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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바닥 Sep 08. 2023

1. 7000원에 다이어리,캘린더,패키지까지 제작하라고

거기에 디자인도 이쁘게라니, 너무 도둑놈 아닙니까!

우리 회사는 연례행사로 다이어리와 캘린더를 만든다. 올해 것도 다 소진하지 못했는데, 내년걸 만들어야 한다.


캘린더, 다이어리, 패키지까지 포함해 7000원에 단가를 맞추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말도 안 되는 단가에 기함을 떨었다. 조무래기 3명이 모여 얘기를 해봤지만, 결론은 디자이너인 내 인력을 소모하는 것밖엔 없었다.(나머지 둘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업체를 알아보고, 최대한 맞출 수 있는 곳에서 약간의 커스텀만 하기로 했다.


6995원에 3개가 가능한 업체를 찾았다. 다이어리는 기성품이어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불박 하나에 50원, 엠보 하나에 50원, 실크스크린 인쇄에 100원, 우린 돈이 없었다.


돈이 없어, 디자인은 할 수가 없다. 근데 디자인이 중요하단다.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캘린더를 도판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도판이란, 우리 회사 전용으로 규격을 맞춰 새롭게 인쇄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쉽다.


도판에 들어갈 디자인은? 결국  인력을 소모해야 한다. 소모되는 인력은 월급으로 충당받는다지만, 윗분들은 사실 뭘 들고 가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작년에도 4개월간 고군분투해 만들어낸 것들도 싫어했기 때문이다. 왜 싫은지 제대로 된 이유를 들은 적이 없다. 캘린더가 너무 평범하다고 했던가...?(그럼 돈을 더 주면 새로 만들어서 맞추지.. 돈은 없지만 기성품은 싫다니)


디자인 시어머니가 한 두 명이 아니다. 지금 세어보니 족히 4명은 되는 것 같다. 4명 모두를 만족시킬 디자인을 하면서, 단가도 맞아야 한다.


돈이 없다지만, 돈이 없으면서 좋은 퀄리티를 바라는 건 너무 도둑놈 심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겠어, 내가 디자이넌데.. 또 해결은 내가 해야겠지..'

귀가 아프다. 스트레스성 난청이 재발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질병이 생기고, 이 질병에 돈을 써야 해서 회사에 나간다. 7000원에 다이어리, 캘린더, 패키지를 제작하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한 일이다.


어찌 됐던, 만들어내야 한다.


요즘 아침부터 저녁 밤 누울 때까지, 겨우 도판을 할 수 있게 된 캘린더의 디자인을 고민한다. 조금이라도 특색 있고, 특이하면서 4명의 시어머니를 만족시킬 수 있게 만들어봐야겠다.

(불가능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에 도전하고 싶지 않다..ㅜ)




<제작 후기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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