만 마드리드 공항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주머니 안에는 푼돈 몇푼이 있었는데 그게 유일한 마드리드 동앗줄이었다. 그 푼돈으로 사먹을 수 있는 것은 츄러스와 보카디요였는데 그때 원없이 츄러스와 보카디요의 세계를 향유하였다. 오징어를 질근질근 씹어 먹으며 하염없이 캐리어를 기다리는 내 자신이 처량하기도 했지만 보카디요가 너무 맛있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마드리드 아토차역에서 8분 정도 거리에 있는 ‘브릴란트’는 보카디요를 맛있게 만들기로 유명한 가게이다. 보카디요로 유명해서인지 입구에서부터 문에 커다란 보카디요 사진이 쭉 붙여져있다. 실내에는 사람 키만큼 커다란 보카디요 인형이 자리잡고 있고 한켠에는 2명의 주방장이 오징어 튀김을 산처럼 쌓은채 만들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보카디요를 사랑하는지 그 이른 시간에도 앉아있는 사람들 모두 보카디요 하나씩 입에 물고 오물오물 먹고 있었다. 바 테이블석에 앉아 메뉴를 둘러 보니 오징어 보카디요 외에도 치즈, 하몽 등 다양한 재료가 안에 들어간 보카디요가 보인다. 바테이블 맞은편을 보니 하몽, 피자 등 여러가지 요리를 판매하고 있다. 생각 같아선 모두 하나씩 맛보고 싶지만 그래도 이 가게의 간판 요리인 ‘오징어 보카디요’가 가장 먹음직스럽게 보여 하나 시키고 잠시 기다렸다. 



약 5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꽤 빠른 시간 내 주문한 보카디요가 푸짐하게 나왔다. 방금 튀긴 오징어 튀김은 빵에서 튀어나올 정도로 한가득 들어있다. 보카디요 안에 들어있는 오징어가 짜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바게트빵과 함께 먹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튀긴 오징어에다 마요네즈를 뿌려서 함께 먹으면 간단하게 한끼 식사가 해결된다. 바삭한 오징어 튀김이 빵과 함께 물어 먹으면 통통한 오징어살이 쫄깃하게 느껴진다. 보카디요 하나가 큰 손바닥 두개 만해 양이 꽤 많은 편이다. 보카디요 하나를 전부 그 자리에서 먹기가 벅차 반쪽을 남겨 놓으니 종업원이 와서 “포장해줄까?”라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니 길다란 바게트 봉투에 남은 보카디요를 쓱 넣어 건넨다. 보카디요를 둘둘 말아 캐리어 한켠에 넣고 조금이라도 마드리드를 더 가까이 보러 가는 사이 마드리드의 환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4년 전 공항에 캐리어 없이 혼자 있을때도 그렇고, 오늘처럼 나홀로 아침같지 않은 컴컴하고 추운 날 어김없이 보카디요를 먹는다. 돈 없고 시간 없고 추울때 딱 먹기 좋은 빵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뱃심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어딘가 시간에 쫓길때, 불안할때, 피곤할때 정신력으로 버틴다고 하지만 그 정신력도 모두 뱃심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보카디요 하나, 아니 반만 먹어도 아주 빠른 속도로 배에 기합이 들어간다. 서민들의 빵 ‘보카디요’는 내게있어 눈물 젖은 빵이 아닌 ‘눈물을 닦아주는 빵’이다. 이제 스페인에서 무슨 일을 겪어도 좀처럼 두렵지 않다. 그저 내 호주머니에 보카디요 하나 사먹을 푼돈만 있다면 그 뱃심으로 무엇인들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엘 브리얀테 (El Brillante)

위치 아토차역(식물이 많은 부근)에서 나와 Calle de Méndez Álvaro 쪽으로 간다. 아토차역 앞 초록 잔디밭을 뒤로 하고 바라보면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 보인다. Plaza del Emperador Carlos V거리로 가면 엘 브리얀테 간판을 찾을 수 있다. 


주소 8, Plaza del Emperador Carlos V, 28012 Madrid, 스페인

시간 07:00~24:00

전화 +34 915 28 69 66

홈페이지 http://barelbrillante.es/

가격 오징어 보카디요(보카디요 데 깔라마레스) 6.5€



* 흩어지는 순간은 기억하고자 기록합니다.

책 <맛있는 스페인에 가자>에서 발췌하였습니다.

@traveler_jo_

* book_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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