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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 베유 Oct 13. 2024

어떤 재미는 일하는 재미이기도 하다.

재미는 어떻게 삶을 바꿨나(6)

어떤 재미는 일하는 재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콜센터에 사표를 냈어요. 3-4개월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좀 들었는지 약간 울적하더라고요. 하지만 설렜습니다. 취미로 했던 관심분야들에 이제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물론 지금 보면 허무맹랑할 수 있는 기획안들이 나왔지만 내가 애정하고 좋아하는 서비스의 개선안을 도출해 내고, 해당 개선안으로 변화될 상황들을 상상하는 게 꽤 즐거운 일이었어요. 새로운 방식으로 해당 서비스를 바꾸고 생각하는 일들은 꽤 재밌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교보문고 X독서모임 프로젝트’였습니다. 요약하자면 교보문고의 어플을 개선해 독서모임을 만들고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거였죠. 책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책구매를 증진한다-는 그런 의도를 가진 기획이었어요. 지금 보면 리스크도 크고 약간의 허무맹랑함도 있었지만 그땐 오히려 아무것도 모를 때니까 계획안을 내는 게 재밌었어요.


물론 단순히 앉아서 공상만 하진 않았어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또 다른 행동을 개시했죠. 아직도 재밌다-고 회상될만한 기억은 당시 저는 ‘교보문고’에 대한 개선책을 쓰고자 직접, 집에서 1시간 반정도 걸리는 교보문 고어가 고객들을 살폈을 때에요. 좋아하는 교보문고 중 하나인 ‘합정 교보문고’에 가 약 4시간 동안 입장하는 사람들, 머무는 사람들, 나가는 사람들을 카운트하고 사람들이 왜 오는지, 와서 뭘 하는지를 관찰했었어요. 언제나 고객으로 짧게 머물다 갔지만 직접 관찰하는 입장이 되니 재밌었어요.


또한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보이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생각보다 점심시간에 오는 사람들이 많다-‘던가, ‘구매의 목적이 아닌 대화의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던가, ‘바로 드림’의 직접수령고객과 책을 찾아 수령하는 고객의 동선의 차이들이 보였어요. 데이터로는 모을 수 없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기분 등도 많이 봤고요. 몇몇 사람들은 점심시간에 쉬러 서점에 온다는 사실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서점에 온다는 사실도 그때 봤던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10명 정도를 직접 인터뷰하고 문제점을 발굴하고 데이터화시켰습니다. 한 사람당 30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줌으로 앉혀놓고 기존의 서비스의 문제, 느낀 점, 생각 등을 인터뷰했어요. 질문거리와 방식도 모두 준비했어요. 물론 당연히 없는 살림에 긁어모아 줌도 유료로 결제했습니다. 


주변에 설문도 돌렸죠. 한 60명 정도 설문을 해주신 것 같아요. 기존의 문제점, 방문 횟수 등등 직접 발로 뛰어서 데이터를 모았어요. 역시 재밌었습니다. 사람들이 서점에 가는 이유도 각양각색이었어요. 방문하는 주기나 원인도 각양각색이었죠. ‘역시 사람들은 모두 다양하구나!’하면서 신나서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당시 인터뷰와 설문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 과정이 마냥 지치고 힘든 과정은 아니었던 건 재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마음이나 동선, 상황들을 데이터로 보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데이터분석을 공부하며 배웠고, 개선사항을 도출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콜센터근무를 하며 느꼈죠. 그저 저는 그 사실들을 활용해 스스로를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끔 만들게 하면 됐습니다. 그 장소와 결과가 기획이었습니다.


그렇게 개선하고 싶고 고치고 싶던 앱들을 더 파헤쳐보기 시작했어요. 유튜브 뮤직, 네이버, 유튜브, 교보문고, 브런치 등등 머릿속에 떠오르는 앱들을 다양하게 건드리고 제 상상의 나래 속에서 이것저것 개선해보고 싶었어요. 유저를 넘어 개선과 기획의 관점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재미도 새롭게 느꼈어요. 당시 취업교육에는 PPT를 잘 만들라는 요구 사항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었는데, 그로 인해서인지 폰트, 구조, 표현등이 새롭게 들어왔어요. 어느 날은 주변에 가던 카페의 디자인, 메뉴표뿐만 아니라 광고의 배치, 디자인등이 새롭게 들어왔습니다.


당시 정리했던 앱들의 리스트. 흥미로워 하는 앱들은 요구했던 양을 훌쩍 넘기기도 했습니다.


물론 ‘재미’라고 한다면 마냥 도파민이 터지고 4시간만 자면서, 먹는 시간도 아껴가면서, 미친 듯이 하는 모습을 상상하실지도 몰라요. 마치 게임이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밤까지 새 가면서 하는 사람처럼요.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역시 취업 준비는 힘들고, 성과는 약간의 답답함을 줬고, 머리를 굴리는 일은 아무리 재밌더라도 사람을 금방 지치게 만들거든요. 


그렇지만 그 정도의 높은 텐션까진 아니더라도 몰입 자체에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최소한 ‘아-이거 언제 까지 해야 해…’ 같은 지루함이나 답답함은 없었어요. 그럼에도 제가 재밌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딱 하나, 빨리 일을 하고 싶다는 느낌만은 계속 쌓여갔던 것 같아요. 기존 교육이 4개월이었지만 저는 2개월 차 되던 때부터 이미 취업을 준비하려 이력서를 조금씩 넣게 됩니다. 과연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다시 콜센터로 돌아갔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직종으로 이직했을까요?


