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이 끝나갈 무렵,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왔다. 결혼 후, 16년간 생기지 않는 우리 아이를 두고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애는 배울게 많아서 애기 학원에서 조금 더 오래 있다가 올 건 가봐!”
나를 위로하려는 남편의 우스갯소리였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아무리 희망적인 말을 해도, 우리에게 아이가 있게 될 것이라는 현실이 비현실적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실패가 반복될 때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나에게 어떤 잘못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회한의 시간이 뼛속까지 들이닥치고 지나갔다. 힘겨운 시간들을 지날 갈 때에도 친구들에게든, 가족에게든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의 문제이고, 공감받을 수 없고,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고, 또 부정적인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면 눈덩이처럼 불어날까 싶어 꽁꽁 숨기고 또 숨겼다.
참 쉽게도 아이가 생기는 지인들을 보며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순수하게 까륵대는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 졸업 후, 몇 년간 아이들을 가르쳤고, 교회에서는 어린이 설교뿐 아니라 어린이 반에서도 오래 봉사했다. 어리석게도, 혹시 아이들을 좋아해서 하늘이 질투를 하나 싶어 일부러 아이들을 멀리하기도 했다.
임신을 축하한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도 어안이 벙벙했다. 긴 기다림 후의 소식이었기에 눈물이 나올 법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인지, 다른 사람 이야기 인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감흥이 없었다. 남편에게도 여느 때처럼, 연락을 했지만, 덤덤한 나의 톡을 보고 남편은 또 다른 실패일 거라 생각하고 나를 위로했다. 못 알아듣는 것 같아 똑바로 다시 톡을 했지만, 남편도 나와 비슷한 반응이었을게다. 하지만, 남편은 내 앞에서는 당연히 기뻐했다. 그리고 울었다고 했다.
의사의 도움을 받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감감무소식이었다. 한국에서도 여러 번, 미국에서도 수차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의사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항상 독려했지만, 우리와 함께 여러 번의 실망을 경험해야 했을 의사도 힘들었을게다. 중도 포기할 만도 했지만, 실패를 반복할수록 더욱 오기가 생겨 포기가 안 되었다. 운명이 우리에게 아이를 주지 않는다면, 운명을 거스르고 싶었다. 아니 운명을 거스르다 지쳐 아이가 없이 늙어간다 해도 운명과 싸우다 젊음을 보낸 우리에게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은 진즉에 포기했다고 했다. 단지 내 앞에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고. 남편은 포기하지 않고 버티어 준 나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나보다 더 좋아하는 그를 보며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의 연속으로 점철되던 어느 날,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야, 자기는 아이가 생기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 나는 교회 맨 뒤에 서서 아이를 안고 있을 거야.”
“엥?”
교회 맨 뒤에 서서 아이를 안고 서 있고 싶다니.
“나도 아이 있다고 자랑하고 싶다고...”
나는 남편의 대답을 듣고 몇 분간을 자지러지게 웃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 예배당 안에는 아이들의 우는 소리나 노는 소리를 차단할 수 있는 자모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이 가득 차 있을 때는 그곳에 들어가질 못하고 예배당 뒷 좌석에 아이를 데리고 예배를 드리는 부부들이 있다. 혹은 조용히 예배를 드리고 싶은 아빠들이 주로 예배시간 교회 맨 뒤에 아이를 안고 어르고 달래며 서 있는 광경은 아주 자연스럽다. 예배를 드리다 아이가 울면 금세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아이 없는 자신이 보기에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질투심도 났나 보다. 그가 보기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으로 보였다는 게 딱하고 안쓰러웠지만, 뜻밖의 대답에 눈물 쏙 빠지게 웃어버렸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굳이 아이가 있어야 하나 싶은 고민이 나를 괴롭혔지만, 아이가 생기면 남편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그 소소한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졌다. 아니 다른 아빠와 아이들을 보면서 후회와 미련의 눈빛이 남아있을, 늙어가는 남편을 보는 게 더 힘들 것 같았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을 위해서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 말을 듣고 아이를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종지부를 찍은 셈이었다.. 생을 살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만큼 또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아니 사실 내가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척척 임신이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마음만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전투에 임한다면 조금 편할 것 같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마음이 굳건해졌다 해도, 다잡은 마음을 수도 없이 뒤집어 놓는 사람들은 곳곳에 널려 있었다.
