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우스 디자이너는 포트폴리오를 못 만들 거라고요?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말하는 디자이너의 성장방향

by 손바닥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나의 성장을 위해
무조건 에이전시 만이 답은 아닙니다.


모든 디자이너의 고민 중 하나는 바로 더 나은 결과물, 더 나은 크리이에티브 일 것입니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로 항상 '더 발전된 작업물'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일각에서는 에이전시가 아닌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크리에이티브보단, '돈'을 선택한 사람으로 치부받기도 합니다.


가끔 그런 시선을 받을 때면 좀 -아주 사알짝- 기분이 나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하우스 디자이너'도 인하우스 나름대로 '더 나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결과물에 대한 욕심은 에이전시나 인하우스나 모두 같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결과물을 내서 더 좋은 크리에이티브로 우리 제품을 소개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하우스냐 에이전시냐는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하우스냐, 에이전시냐는
그 디자이너의 성장성을 결졍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하우스에서 근무하게 되면, 에이전시에 비해 '완전히 디자인만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흔히들 말하는 잡무 말이죠, 뽑아도 뽑아도 생성되는 바로 그 잡무- 하지만 생각을 좀만 열어두면, 바로 그 잡무가 '디자인의 시작점'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금융계열 회사로 신용평가 업무를 주 사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용평가를 통해 수집된 기업정보를 정보이용요청자(aka.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업도 겸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배정받았던 사업부는 앞서 언급한 정보 제공 서비스를 관리하는 부서였습니다. 쉽게 말해 서비스관리부죠. 서비스 관리부에서는 별별일들이 많이 펼쳐집니다. 일단 (1) 서비스 문의 전화가 미친 듯이 옵니다. 우리야, 우리 회사의 직원이기 때문에 서비스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사용하지만, 고객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설명을 해주고 이해시켜야지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2) 서비스 개선점도 확인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오류가 있는 부분을 체킹 하고, 그 부분을 어떻게 고치고 업데이트할지에 대한 방향성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서비스 개선을 위해 it부서와 지속적으로 협업을 해야 하죠.


그 밖에도 (3) 신규 서비스 개발도 진행해야 합니다. 우리 서비스가 언제까지나 시장에서 먹혀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서비스는 항상 망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유입(MOU)이 갑자기 확 떨어질 수도 있고, 경쟁사가 우리 서비스를 벤치마킹해 비슷하지만 더 나은 서비스를 출시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서비스 사용자, 고객의 마음은 항상 갈대 같기 때문에 언제고 우리 서비스를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저는 저희 고객님들을 사랑합니다-


이걸로 업무가 끝난다면 좋겠지만 또 다른 일들도 많이 발생합니다. 저런 굵직굵직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선 결제문서도 써야 하고 피피티도 만들어야 하고 빗발치는 항의전화도 받아야 하며, 각종 회의부터 외부고객 미팅까지 정말 신경 써야 할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누가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칼퇴한다고 그랬죠? 쥬륵ㅜㅜㅜㅜㅜ 에이전시나 인하우스나 일이 많은 곳은 칼퇴하기 어렵고,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숙제(크리에이티브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는 모두 같습니다.-




총 업무 시간대비 디자인에 할애되는 시간이 적습니다.
하지만 '적다'일 뿐이지 이게 '성장할 수 없다'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디자인을 방해하는 일'로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가끔 디자이너에게 인하우스는 에이전시만큼 디자인에 집중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며, 인하우스에 가면 디자인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확실히 위의 일들을 모두 처리하려면 총 업무시간 대비 디자인에 할애되는 시간이 -에이전시에 비해- 적습니다. 하지만 '적다'일 뿐이지 이게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없다'로 연결되진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업무들 사이에서, 저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었으니 말이죠.


대게, 디자이너는 '오로지 디자인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회사를 가던, 한 가지 업무만을 하긴 매우 어렵습니다. -에이전시를 가도, 클라이언트를 상대해야 하고 시니어가 되면 프로젝트 총괄도 해야 합니다. 나중엔 제품 제작 단가까지도 비교하게 될지 모르죠- 대신 주어진 업무에서 어떻게 '성장의 지향점'을 찾을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이전에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말하는 인하우스 디자인 이라는 글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저는 '(2) 기획에 치중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스타일입니다. 완벽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내면 좋겠지만 '시각적인 완성도'만큼이나 '기획의 완성도' (aka. 시장에서 얼마나 쓸모 있는지)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시각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일만큼이나 사업의 이면까지도 꼼꼼하게 알아야 합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하면 될까요? 그건 너무 편협한 생각일지 몰라요.
모든 일에서 디자인의 시작점을 찾아보세요.


