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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 베유 Oct 14. 2024

어떤 재미들은 공존할 수도 있다

재미는 어떻게 삶을 바꿨나(8)


어떤 재미들은 공존할 수도 있다


뭐랄까요. 그때부터 스스로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재미없다고 느껴서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야’하며 조금 새침해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재미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한 거죠. 중심이 바뀐 겁니다. 그렇게 저와 정반대의 세계로 직접 기어들어갈 생각을 하게 돼요.


광복절을 끼고 얻은 4박 5일의 연휴 일정. 그렇게 3일은 파티게스트하우스 숙박. 1일은 조용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하는 결제를 진행했습니다. 어쨌든 공황이 있었고, 술도 그리 잘 먹지 못하고, 외모도, 재력도, 스펙도, 자랑할만한 것이 없는데 그 공간에 저를 던져 놓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무서운 일이었죠. 하지만 이제 타인의 재미를 탐험할 수 있는 일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도대체 너무 궁금했습니다. 왜 그렇게 다른 친구들은 클럽에 갈까. 왜 그렇게 다른 친구들은 파티에 갈까. 그렇게 재밌어할까.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 재미의 세계가 있을 것만 같았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쁘거나 안 좋은 문화로 봤던 것도 사실이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고상한 척한 거죠. 그렇지만 그때는 마음이 좀 달라졌어요. 거기서 노는 사람들도 내 친구들이고 나와 비슷한 시기를 사는 사람들이라고 봤다고 해야 할까요. 나도 사실은 다르지 않다-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저의 선입견이었고, 저만의 재미가 굳건해서 그런 탓이기도 했지만 시각이 달라지자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4박 5일 동안 ‘아무튼 부딪혀보자’ 하는 마음으로 3박을 파티를 하는 게스트로 결제를 진행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파티에 가는 마음이 전쟁을 앞둔 장수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만요.


그러나 아무튼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는 일이 큼지막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보니, 토끼가 도망갈 굴을 본능적으로 파놓듯 알아서 저도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게 됩니다. 마치 ‘마지막날만 참자. 마지막날만 참자.’라고 하면서 동기부여할 수 있는 휴식의 날 같은 거죠. 그래서 내가 고르고 고른, 그래도 조용하고 어느 정도 사람이 있는, 그런 숙소로 마지막날 예약을 잡아둡니다. 그렇게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 여행을 준비합니다. 그렇게 8월 11일이 됩니다.


8월 11일은 그런 날이었어요. 뭔가 회사 분위기도 좋지 않아 더 긴장하고 더 열심히 일한 날, 그러나 업무 중 처음 실수가 나타나 제주 공항에 내리자마자 대표님께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은 날,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2시간 늦게 제주에 도착한 날.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데 매 번 보던 제주의 바다가 어찌 그리 처량해 보이던지요. 여러모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체크인을 하기 위해  파티룸의 문을 연 순간, 제 마음에 올라오는 단 하나의 질문. “닫을까?”. 정말 그 문을 닫고 싶었어요. 제가 주눅이 들어서 긴장만 하고 재미없을 것 같았거든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파장한 분위기에 들어가는 새로운 얼굴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해요. 두 시간을 늦게 온 저는 그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으나 일단 숙소에 짐을 놓고, 심호흡을 다시 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래도 내 다짐했으니 다시 용기 내보자-싶었어요’ 그렇게 감도 높은 긴장을 가진 채로 1시간쯤 지났을까요? 이상하게 자꾸 ‘내 판인데-‘싶은 감정이 올라왔어요.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자신감이 ‘할만하겠는데?’ 싶었습니다. 주목받을 만큼 잘생기다던가, 돈을 쓴다던가 하지 않았는데요. 그렇게 파장시간까지 놀고는 파티룸을 나왔습니다.


같이 2차를 가자는 사람에게 저는 예의를 지켜 거절하고는 숙소로 들어옵니다. 아, 다른 건 아니고 수영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 아침에 꼭 해수욕을 하고 싶었거든요. 2차를 가면 제주의 푸른 바다에 몸을 넣을 수 없을 것 만 같았어요.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늦게까지 자다가 어영부영 일어나 밥을 먹고는 잠깐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저녁이 올 것 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정말 아까웠고요. 

그 와중에 또 랜디스 도넛에 꾸역꾸역 찾아가해장으로 먹었던 도넛.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도넛이었습니다.


다음날 계획대로 해수욕을 하고는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데 아무튼 그 마음이 신기했습니다. 여기 ‘내 판이다’라는 그 마음이요. 정말 처음이었는데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는 게 이상하기도, 혼란스럽기도,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근원을 알아차렸습니다. ‘아 이 사람들 재미에 진심이 아니다-‘라는 마음에서 오는 자신감이었어요. 맞아요. 모두는 아니지만 몇몇 사람들은 재미보단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거나 자신의 우월감을 내보이기 위해 여기 온 것 같았어요.


