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는 부족하다
나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모든 단상의 강연자들은 항상 타인을 이해하라고 외쳤었다. 나보다는 타인을 이해하라고 했었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말처럼 잘 되지 않았다. 부족한 나 자신을 탓했고, 죄책감이 들었다. 아직도 덜 돼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이해되지 않는 타인들을 더욱더 감싸 안으며 더 이해하려고 했다.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나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에게서 문제를 찾으며 더 노력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나를 더 채근했다. 나에게 바운더리는 없었다. 모든 이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의 약점을 받아들였다.
그게 문제였다. 이해하라는 그들의 소리는 무조건 이해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상황이 있고, 사정이 있었다. 그에 맞게 꼴지어진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각각 달라야 했다. 같은 방법으로 모든 사람들을 대하면 안 되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확연히 달랐다. 그들을 대하는 나의 말과 행동은 분명히 달라야 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퍼부어 주면 더 사랑스러워졌다.
반대로 척박하고 모진 사랑을 받은 사람은 친절과 배려는 그들에게 독이 되었다. 그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그들 모두에게 한 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이해했다.
사랑을 주고 이해하는 것이 덕이라고 배운 나는 내 마음을 짓밟고 무시하는 것을 보면서 알았다. 그들이 받을 수 있는 만큼만 주어야 한다는 것을.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관계에 있어서 대부분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은 친절과 배려, 사랑을 베풀고 나눈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이런 선한 사람들에게 약한 인간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는 구실이 되고, 그들을 이용하려 든다.
그래도 나만 더 친절하고 더 이해하고 더 사랑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대체 이런 생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구세주 신드롬인가? 교만이었다.
내가 살던 세상은 믿고 의지할 만한 좋은 사람들 천지였나 보다. 나는 참 천진했나 보다.
하나의 도구로만 사람들을 대했었다. 이제는 사람들을 분류하고 어떤 마음의 도구를 꺼내야 할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먼지 쌓인 도구들을 닦고, 정리하고 뭉툭해진 날을 갈고 갈아 예리하게 사용해야 한다. 더 똑똑해지고 지혜로워져야 한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