저는 서비스관리부에서 고객-빗발치는 항의-전화를 자주 받았습니다. 그 전화를 통해 저희 서비스 고객층의 연령대를 알 수 있었고, 그들이 주로 어려워하는 부분이 '우리 서비스의 어떤 점인지'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주간 전화를 받다가, 고객들의 문의사항들을 정리하고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안내서를 담은 콘텐츠를 카드뉴스 형식 디자인해 회사 블로그에 발간했습니다. -이게 이어져서 저는 4년째 회사 업무 소개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고, 약 400여 편의 콘텐츠를 만들어냈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이죠. 허허-


그리고 고객이 같은 문의로 전화를 줄 때면 "이 부분은 이렇게 해결하면 됩니다, 관련해서 설명안내문 있는데 문자로 발송드리겠습니다"와 같이 업무에 적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고객 문의에 좀 더 효과적으로 응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동일 문의를 여러 사람이 길게 응대하지 않게 되면서, 업무에 들어가는 시간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콘텐츠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각광을 받고 많은 콘텐츠 디자이너분들이 계시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콘텐츠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바야흐로 4년 전- 하지만 그때, 고객의 문의 전화를 받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이를 디자인의 시작점으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효과는 확실했고, 저는 덕분에 회사의 온갖 소개자료를 전부 다 손대볼 수 있었습니다. -졸지에 편집디자인 업무를 수두룩, 퇴근시켜 주세요 부장님- 작게는 새로운 서비스 기능을 알리는 디자인부터, 크게는 신규사업을 입찰할 때 사용될 사업소개서, 발표 ppt까지 전부 제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고객들이 불편해하는 지점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서비스와 관련된 문의 전화는 이후 서비스 개선점을 도출하는 기획 방향으로도 연결됩니다. 서비스에서 오류가 자주 나는 부분은 데이터 상의 문제도 있지만, 고객이 '그 서비스의 그 부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계속적으로 문의전화를 받다 보면, "이걸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 점을 "내 디자인으로 해결할 순 없을까?"로 확장되게 됩니다. 디자이너에게 불편함이란, 해결해야 할 대상이 되며 이때, 크리에이티브가 가장 빛날 수 있습니다.


아이콘의 배치, 메뉴의 위치, 의미가 헷갈리는 아이콘들의 정리, 헷갈리는 UX라이팅 정리 등 간단하고 사소한 부분들부터 정리해 나갔습니다. 서비스 자체를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고작 만들어진 서비스를 관리하는' 업무에 불과했지만, 이런 개선점들을 공부하는 건 분명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결국 나중에 서비스 기획의 영역까지 발을 넓힐 기회를 얻게 됐고,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에 신규 서비스를 기획 / 디자인하여 상용화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인하우냐, 에이전시냐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디자이너로서 성장하고 싶다면 말이죠.


물론, 인하우스디자이너이기에 '디자인에만 집중적으로 할애할 시간 -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이란, 일러스트 포토샵등을 붙잡고 하나하나 시각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행동-'은 확실히 적었습니다. 워킹시간은 한정적이고, 해야 할 일들은 디자인 외에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디자인이 필요한 부분, 디자인으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을 찾았고, 확실하게 저를 디자이너로서 성장시켰습니다.


인하우스 디자이너여서 성장하지 못한다고요?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되면 포트폴리오를 못 만든다고요? 아닙니다. 인하우스 디자이너에겐 생각보다 많은 기회가 열려있고, 그 기회를 분명히 디자인으로서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확실히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사수가 없기도 하고, 워킹시간이 짧기도 해서- 완벽히 시각적으로 완성도 높은 디자인 결과물을 내긴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생각의 폭을 넓혀가며 시장을 바라보고 고객이 원하는 지향점을 찾으며 '꽤 쓸모 있는 디자인', '여러 번에 걸쳐 계속해서 소비될 수 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인하우스 디자이너에 대한 편견이 있으신가요? 그건 아직 인하우스 디자인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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