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는 어떻게 삶을 바꿨나(1)
"삶의 절망이 너를 덮칠 때 재미를 움켜줘라". 제가 존경하는 철학자의 말입니다. 이 철학자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살았어요. 프랑스에 태어난 유대인으로써 나치에 쫓기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철학자였죠. 친구들이 수용소에서 죽어감에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으며 이런 말을 남깁니다. '재미를 움켜줘라' 라고.
혹시나 이 철학자의 정체가 궁금하여 검색 엔진을 돌리셨다면 정말 미안하게도 나타나지 않을겁니다. 이 철학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문장에 감동받으셨다고 하시더라도... 미안합니다. 이 문장도 사실 제가 지어낸거에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번 글에서는 철학적인 이야기 말고, 성장하는 이야기 말고, 재미에 대해 써보려고 해요. 그 이유는 단순해요.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떠올라버렸지 뭐예요. 나를 살린 건, 나를 바꾼 건, 그리고 나를 바꾸고 있는 건 ‘재미’라는 사실을요.
저에겐 좀 특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자기개발의 클리셰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죠. 바로 중증우울장애에서 일반인이 된 그런 클리셰적인 이야기예요. 아 이것도 거짓말일까 의심하신다면 죄송합니다. 이건 진짜에요. 이 주제를 떠올리면 저는 두 가지 주제가 떠올라요. 바로 ‘나는 이런 시련을 겪고 이겨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열심히 강연하는 누군가와 ‘우울증도 요즘은 패션이야-라며 비난하는 누군가’ 에요. 누군가가 보면 패션우울증이었고, 누군가가 보면 동기부여의 좋은 소재였지만 아무튼 저는 장애증이 발급되기 직전까지 갔던 조금 심각한 상황에 있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 이야기를 ‘동기부여’ 방식으로 풀고 싶지 않았습니다. 죽어도요. 심지어 누가 와서 ‘이 이야기 잘 풀면 강연 다니게 해 줄게.’ 해줘도 풀고 싶지 않았어요. 최소한 제가 밑바닥에서 느낀 건 여러분 열심히 하면! 여러분 조금만 힘을 내면! 이 아니었어요. 단순히 힘을 낸다고 해결될만한 문제도 아니었으며, 다른 무수히 많은 환경적, 우연적 요소들도 너무 많았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렇게 ‘동기부여 방식’으로 제 썰을 풀면 안 됐습니다. 정직하지 않고 진실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썩 괜찮은 삶을 살기를 1년. 나름대로 정직하게 풀 수 있는 키워드가 떠올랐으니 바로 ‘재미’였습니다!
어쩌면 깊은 이야기가 녹아져 있을 수 있지만 최대한 조심스레 덜어두고, 조금 더 ‘재미’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때때로 철학보다 삶에서 더 중요한 게 ‘재미’-인 것도 같아서요. 저를 살린 방향은 철학이었으나 동기는 재미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썰을 풀어봅니다. ‘재미’는 충분히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살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요.
하지만 정말 미안하게도, 철학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제가 철학 수업을 거의 처음 들을 때, 교수님이 우스갯소리로 해주신 말이 있어요. 철학자들을 비하하려는 용도는 아니고, 분위기를 깨려는 용도였죠. 그때 교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왜 철학자들이 철학을 시작하는지 아세요? 딱 두 가지예요. 첫사랑에 실연을 당했거나, 아니면 정말 아팠거나”
그때는 하하 호호 웃고 넘겼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해본 요즘 알게 된 게 있다면 그 말이 맞다는 말이었어요. 저도, 다른 철학자들도 교수님이 말씀하신 비슷한 이유와 비슷했죠. 아프거나, 첫사랑에 실연당하거나요. 사실 대체적인 사람들도 그런 것 같아요. 행복할 땐 철학책 안 들여다봐요. 하지만 아프면 기도하거나, 철학책을 집어 들기 시작죠. 물론 그렇지 않은 문학가나 철학자들도 많지만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아픈 와중에도 ‘의미’에 집착하지 않던 순간들이 있었으니 바로 즐거울 때였던 것 같아요. 누군가 한 번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아프던 사람이 이토록 건강해졌냐고” 2년 정도 전에 받은 질문인데, 그때는 정리가 되지 않아 “운이 좋았던 거죠-“라고 대답했어요. 하지만 이제 약간의 실마리가 있어 그 답을 이제 꺼내보아요. 저는 그 질문을 그분이 똑같이 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시간들이 쌓여 의미를 찾아낼 힘을 만들었다-“고.
