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몬 베유 Oct 15. 2024

어떤 재미는 '일하는 재미'이기도 하다.

재미는 어떻게 삶을 바꿨나(9)


이젠 어떤 재미에도 반응할 수 있어


압니다. 제목과는 다르게 모든 재미에 반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자신감 정도는 얻은 것 같습니다. 친구로부터 ‘불꽃축제에 가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든 생각은 이랬습니다. ‘한 시간 반에 하루를 다 태워?’ 근 하루 정도를 돗자리를 펴고 기다리면서 7시 반부터 시작되는 불꽃을 기다려야 하는 스케줄은 저에게 낭비와도 같았습니다. 마치 바닥에 시간을 뿌리는 것과 같았고 맑은 하늘에 대고 시간을 터뜨리는 것만 같았죠.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낭비보다 더 재밌는 경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어요.


그 기대감을 통해 자신을 보니 저도 아무래도 21세기를 사는 현대 사회인인지라 '시간을 버린다’는 것에 강박 같던 게 있던 것 같아요. 약간은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내 불안을 넘어선 ‘해볼 만하다’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또 솔직히 대구에서부터 아침을 설치며 올라와 자리까지 잡아준다고 하는데, 제가 어찌 빠질까- 싶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대구에서부터 서울까지 올라오게 만든 그 동력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자리에 합류하게 된 건 6시간 정도 전인 오후 2시. 장장 6시간 동안 수다를 떨고 보드게임을 하는 내내, 약간은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가을 피크닉을 온 것처럼 게임을 즐겼더니 곧이어 해가 졌습니다. 시간이 됐고, 불꽃이 터졌고, 아름다웠습니다. 재밌었어요. 용산역에서 내리고, 장을 보고, 돗자리 까지 찾아가 사람구경도 하는 그 모든 과정이 이미 재미있는 광경이었습니다. 비록 돌아가는 길이 꽤 힘들었지만요.


요즘도 그 친구와 불꽃놀이를 회상하면 “집에 돌아가는 것만 빼면…”이라고 말할 정도로 돌아오는 길이 좀 험난했지만 그 과정만큼은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서 생각해 보건대 제가 좀 달라진 게 느껴졌습니다. 적당한 사람, 대화, 효율, 의미. 이 네 가지 키워드가 없으면 재미가 없을 거라고 확신하던 사람은 어느샌가 ‘정 줄 놓고 노는 것도 의미가 있다. 대화가 없이 노는 것도 의미가 있다-‘ 라며 스스로 재미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폭죽.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기회가 오면 신나고 왁자지껄한 곳들은 다 가보려고 했어요. 한 번은 유명 남성 아이돌의 콘서트 티켓이 생겨 콘서트 장에 들어가 저도 모르는 노래를 떼창을 해보려 노력해보기도 하고, (참고로 단 한 번도 그 아이돌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성분들이 대부분이라 남자 화장실을 대부분 여자화장실로 바꿔 화장실을 헤매기도 해 보고, 평소였다면 노래는 좋네-하고 즐기던 어느 아티스트의 콘서트에 들러 직접 응원봉 비슷한 것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뻘쭘하기도 했지만 이런 재미들이 있구나- 하면서, 저도 열심히 참여해 봤습니다.


큰 변화가 있었다면, 평소 기획하던 모임들의 아이디어 역시 꽤 가볍게 나타났단 거예요. 예전에는 엄격, 근엄, 진지하던 책모임이나 영화모임이 약간의 파티의 형식을 갖춘 기획으로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소에서 책모임을 제시하던 저는 어느새 크리스마스 파티 모임을 추진한다던가, 아무 의미 없이 모이는 홈파티에 나름대로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저도 모르게요.


물론 도보여행이나 조용한 관극들을 보기도 했어요. 조용히 자신을 돌이켜보려고 떠나는 도보여행에 참여하는 한 편, 인생작 중 하나인 ‘고도를 기다리며’가 극장에 올라와 직접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책도 종종 읽고, 꾸준히 독서모임을 하기도 했어요. 차분함에서 주는 즐거움의 맛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 과정에 있어서 새롭게 나타난, 가장 중요한 인생의 변화가 있었으니 바로 일하는 재미의 직접적인 발견이었습니다.


