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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 베유 Oct 12. 2024

어떤 재미는 두려움보다 강력하다

재미는 어떻게 삶을 바꿨나(4)

꺼진 재미도 부활시켜 볼 


하지만 당시 저는 정말 재미가 없었어요. 푸석푸석한 사막을 건너는 기분이었죠. 그래서! 어떻게든 재미를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일상이 축제였던 저에게 일상이 데이터와 개발로 흘러가는 건 정말 용납할 수 없었거든요. 처음 보는 숫자와 처음 보는 코드는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어요. 당연히 처음 보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성과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죠. 물론 중간중간 데이터를 보는 재미와 흥미, 데이터로 파악하는 재미들은 있었어요. 예를 들어 쿠팡과 같은 큰 마켓의 데이터를 보며 ‘인간은 대부분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라든가, ‘의외로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 부분들도 있네’ 같은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얻으며 재미를 느꼈지만 역시, 실력에는 장사가 없었어요. 노력한다고 한들 철학서만 붙잡고 있던 저에게 결과를 내기란 정말 쉽지만은 않았어요. 고생이란 생고생은 더러 계속됐죠. 그러던 중 친구에게 문자가 하나 와요.


 “근데 6월 6일에 뭐 해?”

저는 이 이야기가 1년 이상 열심을 다할 프로젝트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6월 6일은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칠레와 대한민국의 매치가 있던 날이었어요. 데이터공부가 거의 끝나갈 무렵, K 씨는 어디서 구해온 건지 A매치 티켓 두장을 구해왔어요. 피 튀기는 티켓팅을 성공한 채로 말이에요. 뿐만 아니라 저희는 집에 가는 KTX 표까지도 구매했습니다. 비록 입석이긴 했지만요. 그렇게 나름대로의 준비 역시 끝냈습니다.


물론 당시 저에게는 문제가 있었어요. 광장공포증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당시까지는 꽤 공황이 심하게 왔어요. 다행히 경기장의 모든 출구는 널찍하여 폐쇄공포증은 오지 않았지만 당시의 제 상태로는 낫지 않은 공황이 존재하긴 했습니다. 물론, 물론 이상하리만치 ‘도전해 볼 만하다’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다시금 말이에요.


그렇게 둘은 여행 계획을 짜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저는 여행계획을 짜는데 어느 정도 감이 잡힌 상태였어요. 계속해서 일상과 여행을 축제로 만들려던 시도들은 어느새 저만의 스타일을 만들었고, 그 스타일은 하나의 저만의 재미로 굳어졌습니다. 그 결과 제가 어느 지역을 여행하든 꼭 하는 행동이 있었으니 바로 지역의 독립서점을 들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 계획에는 ‘독립서점’이 껴있었고요.


그렇게 어딜 가든 상관없다던 K 씨와 함께 대망의 대전 여행으로 가는 KTX을 타게 됩니다. 당연히 독립서점이 코스 안에 들어갔고요. 뿐만 아니라 맛집, 성심당, 그리고 걷는 코스들이 알맞게 잘 짜였어요. 이제 밥집부터 A매치까지 잘 놀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서점 입구로 들어가게 됩니다. 



서점 입구에 유럽 한 팀의 엠블럼이 걸려있던 것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는데… 서점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미 몇 년 동안 책과 축구를 연결 지어 모임을 하고 있었을뿐더러, K 씨가 15년 넘게 응원하던 팀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습니다. K 씨는 물었어요. “혹시 리버풀(영국의 유명 축구팀) 좋아하세요?” 그리고 그 한 마디가 1시간 넘는 이야기로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K리그이야기부터, 영국 축구, 한국 축구 이야기, 그리고 책과 축구를 엮어 지역에서 모임을 하는 이야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렇게 단어와 단어를 건너던 도중, 새로운 대화들이 저를 새로운 재미의 가능성으로 인도했어요. ‘아 이거 되겠다-‘ 싶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아- 이거 재밌겠다’ 싶었어요. 단 한 번도, 축구와 책을 이어볼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렇게 서점 주인님과의 대화를 끝마치고 대전 경기장으로 가는 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혼자 하던 거 두 명이서, 세네 명이서 그리고 모두와 함께 해보면 어때?”를 물었어요. 그렇게 혼자만 재밌어하던, 매일 밤 축구 중계를 보며 혼자만의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이 만나 함께 즐기고자 커뮤니티를 만들면 어떻나 싶었던 거죠. 우리가 서점 사장님과 나눴던 '건강하게 축구를 관람하는 법', 가끔 만나 카페에서 대화했던 '건강하게 축구하는 법'. '건강하게 클럽을 응원하는 법' 등을 이제 여러 사람과 해보자고 했던 겁니다. 