첫 유럽여행 때 우연히 본 장면이 생각이 나요. 저는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를 지나고 있었죠. 마침 시기는 옥토버페스트! 뮌헨에서만 진행될 것 같은 축제가 제가 지나는 도시에서도 열리고 있었어요. 도시 한가운데에서는 자선공연이 이어졌는데 글쎄, 맥주를 사들고 온 제 옆자리에는 교수와 학생으로 보이는 두 사람(추정) 이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었어요. 친구처럼 말이죠.
당시 시기는 2017년이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제 학교에선 교수와 학생이 앉아서 자유롭게 토론하지 못했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도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요…) 항상 교수는 갑의 위치, 알려주는 위치, 그러니까 위계상 좀 더 위에 있는 위치에 있었죠. 그래서 무엇을 먹더라도, 어떤 분위기였더라도 저는 항상 교수님이 떨궈주는 지식의 부스러기를 얻어먹는 사람처럼 긴장을 하고 있었어야 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우연찮게 만난 그 장면이 제 앞을 스쳐간 거예요.
교수와 제자로 추정되는 그 두 사람은 나름대로 자유롭게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고, 긴장이 풀린 채로 이것저것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진행할 때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 이야기들이 나올까’ 싶었죠. 아직까지는 재미보단 그 시간에서 얻는 의미라는 게 중요했던 시기 같아요.
하지만 지금까지 그 장면에서 대화의 의미보다도 그 사람들의 유연한 표정, 긴장하지 않는 몸짓, 열려있는 몸의 방향등이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아- 축제라는 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축제는 사람을 편하게, 유연하게 만드는구나-.’라는 감각이 더 깊이 남아 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제가 기억하는 ‘재미’라는 키워드의 첫 번째 감각이었습니다.
‘재미’에 대한 두 번째 기억은 바로 일본의 여름축제 마쯔리였어요. 일본 여행의 마지막날, 제 일정은 기온마쯔리라는 축제의 첫날과 겹치게 됐죠. 이 행사는 일본의 3대 축제에 해당하는 축제로, 크나큰 불꽃놀이와 등불축제 등 우리가 미디어와 영화로 접한 일본 축제의 대도시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비록 저는 축제의 시작을 잠깐 찍먹 했지만 해당 축제는 저에게 많은 인상을 남겼어요.
첫 번째로 교토라는 도시 자체가 축제분위기로 변했다는 점이었어요.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축제에 참여하고, 대로변의 1-2차로를 막고 행진을 해도 모두가 행복해하는 분위기로 물들고, 그간 가지고 있던 긴장들도 풀리고, 서로를 환대하는 분위기뿐만 아니라 손님과 주인의 경계가 느슨하게 풀어진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두 번째로 이에 관련되어 떠오르는 영화나 미디어의 장면들이었는데요. 일본 드라마나 애니에서 ‘축제’는 기억에 남을 정도의 추억뿐만 아니라 그날은 연차나 반차등이 허용되는 좋은 시공간으로 묘사되곤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 아무리 야근을 하더라도 불꽃놀이만큼은 옥상에서 캔커피를 마시며 본다던가, 축제 시즌에는 반차를 허락해 준다던가, 같이 술을 먹으러 간다던가 등등 여유롭고 긴장이 풀린 모습들을 보여주죠.