몇 년 전 언젠가,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우리에게 생기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시며 마침내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이 없이 살아도 좋겠다. 아이 키우다 인생 다 보낼 바에 너희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
그 말을 듣고 나는 빙긋이 웃고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감사하면서도 죄송했다.
친정 엄마 아빠는 힘들게 도전하는 중간중간, 애를 빨리 낳아야 한다며 종용했다. 옆집 아는 누구누구는 시험관 일곱 번 만에 됐다더라. 병원은 다니냐며 내 속을 후벼 파댔다. 압박을 견디다 못해 내가 말했다.
“엄마, 결혼해서 애를 낳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아무리 해봐도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사는 거야!”
정말 그랬다. 요즘 딩크족이니 뭐니 용감하게 아이 없는 인생을 선택한 부부들이 있지만,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안다. 오죽하면 딩크족일까. 그들의 선택에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자신의 처지 혹은 키우고 싶지 않은 환경 때문에 결국 그렇게 선택한 것뿐이다. 내가 아는 딩크족들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삶이 바빠서, 건강이 좋지 않아서, 재정이 넉넉지 못해서, 어린 시절이 불우해서, 세상이 흉흉해서…
삶이 바쁘지 않고, 건강하고, 재정이 넉넉하고, 어린 시절이 불우하지 않고, 세상이 아름답다면 딩크족이란 말조차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모든 조건이 좋다면 부모가 아이를 마다할 수 없다. 사회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 부모들을 일터로 내몬다. 여자도 자아실현을 해야 한다며, 여자도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며 아우성을 친다. 요즘 시어머니들은 직업이 없는 며느리를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또 제 때에 아이를 출산하기를 원한다. 아무리 저출산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라 하지만, 정작 문제 해결을 해야 할 정부와 사회는 부모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그들의 처지를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결혼을 했으면 애가 있어야 한다며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의 지절거림과 다를게 무엇일까.
그들에게는 불 끄고 한 잠자고 나면 쉽게 아이가 생겼겠지. 몇 번의 유희의 밤을 지내고 나면 애 하나 만드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을 게다. 그렇게 쉽게 아이가 생긴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키울 때, 자신들이 가질 수 없었던 사회에서의 성공이 가족을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가르쳤고, 가족의 중요성이나 아이의 양육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지침도 없었다. 사회의 성공을 이루고 나니 자신들이 쉽게 가졌던 아이를 너희는 왜 가지지 않냐며 지친 자식들에게 또다시 짐을 지운다.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은 탐욕이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내몰린 이 사회는 정신적, 육체적 난임과 불임이 자연스러워졌다. 이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임신을 종용한다. 나를 언제 봤다고 친한 척하며, 이런 말들을 쉽게 쉽게 했다.
“이 집은 애가 왜 없어?”
“애를 안 낳는 거야, 못 낳는 거야?”
“애가 있어야 어른이 되지!”
“병원은 가봤어? 요즘 병원에서 애들 다 잘 낳아.”
이외에도 지난 10년간 수많은 낯 뜨거운 말들을 들어가며 여기까지 왔다. 누구 좋으라고 애를 낳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남의 눈 보기 좋으라고 낳는 건지, 나 좋으라고 낳는 건지. 무슨 이유로 다른 사람 팬티 속 사정까지 다 들춰내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얼굴 좋아졌네. 좋은 소식 있어?”
“배가 좀 나온 거 같네. 좋은 소식 있어?”
“자기들은 애기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놈의 좋은 소식. 그 누구보다도 더 간절히 기다리는 그 좋은 소식! 너보다 내가 더 기다리는 중이야. 제발 너는 조용히 입 닥쳐 줄래!’
그들의 의도는 순수하고 해맑았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비아냥과 조롱의 수류탄이었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욕을 참아내느라 혀를 깨물어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콩알만 한 배속의 작은 아이를 보며 ‘잠잠이’라 이름 지었다. 잠을 잘 자는 건강한 아이이길 바라면서 그리고 우리의 지친 마음이 이제는 잠잠히 평화롭고, 고요하기를 바라면서, 마음을 후벼 팠던 그들을 용서하는 날이 오기를 잠잠히 기다리면서. 사람이 아니라 ‘나의 영혼이, (그리고 너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