사람이 재미있는 것만 하고 살 순 없지만


저는 지금 ‘재미없으면 죽는 사람’처럼 쓰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안 지는 얼마 되진 않았어요. 놀랍게도 말이에요. 그러나 2023년 11월 12월쯤부터 스스로 ‘재미없으면 안 하는 놈이구나’ 하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저는 더 오래 일을 하기 위해 직장 내 재미를 찾고 있었어요. 만약 재미가 떨어지면 버티고 버티다가 퇴사를 결정하고 그곳을 떠날 것이 뻔했거든요. 이렇게 생각하자 미래는 오히려 선명해졌어요. 나는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굶어 죽을지도 몰랐죠. 아, 아니요. 더 정확히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 다시 취업준비를 힘들게 했을 겁니다. 그러나 다른 직종에 또 빠르게 취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고요. 최악이었어요. 인생노잼시기와 불안정함을 모두 견뎌야 한다니… 저도 모르게 재미에 좀 목을 맸습니다.


어쩌면 ‘일의 재미’에 취업 전 후로 그리 집착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몰라요. 재미가 없으면 스스로 직장에 다니는 일이 고문처럼 느껴지고 힘들다고 느껴질게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광진구로 이사를 오기 전, 저는 경기도 시흥시에 살고 있었는데 직장이 있는 강남 근처까지 왕복 3시간 30분-4시간이 걸렸으므로 정말 재미있어야만 했어요. 아시겠지만 경기도민의 출퇴근 길은 스펙터클 할 때가 많습니다. 매일 아침 일상적으로 타인과 부딪히고 옆에서는 싸우는 일들이 터지면 아침부터 피로가 쌓이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죠.


뿐만 아니라 또 하나, 매일 출근길과 퇴근 길마다 저는 360도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앞, 뒷자리가 나는지 살피는 건 필수였죠. 빡빡한 일, 스펙터클한 출퇴근 그리고 거기서 서서히 빨려가는 체력. 매일 아침저녁마다 퇴근시간 15분을 아끼려 노량진 역을 전투적으로 뛰어다니고, 어떻게든 앉아서 가려 그 모든 루트를 알아보려는 제 모습은 게임하는 모습과 분노에 쌓인 모습 어디 사이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입사하자마자 재미에 대한 깃발을 하나 꽂아야 했습니다. 먹고살려면 그리고 답답함을 어떻게든 견뎌내려면 정말 필요했어요.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독서모임을 거하게 말아먹고 저는 실망에 빠지게 됩니다. 수면 위로 올라가면 빙하가 있겠지-하곤 육지로 올라갔더니, 6400km를 잘못 헤엄쳐와 그에게 보이는 건 잡초와 흙뿐인 당황한 펭귄처럼 저는 ‘사람들의 재미는 나와 완전 딴판이구나’를 느낀 제가 느끼는 감정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스타트업이라 일은 많지, 스트레스는 힘들지, 재미있지는 않지 정말 답답했어요.


하지만 다행이었던 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거기서 도대체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건 아직도 유효한 재미이긴 한데 사람들은 저에게 물음표를 던지게 만들었어요. ‘이걸 산다고?’와 ‘이 사람들은 왜 이러지?’라는 질문이 들게끔 하는 상품과 서비스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거예요. 사람의 마음이란 건 본래 비논리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상품을 사면 랜덤으로 포토카드를 주는 이벤트는 더 많이 뽑으면 뽑을수록 얻을 수 있는 포토카드의 개수는 늘어나지만 되려 더 많이 팔렸습니다. 반대로 수요가 생기는 것 같다가도 가격은 떨어지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어떤 배우는 실제로는 코어팬이 많지 않아 그만큼 판매실적이 떨어지는 반면, 인지도는 적지만 코어팬만 정말 많은 아이돌은 판매량이 꽤 큰 결과치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공급이 늘어나도 가격이 올라가고, 수요가 늘어나도 가격이 떨어졌던 겁니다.