물론 한국은 식민지배를 당하며 많은 축제의 감각과 문화가 상실되었지만, 뿐만 아니라 이를 앗아간 국가(공교롭게도 두 국가가 전범국이라는 점에서도요)는 여전히 축제를 즐긴다는 점에서 질투가 나고 약간의 분노가 나기도 하지만 이 두 나라의 축제만큼은 배울 것이 있어 보였어요.
교토의 기온 마쯔리 그리고 독일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느낀 공통점은 다름 아닌 ‘긴장이 풀어진다’라는 점이었어요. 그동안 돈을 번다던가, 공부를 한다던가, 학위를 따야 한다던가 등의 어떤 몸과 마음을 조이는 의미와 긴장을 내려놓게 만드는 것 같았어요.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나 시스템에게 가지던 위계나 질서 역시 어느 정도 흐뜨러놓게 되죠. 예를 들어 축제시즌만큼은 연차나 반차사용이 가능하다던가, 교수와 희희낙락하게 대화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에요.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만은 아닌 것 같아요. 러시아 사상가 미하일 바흐친(1895-1975) 역시 ‘축제에서는 위와 아래, 좌와 우가 바뀐다’고 주장했어요. 예를 들어 축제에서 하는 가면무도회와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면 왕도 낮은 권력을 가진 사람인 척하거나, 낮은 권력에 있는 사람도 약간 장난스럽게 으스댈 수도 있는 거죠. 축제에서 일어나는 ‘극’과 같은 환경에서는 심지어는 광대가 왕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는 것처럼요.
생각해 보면 독일과 일본, 두 공간에 있을 때 모두 저는 거기서 무엇을 배울지, 무엇을 느낄지 갈급한 상태에 있었는데요. 그 축제만큼은 생각이나 긴장을 좀 더 내려놓고 사람들의 환대나 표정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표정과 분위기가 마음속에 더 오래 남고요. 무엇보다 마음의 긴장도 그때 짧게나마 내려놓았던 것 같습니다.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도중 일상이 점점 망가지게 됩니다. 일본여행은 2018년, 유럽 여행은 2017년이었죠. 하지만 2019-2020년 훈련소를 두 번 다녀왔을 뿐만 아니라 공익근무지에서의 갑질, 그간 있었던 정신장애의 악화등 모든 악재란 악재가 겹치면서 저는 정신장애 중증 판정을 받기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지금이야 많이 괜찮아지고, 돈도 벌고, 나름대로 직장생활도 잘 하지만 그때는 정말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오죽하면 의사 선생님 처방을 기준으로 해당 상태가 지속이 됐다면 중증장애 판정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에요.
그 당시 제 돌파 방법은 스스로를 분석하고 행동하는 방식이었어요. 캐릭터마다 고난이나 위기를 대처하는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지만, 저의 방식은 관찰-해석-행동-관찰로 돌아가는 고지식하고 재미없는 방식이었어요. 망할 놈의 배움으로 진검승부하는 스타일은 저를 정석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만들었죠.(물론 저는 그 방법이 재밌었지만요) 당시 진단받았던, 그리고 나름대로 내가 비슷하다고 생각한 정신장애에 관련된 책이나 논문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그리고 스스로 과거의 일들을 그 관점으로 해석하기 시작했고, 사람들 및 의사 선생님과 대화하여 피드백을 얻었죠. 그리고 다시 사람들을 만나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고, 다시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긴 이야기지만 그저 요약하자면 참 ‘의미’에 집착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을 바라보고 해석해서 장점과 단점을 해석하고 내 삶의 태도나 방식을 고수할지 버릴 것인지 선택해야 했죠. 하지만 매일매일 해당 행동을 한다는 건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요. 매일매일 스스로 과거를 돌아보고 글을 쓴다는 건 힘든 일이었거든요. 이 과정을 통과한 어느 날, 이를 운이 좋았다-고만 치리 해내기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던 거죠. 생각해 보니 이 힘듦을 통과하게 해 줬던 건 앞서 말했듯 ‘재미’였다는 사실을 알게됐죠. 미친 사람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을 알아가는 재미도 간간히 있었고요. 이 재미가, 어쩌면 저를 꾸준히 싸울 수 있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재미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