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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구 Jun 04. 2019

일간 크로스핏 : 우리의 인간관계.

토마토로 논하는 인간관계 이야기.


크로스핏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평소처럼 미한과 통화를 하는데 미한이 내게 여섯 알의 토마토가 있고 먹고 있다고 뜬금없이 자랑(갑.분.토 ; 갑자기 분위기 토마토)했다. 토마토는 나트륨을 배출하는 효과가 있는 채소이고 이 때문에 지금 이 늦은 시간 미한은 토마토를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걸 굳이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이유는 오늘 하루 동안 지키지 못한 식단 때문에 권장량 이상으로 섭취해버린 나트륨에 죄책감을 느껴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심리가 가득 담겨있는 것이라 유추해 볼 수 있다. 왜냐면 나 역시 다이어트를 할 때 같은 이유로 토마토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할 때 빼면 굳이 찾아먹지 않는 음식이기도 하다. 토마토는 톡 터지는 식감만큼은 좋지만 그 맛이 상큼하다고 하기에도, 달달하다고 하기에도 뭔가 포지셔닝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토마토는 내 최애 과일-채소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군 시절 내게 토마토는 최애 과일류이자 채소류였다. 입만 열면 늘 상큼하고 달달하고 시원한 무엇을 찾는 나는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과일-채소와 과일-채소 맛을 내는 음료수를 항상 냉장고에 가득 채워야 했다. 하지만 군 시절 내가 살았던 숙소에는 개인 냉장고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간편하게 약간이나마 신선한 음식을 구매할 수 있는 편의점도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물론이고 시원한 음료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 환경 속에서 그나마 토마토는 내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음식이었다. 



토마토는 대량으로 사놔도 쉽게 상하지 않고 보관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마트에 장을 보게 되면 한 박스 씩 사놓고 숙소에 가져다 놓고 양껏 먹었다. 장을 봐 논 토마토가 다 떨어지고, 장을 보러 갈 수 없는 환경에 놓이면 중식이나 석식에 제공되는 토마토만 기다렸다. (물론 중식이나 석식에 다른 과일이 나오면 환장하고 먹었다.) 중식-석식에 제공되던 토마토는 늘 남고 버려졌기에 보급관님과 취사병들에게 말만 하면 양껏 얻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고 양껏 먹는 미지근한 토마토 속에서 설탕에 재워진 시원한 토마토와 토마토 설탕물을 욕심내고 그리워했다. 내가 어렸을 적 엄마와 아빠는 여름이면 늘 토마토를 설탕에 재워놓고 냉장고에 넣어두셨다. 설탕에 재워진 토마토는 냉장이고에 들어가 시원하고 다디단 설탕물을 뿜어냈고 형과 나는 늘 이 시원 달달한 토마토 설탕물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했다. 뭐 대부분 나의 패배로 끝이 났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보급관님이 설탕에 재운 시원한 토마토를 부식으로 제공해 주셨다. 그날 먹은 토마토는 중학생 때 축구를 끝내고 집에 가는 길 친구들이랑 마트에 들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세 개에 천 원 주고 사 먹던 토마토마 쮸쮸바처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전역과 동시에 토마토가 받으며 누렸던 애정과 영광의 시대는 끝이 났다. 집에는 냉장고가 있고, 근처에는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편의점이 즐비해 언제든 상큼하고 달달하고 시원한 무언가를 냉장고에 채워 넣고 어제든 먹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사람은 환경 속 동물인 것임에 손모가지를 걸 만큼 가볍고 장난스러운 확신이 선다. 또 한편으로는 토마토를 대하 듯 가끔 사람들에게도 토마토처럼 대했고 그로 인해 상처를 준 것 같다는 진지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기분은 변명할 여지없이 사실이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토마토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한 시절 잠깐 함께하고, 흐릿한 추억과 기억으로만 남게 되는 존재. 



그렇다 사람은 환경에 맞춰 토마토 같은 것에만 선택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도 그 환경에 맞춰 선택적으로 적응하는 동물인 것이다. 참 - 토마토 얘기를 하다가 별 이상한 얘기를 다하고 있다. 이왕 얘기한 거 더 얘기하자면 요즘 내 주변에는 딸기, 오렌지, 사과, 귤 등등 냉장고에 가득 채워 넣고 언제든 꺼내 먹고 싶은 사람들 천지이다. 그러니까 다들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냉장고에 가득 채워넣고 언제든지 꺼내먹고 싶은 거츠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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