재미가 주는 직감을 따라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현재 모기업에 취직해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재밌어하던 포지션은 아니었습니다만 회사가 무척 재밌어 보였어요. 다사다난한 취업여정은 이렇게 진행됐습니다. 취업교육을 시작한 지 3개월, 이력서를 본격적으로 넣기 시작한 지 1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곳저곳에 원서를 넣었는데, 취업난에, 스펙도 없는데도 재밌는 곳들을 찾아다녔어요. 


참 신기한 건 여전히 저는 ‘여기 재밌는 거하네-‘가 더 좋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면접 시 딱딱하고 뭔가 답답한 회사는 주머니에 돈도 없는 마당에 ‘붙지 마라. 붙지 마라’ 큰 염원을 다하고 있었죠. 반대로 재밌어 보이는 회사라면 어떻게든 ‘제발 면접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복지나 연봉, 안정성이 좋지 않아도요.


그러던 중 한 회사에서 연락이 오게 됩니다. art change life라는 기발한 슬로건을 단 회사였어요. 연기, 작사, 작곡을 온라인으로 가르친다고 하는데 참으로 오묘하고 신기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해당 분야만큼은 도저히 온라인으로 수업이 불가능했거든요. 회사에 입사를 지원하며 저에겐 두 가지 흥미가 생겼어요. 첫 번째, 과연 예술이 삶을 변화시킬 때 그 사람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두 번째, IT교육으로 예술 교육이 가능할까?


사전 조사를 해봐도 참 재밌었어요. 예술 교육을 하지만 연예인과 개인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어플도 만들기도 하는 그런 회사. 그러면서 투자금도 꽤 적잖게 받은 회사. 정말 파면 팔수록 물음표 투성이었어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천지였습니다. 그렇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흥미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는 ‘됐다’ 싶었습니다.


물론 제가 합격했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일할 수 있는 재미를 충족시켜 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확인하고 보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어요. 유저(를 넘어서 사람)들의 의견이나 변화도 보고 싶었고요. 판매하고 소비하는 단순한 패턴너머, 한 사람이 (비록 온라인이라고 하지만) 교육으로 응감 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면접서를 넣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연락이 왔습니다. 면접 보러 오라고요.


이 회사는 다른 회사와 분위기가 조금 달랐습니다. 다른 회사는 상무님이나 인사 담당자가 함께 면접을 봤는데, 이 회사는 일을 열심히 하던 팀장처럼 보이는 분이 후다닥 오더니 물어볼 것만 열심히 묻고 끝냈습니다. 정말 바빠 보였고, 또 바빠 보였어요.


다행히 면접을 꽤 좋은 분위기에서 흘러갔습니다. 1대 1로 면접을 봤고 아직도 사수님의 ‘이 새끼 봐라?’라는 표정이 기억에 남아요.(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일 년이 지난 뒤 사수님께서는 ‘면접 때 다리를 꼬는 사람은 00님이 처음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하.) 그렇게 2-3일 정도가 지났고 합격 문자가 왔습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메일에 ‘휴… 돈을 번다’도 앞섰지만 ‘재밌겠다’도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에게 꽤 큰 유혹이 다가왔습니다.


아직도 기억나요. 친구와 문래동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010 번호로 전화가 한 번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한 번 왔습니다. 받아야겠다는 직감에 이끌려 전화를 받았어요. 면접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였습니다. 회사명을 듣고는 고민했습니다. 조사했을 때 거긴 잡플래닛 평점 4.1 정도,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퇴사자들의 후기가 기업 후기의 상위에 측정될 정도로 좋은 엄청난 기업이었거든요.


퇴사 및 재직자들조차 4점 혹은 5점을 주고 퇴사한 회사. 직장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신이 다니는(다녔던) 회사에 4~5점을 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맛집이야 ‘먹는다’는 만족도와 매출과 직결된다는 미안함 때문에 적은 펼 점을 주기가 어렵지만… 직장은 아실 겁니다. 대부분의 후기는 불만으로 가득하다는 것을요. 잡플래닛 4.1. 정말 엄청난 기업이었습니다. 후기도 조작한 것 같진 않아 보였어요. 하지만 저는 전화를 받자마자 “합격한 회사가 있다. 미안하다” 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물론 4.1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며 친구에게 호들갑을 떨었지만, 또한 그 회사에 가서 면접에 가서 광탈을 했을 수 있지만 저는 지금 다니는 회사를 선택했어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유 중 하나는 합격한 회사와의 의리와 신뢰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믿고 뽑아줬는데-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재미 었습니다. 비록 같이 일하자는 회사가 잡플래닛 평점도 4.1은 아니고… 후기가 보장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재미만큼은 보장되어 있었다고 판단했었어요. 당시의 저는요.


현 회사가 무척 재밌어 보였습니다. 지금껏 차근차근 쌓아온 제 ‘재미’에 대한 감각이 계속해서 지금 회사와 공명했습니다. 입사 시에는 교육, 예술, 사람이라는 키워드가 마음에 들었고, 입사 후에는 사람과 욕망이라는 키워드가 저를 끌어당겼어요. 제가 입사하는 시기가 전체적으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의 모델을 바꿔나가는, 소위 말하는 피보팅의 시기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일하면서 확실히 재미있는 데이터, 재미있는 현상, 재미있는 사람들, 재미있는 변화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아직 잡플래닛 4.1 기업이 약간 아깝기는 합니다. 면접이라도 볼걸… 싶은 마음이 조금은, 아니 사실 많이 남아 있기는 해요. 아무튼 그럼에도 여기 선택한 걸 후회하진 않아요. 최소한 꾸준히 쌓아간 ‘재미’의 감각과 이야기가 새롭게 쓰였다는 점에서요. 물론 그 회사에서 역시 나름대로 재미를 추구했겠지만 이 회사에서 쌓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건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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