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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ric Sep 06. 2015

일기

의식의 흐름


행복한 밤이었다.


어제는 반쯤 뜬 밝은 달이 방의 바닥에 비친 모습을 보고 행복해했다.

오늘은 아끼는 노래들을 들으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좋아하는 밤공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잔잔하고도 충분히 행복해지고 있는 삶이었다.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꽤나 행복했다.

이 행복이 금방이라도 깨질까 두려웠고 그래서 최대한 누렸다.

그동안 지은 죗값을 충분히 치렀다 여겼다.

이젠 나도 행복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든 게 행복했다.

완벽히 행복했다.

오히려 이 행복감이 내 우려보다 너무도 길어져 현실에 안주하고 더 이상 이 행복에 감사를 느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침  그때, 불행을 제공한 모든 것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시기에 잔잔한 내 인생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돌들은 마치 꽝꽝 언 호수 위로 던져진 것처럼  맥없이 튕겨져 나갔다.


그간 꽤나 단단해져 있던 탓이었을까.

그깟 돌들은 이제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상한 머릿결을 쳐내듯이 도리어 냉정하게 싹둑 잘라내고 있었다.


아무 느낌도 감정도 흔들림도 없었지만 마음이 꽤나 언짢았다.

그간의 불행을 모두 감수하고 그간의 품행을 반성하며 인내해 온 내게 행복을 누릴 권리조차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깐의 향수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받아들이고 잠시 추억을 회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지금 내가 쥐고 있는 행복을 위해 옛 추억도 향수도 모두 차갑게 잘라낼 것이다.


그저 좋아하는 계절의 좋아하는 새벽 공기에 기분이 흐릿해진 탓이다.

내 옆에 있는 행복을 열심히 지키며 가끔 삐져나오는 추억에게는 아끼는 노래들을 들려주며 달래줄 생각이다.

지금 내 곁을 지키는 행복에게 떳떳하기 위해, 오랜 시간 끝에 찾아온 행복을 더 오랜 시간 내 옆에 머물게 하기 위해.


오늘은 이 쯤에서 터져나온 추억을 밀어넣으려 한다.

아끼고 아끼던 노래 몇 곡만 더 듣고, 선선해져 가는 새벽 공기 조금만 더 느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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