이제 저에게 재미는 단순히 희망을 품은 요소가 아니라 꿈을 꿀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둘 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으나 재미로 인해 실패가 보이지 않는, 아니 더 정확히는 실패해도 좋다-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대전에서의 여행, 그것이 바로 축구인문학 커뮤니티 ‘온사이더스’의 시작이었습니다.


두려움보다  강력한 재미의 


온사이더스 이야기를 하면 두 가지 두려움이 생생합니다. 첫 번째, 공황장애가 아직 일상에 어려움을 줬음에도 4만 명이 운집한 군중 속으로 들어갈 때의 두려움입니다. 그 두려움은 아직 생생해요. 마치 이 모든 군중들이 나의 적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었습니다. ‘4만 명한테 집단 린치를 당하면 아프겠지…? 아마 많이 아플 거야… K 씨는 나를 지켜줄까? 모르겠네’ 라며 지금이야 그때를 재밌게 회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불안함이 컸어요.


그 불안함을 예상했음에도 어떻게든 대전에 간 건, 거기에 재미가 있었다고 예상했기 때문일 거예요. ‘비록 나는 거기서 불안해하겠지만 계속해서 부딪히다 보면 이겨낼 수 있다-‘는 투박함과 함께, ‘분명 또 하나의 추억과 즐거움이 되겠지-‘라는 흩뿌연 희망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희망은 의외로 새로운 재미와 연결됐고요.


두 번째는 온사이더스가 망했다-라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에요. 먼저 온사이더스부터 말씀드리면 아주 대차게 망했습니다. 현재 운영되지 않는 onsiders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고, 아마도 소생불가능한 블로그가 네트워크의 구천을 떠돌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키컬러도 정하고, 이름도 정하고, 브랜딩도 해보려고 하고, 모임도 가져보고, 고민도 해보고, 커뮤니티공부도 해봤어요. 책모임도 해봤고, 따로 직관모임도 가져봤죠. 하지만 망했어요.


 처음 시작 멤버는 4명이었습니다. 중간에 3명이 더 들어왔습니다. 총 7명까지 늘렸어요. 저희가 꽤 본격적으로 했음에도 그게 전부였어요. 점점 단톡방이 활성화가 되지 않고, K 씨만 말을 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모임의 참여자들도 적어지는 상황들 속에서 저 (그리고 K 씨)는 암묵적으로 사망선고를 내려야만 했습니다. 아-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었고요.


그러나 다시 돌아가서 온사이더스를 다시 할 거냐고 물어보면, 저는 할 거예요. 그 대전경기장에 들어가 공황을 느끼는 순간이 포함되더라도 ‘다시 할 거다’라고 말할 것 같아요. 아무튼 간 재미가 있었거든요. 망했지만 재미가 있었어요. 의미를 가지고 축구를 본다는 게요. 안전하게 축구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요. 목적을 가지고 축구를 보고 있다는 게요.


물론 망했다는 걸 보기 싫었어요.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라는 인간적인 감정도 어느 정도 들었고요. 무엇보다 (성과만 봤을 때) 시간을 낭비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간 차라리 다른 것들을 했으면 나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두려움도 잠시, 그간 참 재밌었다- 싶었어요. 그래. 망해도 재밌었으면 됐지 싶었어요. 그렇게 실패하는 거 안보는 둘인데, 그 이야기만 생각하면 회피를 안 했어요.