아- 재미에 진심인 제가 또 여기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들을 질투하거나 분위기를 깬다고 비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되려 ‘제대로 잘 놀자!’며 그들을 재미로 포섭하고 싶었어요. 아침 산책, 3시간 해수욕, 4시간의 커피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잔 다음,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파티룸의 문을 엽니다. 거의 가장 먼저 도착한 제가 테이블에 앉았고, 한 명 두 명 합석하여 모두 채워졌습니다. 이제 잘 놀기만 하면 됐습니다. 테이블의 분위기는 누군가를 유혹하거나 자랑하는 상황으로 흘러가기보단 ‘재미 그 자체’를 방향 삼아 흘러갔습니다. 마치 1년 뒤에 베를린에서 경험할 ‘재미’를 미리 맛보는 것처럼요.


이때 조금 안 것 같아요. 아 내가 재미에 제대로 미쳐있구나. 정말 노는 걸 좋아하는구나- 싶은 마음을요. 처음 적응하는, 거의 처음 방문하는 곳에서 나만의 재미를 찾아 구분하고(물론 그들의 재미를 존중합니다. 자기 자랑을 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 여기에 익숙한 그들에게 설득력 있는 재미와 콘텐츠를 제시하는구나- 싶은 저의 모습을 봤습니다. 


어찌나 재밌게 놀았던지… 정말 열심히 노는 제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거나, 같이 흥을 맞추거나, 칭찬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영상을 못 받았지만 흥에 취한 재 모습을 누군가가 신기하고 재밌어서 담는, 그리고 담기는 경험을 하는 게 참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파티가 파하자 마지막에 같은 테이블에 놀았던 사람 중 누군가 “같이 놀아서 너무 고맙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납니다. 그렇게 자신감까지 얻어버린 저는 직감했죠. 그 직감은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아- 나는 이제 클럽 죽돌이가 되겠구나!’ 싶은 깨달음이었습니다. 회사 앞 항상 출근하면서 봤던, 클럽이 끝나고 비틀거리며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부르며 국밥집으로 들어가던 사람이 다름 아닌 내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클럽에서 밤을 새우고 겨우겨우 오전 출근을 하고, 반차를 내고 집에 가는 내내 졸며 결국 집에 가서 뻗는 제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물론 아쉽게도- 소크라테스 죽돌이가 클럽 죽돌이가 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ㅠ 저는 전생에 노는데 미쳐버린 광란의 뽀로로까지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렇게 3박의 시간을 파티로 보내고, (그중 2일 동안 3시간씩 해수욕으로 보낸 절 보면 역시 노는 게 좋긴 좋나 봅니다.) 되려 최후의 보루로 삼았던 마지막 날 숙소를 ‘그냥 파티 게하로 바꿀까-‘를 고민하던 저는, ‘마지막날 조용한 숙소에서 보내자는 건 자신과의 약속이니 아쉬워도 여기서 보내자’며 들뜬 마음을 잠재우고 나름대로 조용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보내게 됩니다.


마지막 날 숙소는 6명 정도 소박하게 저녁식사를 하는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 음식에 꽤나 진심이신 호스트님께서 저녁을 내오고, 대화를 진행하는 그런 잔잔한 게스트하우스였어요. 각자 맥주정도만 가져올 수 있고, 또 게스트하우스는 맥주정도만 팔고 있는 곳이었죠. 텐션은 하늘에 있는데 눈앞에는 잔잔함이 있으니 몸도, 마음도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몰랐습니다. 술게임으로 올라가 있는 텐션이 그나마 카페들을 다니면서 좀 내려갔지만 그럼에도 머릿속의 도파민은 멈출 줄을 몰랐으니 몸이 혼란스러워하는 게 느껴졌어요.


정말 다행인 건 거기서 제가 아주 잠깐 호주머니에 넣고 잠재워 놓았던 인문학이나 자신의 취향, 고민등에 대해 깊게 나눌 수 있던 기회가 있었다는 겁니다.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 자유와 사랑에 대해 고민이 깊은 친구와 좀 깊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다음날 비행기 시간이 아침 9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전 4시까지인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친구에게 말하진 못했지만(어쩌면 이 자리를 빌려 말하지만) 당시 제 주파수가 120Hz와 같은 높은 음계 였다면 당시 대화한 주파수가 90Hz와 같은 낮은 음계여서 주파수를 내리는데 애를 좀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대화가 고마웠던 건 당시 대화를 통해 두 가지 재미를 잡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제 클럽과 파티등 신남과 흥이 있는 모든 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할 마음이 불꽃처럼 피어오를 그때, 제가 잠깐 잊고 있던 재미는 다시 잠깐 부활했습니다. 그 친구와는 다시금 제가 좋아했던 철학이나 취향, 감수성이 터지는 이야기 등을 나눌 수 있었어요. 그렇게 다시 주파수를 낮고 차분한 감도로 낮췄고, 그 주파수에서 익숙하고 즐겁게 누렸던 재미를 저는 다시 복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복구할 시간이 됐습니다. 너무 열심히 놀아서 피부가 다 탔고, 열정으로 커버할 수 있을 것 만 같던 햇빛은 제 열정보다 더 강력해서는 제 피부를 태웠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피부과를 다녔고, 다시 업무가 시작됐고, 다시 사무실 앞 제 자리에 앉았고, 출근길의 사람들은 너무 많았고, 가끔 사람들은 싸웠고, 지하철에 서 내리면 큰 건물들이 양쪽에 늘어서서 숲인지 빌딩인지 모르는 장면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꽤 그러나 종종 주파수를 내리는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았고, 저는 두 가지 공존하는 재미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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