이외에도 더 소통을 잘해주더라도 콘셉트에 맞지 않으면 비인기 멤버가 되는 현상, 더 잘생기고 춤을 잘 춘다고 하더라도 자신들만 알고 싶다는 이유로 잘 알려지지 않는 현상, ‘이걸 산다고?’ 물음표가 붙는 상품 역시 웃돈을 주고 사는 현상 등 물음표 살인마인 저에게 역으로 물음표를 던지는 순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본래 ‘이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생각에서 재미를 느끼는 저에게는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었던 겁니다.


시각 자체를 바꾸는 재미, 성장하는 재미도 있었어요. 부끄럽게도 아이돌이나 팬덤 문화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인식이 바뀌기 전, 팬덤은 자신의 삶을 회피하기 위해 아이돌이나 아티스트에 집중한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가서 느낀 그들의 눈빛이나 에너지는 정말 달랐어요. 진심으로 좋아하고, 진심으로 그들에게 힘을 얻고, 때때로 삶의 영감까지 얻는 것 같았습니다. 이역시도 ‘이 사람들은 왜 이러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어요. 그래서 더 그 사람들의 재미에 관심을 가지고 콘서트참여의 기회가 나면 따라가거나 한 번 더 친절을 베풀고, 한 번 더 질문을 하는 등의 자연스러운 행동들이 나타났죠.


나이에 대한 선입견도 많이 깨졌습니다. 오래 활동한 아이돌의 팬 중 젊은 세대가 있는 모습도 목격했고, 반대로 활동한 지 얼마 안 된 조금 어린 아이돌의 팬 중 조금 나이가 있는 분들이 있는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조금씩 응원하는 재미와 즐거움, 결들이 달라 보였지만 아이돌과 소통하고 감정을 주고받는 방식은 비슷했어요. 역시 선입견이 깨졌습니다.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나이는 선입견에 불과하구나-‘싶었고요.


물론 실력을 인정받고, 나 스스로 업무적으로 성장하고, 회사가 성장하는 데 있어서 재미가 컸습니다. 현재 정말 빠른 속도로 상장심사를 끝냈고, 저는 실력을 인정받아 이래저래 낮은 연차에 팀관리도 해보고 팀문화도 꾸려보는 기회들이 있었습니다. 쓸만한 사람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재미를 느꼈어요. 나 스스로의 성장 그리고 회사 스스로의 성장도 좋았지만 사람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도 즐거웠습니다. ‘왜 저 사람들은 저럴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고 즐거워하는 과정이 참 재밌었어요.


이러니 답답하고 힘든 업무 속에서도 이 재미를 끊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아주 가끔 틈만 나면 재 업무와 엄청 연결이 되어 있지 않더라도 판매량, 추이, 사람들의 동선 등을 찾아봤습니다. 굳이 출근일이 아니어도 가끔 타 부서의 부탁에 직접 현장에서 굿즈를 팔아보기도 하고, 사람들과 한 마디를 더 해봤습니다. IT관련 종사자이지만 콘서트팀, MD 팀과 소통하며 잘 지내려고 한 이유 중 하나도 ‘재미’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재미, 감정에 대한 재미, 열정에 대한 재미. 이 재미들이 분명 있었어요.


사람이 재미있는 것만 하고 살 순 없지만 하루 9시간 투자하는 그 일에는 분명 재미가 있었어야 했어요. 최소한 저에겐 그랬습니다. 하루 이틀 다닐 회사였다면 고민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펭귄이 6400km를 헤엄쳐간 시간 그 이상만큼을 저는 한 회사에서 보내야 했어요. 꾸준히 그리고 매일 어떤 공간에 나를 데려다 놓기 위해선 그 힘을 지속할 수 있는 재미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저 스스로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재미 었어요. 그러니까 나 스스로 사람에 대해 좋아하고 궁금해하기 때문에 예측가능한 재미의 일종이었습니다. 개념과 현상을 탐구하고, 모순과 역설을 넘는 재미. 이 재미는 저를 8년 동안 (그리고 지금 역시도) 계속해서 철학을 좋아하게 끔 한, 공부하게 끔 한 재미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당장 눈앞의 재미’에 눈을 뜨리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