아마 그 이유는 ‘재미’ 때문일 거예요. 제 혼자만의 느낌일 수 있지만 온사이더스는 저에게 '망했지만 재밌었던 여행’을 회상할 때 느끼는 달콤 쌉싸름한 맛이 느껴집니다. 근데 달콤이 좀 더 많은 맛으로요. 우리가 힘들었더라도 재밌던 여행이라면 그 경험이 진귀하고 소중하듯, 저도 온사이더스를 회상하면 ‘결국 성공했다-‘라는 느낌을 받곤 해요. 


물론 아직 그 기억을 들쳐보는 건 약간은 두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재미는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그때 기억을 오픈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시간 날린 거면 어쩌지- 싶다가도, 내가 무능력했던 걸까- 싶다가도 재밌었으면 됐었던 그런 기억이 바로 온사이더스의 기억입니다. 


그래서 어떤 재미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면… 먼저 생각나는 건 제주 KBS에 출현했던 경험입니다.


돈 못 벌어도 재밌었으면 됐다


“혹시 인터뷰 가능하신가요?”


한 번은 제주도에 가서 축구를 같이 본 적이 있어요. 제주 여행겸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보러 갔었더랬죠. 집에 유일하게 있던 바람막이가 오렌지색이었는데, 그게 인터뷰의 시작이 될 줄 꿈에나 알았겠나요. 당시 저는 집에 있는 오렌지색 바람박이를 입고 갔었는데, KBS 기자님이 그걸 보시더니 제주 유나이티드의 팬으로 아셨던 거예요. 아주 짧게 인터뷰를 했고 제주 지역 뉴스에 10초 정도 나오는 일도 있었어요.


한 번은 전술 관련 책을 읽고 풋살을 해보는 경험도 해봤어요. 패스와 팀워크, 재미 등을 중요시하는 전략 그리고 결과를 중요시하는 전략을 각각 대치하여 쓴 책이었죠. 책모임엔 많은 사람이 참여하진 않았지만 참여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스타일을 설명을 해주고, 각각 팀으로 찢어졌어요. 물론 결과가 중요한 팀이 압승을 거뒀지만 같이 책모임을 하고 고민했던 이야기들이 실제로 실현되는 것 같아 재밌었습니다.


또 함께 아시안컵도 보고, 축구 이야기도 나누고, 다과회도 진행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 멤버의 초대를 통해 포항 경기를 보러 간 일이었어요. 여행 겸 경기 겸 겸사겸사 포항에 갔었는데, 그분이 저녁을 사주시면서 했던 한 줄 그리고 그 한 줄을 말하며 건네었던 눈빛이 기억에 남습니다.


“강원 FC와의 경기에선 져도, 물회는 지면 안 돼요. 어떠세요? 포항 물회가 강릉 물회보다 맛있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포항 스틸러스를 응원하던 분의 입에서 “물회는 질 수 없다”라며 아이 같은 기대감으로 저를 쳐다보던 그 장면은 저는 잊을 수 없어요. 이후 단순히 포항스틸러스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신이 약 30년간 포항스틸러스를 응원하며 겪었던 일들을 말해주셨죠. 같이 응원하던 조그만 친구가 이제는 선수가 되어 필드를 누비고 있다던가, 외국인 용병이 우연히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살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쌓았다던가, 포항에는 물회 말고도 맛있는 게 많다던가 하는 이야기들 말이에요.


이제는 거의 모이지 않지만 건강한 축구를 만들고자 꿈꾸고 전략을 세우고, 함께 토론하고 축구를 하고 또 보는 과정이 참 의미가 있었다고 봐요. 비록 가치나 돈을 벌지 못했지만 정말 재밌었습니다. 당시 저희의 목표는 건강한 축구 문화를 만들어보자-였지만 내면적으로 모두 목표로 뒀던 건 ‘건강한 축구를 고민하는 사람들끼리 재밌게 놀아보자’ 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재밌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축구를 통해 더 좋은 축재미와 좋은 축제를 만들려고 고민했거든요. 하지만 역시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최소한의 돈은 필요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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