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페인 기획자 Eli Jul 12. 2023

242. 무신론자와 교수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살았던 두 남자의 서신을 바탕으로 한 우정이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는 몰랐다. 이 책은 데이브 흄과 애덤 스미스의 우정에 관한 책이다. 무신론자와 교수에서 내가 부러웠던 것은 디지털 시대에 사라진 편지 문화이다. 사실 이제는 편지는 커녕 지인들끼리 이메일도 쓰지 않으며,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카톡이나 SNS 댓글로 하게 된다. 내가 고등학교때까지만해도 친구들끼리 서로 편지를 많이 주고 받았는데 이 문화는 이제 영영 사라진 것 같다.



이 책도 김민주 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경제 사상를 공부할 때 각 학파의 선구자에 대한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되는 것 같아. 흄이 죽기까지 스미스가 썼거나 받았다고 알려진 편지는 전부 합쳐 170통이다. 그중 우리에게 있는 것은 스미스가 흄에게 쓴 편지 15통과 흄이 스미스에게 쓴 41통이다. 현재 흄과 스미스가 주고받은 이 56통의 편지는 그들의 생각과 주장, 그들이 출판한 저작물의 행운과 불안, 시사 문제와 신간 도서, 그리고 가족, 친구, 적, 건강, 취업 전망, 여행 및 장래 계획을 포함한 온갓 종류의 주제를 망라한다. 이 책에서는 서구의 전통에서 보면 이보다 더 고귀한 철학적 우정의 사례는 없다고 하는데 사실 조금은 과장된 것 같다. 서신을 바탕으로 하는 책은 세네카의 루시오에게 보내는 편지도 훌륭하다.  


데이비드 흄은 영어권에서 역대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널리 평가 받고 있으며, 애덤 스미스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상업 사회 이론가임에 틀림없다.  바로 전 북리뷰에서 이야기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놀랍게도 이 둘은 성년의 대부분을 절친한 벗으로 지냈다. 이 책은 1749년 그들의 첫 만남부터 사반세기 남짓 후 흄이 사망할 때까지 둘의 우정의 추이를 따라가면서 개인적 상호 작용은 물론 각자가 상대방의 세계관에 끼친 영향을 검토한다.



그들이 태어난 18세기 초의 스코틀랜드는 무수한 세월 동안 가난과 질병, 무지와 미신, 끊임없는 종교 갈등과 잦은 군사 점렴에 시달렸다. 흄 자신도 스코틀랜드가 오랫동안 '유럽의 모든 나라 중 가장 예측 불허인 곳, 가장 가난하고 파란만장하고 불안정한 곳' 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흄과 스미스의 생애 동안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성과의 활기찬 새 시대가 도래했다.

스콜틀랜드 계몽주의는 현재 페리클래스 시대의 아테네, 아우구스트 시대의 로마,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 대적할 지성의 황금기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18세기 벽두까지만 해도 유럽 변방의 가난하고 낙후했던 나라가 어떻게 같은 세기 중반 무렵 그런 지식 강국이 되었을까? 거기에는 스코틀랜드를 세계 최고의 교양 국가 중 하나로 만든 교구 소속 학교들의 혁신적 시스템, 유럽의 최우수 교육 기관으로 성장한 글래스고, 에든버러, 애버딘,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수많은 사교 단체와 토론 모임의 등장, 출판업의 호왕, 그리고 마침내 커크 (스코틀랜드 국교회) 를 이끌게 된 진보적인 온건파 목사들을 포함한 많은 요인이 연관되어 있었다. 대영제국을 탄생시킨 1707년의 연합도 필시 중요한 요인이었다.

흄과 스미스의 우정은 대체로 영국의 정치적 안정기 동안에 이뤄줬다. 두 사람 중 흄은 열두 살 더 많았고, 그 결과 스미스의 생각이 흄의 사상에 의해 형성된 측면이 그 역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두 사람은 다른 점도 많았다. 흄이 형이상학 및 인식론의 추상적 질문에 주로 관심을 가진 철학자였던 반면 스미스는 좀더 현실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 실리적인 경제학자였고, 흄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토리당 지지자였던 반면 스미스는 진보적인 휘그당 지지자였다.하지만 한 당의 신봉자라고 할 수는 없다. 둘 다 18세기 영국의 주요 정당 중 어느 한쪽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았다. 아울러 종교와 관려해 흄은 회의주의자나, 아니 어쩌면 무신론자이기까지 했던 반면 스미스는 확고한 기독교 신자였다. 사교적이며 매력적인 흄과 그보다 내성적이고 정신을 딴 데 팔곤 하는 스미스의 극명한 대조 때문인지 사람들은 어떻게 그들이 용케도 잘 지내게 됐는지 의아해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생각한 것은 100년 후의 사람들이 우리가 SNS 에 쓰는 글을 읽고 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까이다. 이번 주 부터 듣기 시작한 강원국 선생님의 글쓰기 과정에서 좋은 리더의 글이란 역사의 평가를 생각하며 20년, 30년 후를 바라보고 쓰는 글이라고 하셨다. 18세기 과 애덤 스미스가 쓴 글을 우리가 2023년에 읽고 그 시대를 이해하고 두 사상가를 이해하게 된 것은 그들이 남긴 신중한 글과 책 때문이다. 글은 함부러 쓰면 안 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241.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