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통틀어 유토피아 문학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플라톤이 쓴 국가론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문학 작품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1984, 멋진 신세계, 기억전달자 등이 있다. 이 책은 유토피아 학파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던 로버트 오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도 김민주 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김민주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폴리매스이시기도 하고 좌파와 우파라는 구분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로버트 오언의 사상의 옳고 그름보다는 오언이 그 시대에 어떤 업적을 이뤘고 그 시대 배경이 궁금했다. 그리고 사상가보다는 기업가와 교육가로서 그의 삶을 더 알고 싶었다. 사실 전기란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좋다.
로버트 오언은 1771년에 태어나 1858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일곱 명의 자식 중에 여섯 번째로 태어난 오언은 조숙한 아이임이 분명했다. "나는 일곱 살도 되기 전에 손에 닿는 모든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생각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닥치는대로 책을 읽어 치웠다. 그가 성인이 된 시점은 사상 최초로 터져 나온 산업혁명의 물결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이며, 뿐만 아니라 이 산업혁명의 이후 궤적에 결정적 영향을 줄 프랑스와의 전쟁이 막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18세에 차입으로 마련한 100파운드를 자본으로 하여 스스로 새로운 섬유 기계 공장을 세워 주인이 된다. 여러 개인적 자질들도 있었던 데에다 운까지 도운 덕에 29세 때는 뉴 래나크에 있는 큰 면화 공장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는 여기서 큰 재산을 이룬다. 그런데 돈벌이보다는 소년시절부터 마음속으로 발전시켜온 독특한 생각들의 실행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나는 내가 고용한 이들을 빈곤과 도덕적 비인간화로 몰아넣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윤을 내면서 공장을 운영할 수 있다." 고 되뇌었다. 그는 산업 공동체를 만들지만 거기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뉴 래너크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만들었다. 그는 교습 방법의 선구자였다.
오언은 공장 인수 1년 만에 공장 혁식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자신의 인도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혁신적인 주거공간과 휴식공간을 제공했다. 노동시간은 하루 10시간 45분을 넘지 않도록 했다. 열 살 이하의 아이들은 고용하지 않고 직원의 아이들에게는 무상교육을 시켜주었다. 영국 최초로 유치원도 설립했다. 공장 내 상점에는 직원 가족들에게 상품을 저가에 제공했다. 뉴 래나크 사람들의 생활비를 4분의 1이나 절약할 수 있었다. 더구나 건강보험, 노령보험까지 도입했다. 뉴 래나크는 유럽의 저명 인사들이 꼭 둘러보는 명소로 부상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선정되어 있다. 오언은 영국에 협동조합운동 바람을 일으켰고 사회주의적 아이디어를 도입했으며, 영국의 첫 번째 공장법을 기인하는데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오언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좋은 환경에서 잘 키우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그래서 술집과 복권 장려를 금지했고, 빈민법을 뜯어 고치라고 했다. 또한 영국 전체에 연수원을 설립해 효과적으로 운영할 것을 주문했다. 인구가 늘어나도 생산적인 인간이 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맬서스의 인구 비관론을 부정하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현재는 최선과 최악의 사이에 있다. 유토피아에 해당하는 최선이 어렵다면 현실적으로 우리는 차선이라도 택해야하고, 디스토피아에 해당되는 최악을 피하려면 차악을 고를 수밖에 없다. 여러 대안을 마련해 그때그때마다 대응해야한다. 세계를 이끈 경제사상 강의 책에서 김민주 선생님은 세계가 유토피아가 되려면 개인게에는 자유, 경제에게는 효율, 사회에는 정의, 지구에는 환경, 우주에는 평화가 깃들여야 한다고 하셨다. 물론 모두 제대로 갖추기는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