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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ric Apr 14. 2018

불행복


일이 끝난 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집에 돌아가는 길은

매일 매일 어김 없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날은 사뭇 달랐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마치고

아무런 걱정 없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실로 오랜만에 집밥다운 저녁을 먹은 뒤

행복하게 버스에 올라 행복하게 집에 오는 길이었고


달라진 거라곤 비가 내린 뒤 무척 맑아진 밤하늘과

다른 날보다 눈에 띄게 반짝이는 별들

그리고 버스에 오른 사람들 뿐이었다.


최근 들어 부쩍 좋아진 날씨 덕에

집에 돌아가는 어두운 시간에도

따스했던 낮공기의 여운과 선선한 저녁 바람이 만나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초봄의 해질녘이었고


유쾌하고 떠들썩했던 자리를 뒤로 하고

정류장으로 오는 발걸음에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행복함의 여운과 뿌듯함이 서려있었으며

10분이나 남은 버스를 기분 좋게 기다렸다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기사님께 가벼운 인사를 전하고 자리에 앉았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밤풍경을 보며 집에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행복하던 와중에

불현듯이 뭔가가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이유 모를 불안감.


8년 전부터 지속되어왔던 마음의 병은

1년 중 300여일의 밤을 눈물로 지새게 했고

나는 그런 날들에 차차 익숙해져갔다.


평생을 눈물로 얼룩진 삶을 살던 내게도

좋은 날이 왔었다.

최근에는 불행하다거나 슬픈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실로 오랜만에 걱정 없이 행복감을 느끼던 중

문득 불안감이 고개를 든 것이다.


이렇게 행복한만큼 나중에 무언가 힘든 일이 크게 닥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행복은 늘 불행과 함께 다닌다는데

내 행복의 댓가는 무척 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 행복이 그저 돈을 쓰는데서 오는 것이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서 오는 것이든 상관없이

그 행복에는 반드시 조건이나 댓가가 필요했고

반대로 내 불행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

나는 그저 불행해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게 내 자리였다.

드디어 다시 내 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불행이 행운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사람에게

행복은 사치였던 것일까?

행복한 와중에도 온전하게 그리고 오롯이 행복하지 못하고

언젠간 닥쳐올 불행에 전전긍긍하며 그마저도 누리지 못하는 나는 얼간이였고

당연히 겪어야할 불행이나 시련이 원래의 내 자리라는 안도감 섞인 비참함에 무릎 꿇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불안감이 고개를 듦과 동시에

그리 길지 않은 행복이 막을 내렸다.


내 행복은 잠시 뿐인 꿈이었고 돈으로 산 사치였다.

그래, 이게 현실이지.

모든 사람은 꿈이 아니라 현실 속에 산다.

나도 다시 돌아가야지.

꿈 같은 시간을 뒤로 하고

이 기억을 먹고 살며 또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살아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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