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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 베유 Oct 12. 2024

어떤 재미에는 귀천이 없다

재미는 어떻게 삶을 바꿨나(5)

어떤 재미에는 귀천이 없다


아끼고 아껴서 축구를 보러 간다고 하더라도, 여행을 간다고 하더라도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당시 배웠던 데이터 분석으로 취직이 가능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데이터분석은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이었고, 저는 데이터분석을 배우던 도중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약간의 취업사기 아닌 사기를 당하며 이 연타를 맞고 실력이 곤두박질쳤죠. 그렇게 저에게 남은 건 어떤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는지였어요. ’아 나 데이터, 특히 사람에 대한 데이터 보는 거 좋아하네-‘정도가 남은 거죠.


수중에 있던 돈은 떨어져 가고 생활 유지비는 계속 나가니 저는 이젠 정말 취직을 해야만 했어요. 이곳저곳에 서류를 넣어봤지만 역시 광탈. 그러나 이렇게 된 거, 밑바닥부터 쌓아볼까- 싶어서는, 아니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재밌는 거 계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어요. 그렇게 알바를 찾던 중 제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콜센터. ‘사람도 좋아하겠다. 밑바닥부터 쌓아 올리는 것도 좋아하겠다. 무엇보다 재미없으면 일을 안 한다는 깨달음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치자마자 바로 면접을 보러 들어갑니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제가 면접에 들어가 받았던 질문은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컴퓨터 배웠는데 어떻게 여기에 지원할 생각을 했어요?”

물론 저는 턱밑까지 “재밌어 보여서요” 가 차올랐지만 왠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데이터 분석을 배우다 흥미가 생겼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는, 합격통보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매일매일이 도파민의 연속이자, 매일매일이 사건사고의 연속이었어요. 정말 다양한 의미에서 ‘재미’가 폭발했죠. 저는 어느 한 의류회사의 CS팀에 들어갔는데 택배가 분실되는 건 다반사이고, 고객이 기분이 나빠 점원과 싸우다 전화를 거는 상황 역시 많았으며, 어쩔 때는 ‘누가 잘못했는지 판단해 달라-‘는 고객과 오프라인매장직원의 요청도 있었어요. 


 저는 거기서 ‘오 이런 식으로 상황이 흘러가는구나-‘하면서 직관도 하고, 해결도 하면서 재미와 고통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누볐어요. 다만 남는 게 있다면 매일매일이 ‘아 사람은 이런 존재구나’하는 깨달음들이었어요. 고객의 컴플레인 속에는 단순히 해결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이야기와 속상함, 답답함들이 모두 섞여 있었거든요.


이를 말하는 이유는 다름은 아니에요. 저도 물론 좋은 기업 가고 싶었어요. 연봉 더 높게 받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이는 마찬가지예요. 저는 돈에서 초탈한 사람이나 가치’만’으로 행복에 이르는 초인적인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연남동에 들어가기 위해졌던 빚, 꽤 크게 남은 학자금 대출등이 제 앞에 답답함과 막막함으로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온사이더스에 투자했던 시간들이 ‘돈’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됐던 것도 사실이에요. 성공하고 싶었고, 어쩌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기도 했어요. 어쨌든 콜센터는 꽤 지독한 공간이었거든요. 뭐랄까. 같이 일하던 동료가 “여기서 나가려면 119에 실력 나갈 정도는 되어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저도 A형 간염을 걸리고 죽을 만큼 힘들다가도, ‘정말 실려나가면 밖으로 내보나주나?’라고 생각하며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거든요. 하하.


저에게는 자격증을 공부할 옵션도, 영어를 공부할 옵션도, 혹은 계속해서 중소-중견기업의 채용공고를 찾아볼 옵션도 있었죠. 나름대로 소위 말하는 ‘짬바’가 생겨, 대략적으로 어떻게 IT기업에 뚫고 가야 할지는 보였거든요(제 착각일 수도 있지만요). 뿐만 아니라 당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으므로 거기에 더 힘을 쏟았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고민해서 만들어간 뾰족한 재미는 그 위에 이야기가 쌓인다는 점이었어요. 마치 취향 역시 벼려지고 벼려지면 뾰족함이 되고 나의 것이 되는 것처럼말이죠. 내가 커피를 너무나도 좋아하면 여러 커피를 마시고 고민해 보며 좋아하는 향과 맛을 얻게 되듯 재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어요. 망해서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어떤 깨달음이 있었어요. 아, 온사이더스 고민하고 투자하면 평생 남겠구나- 평생의 힘과 재미가 되겠구나- 싶은 느낌이요.


온사이더스의 시작도 마찬가지였어요. 그간 여행에 꽤 많은 돈을 꼬라박으며 얻었던 하나의 뾰족함은 지역의 독립서점을 방문하는 취향이었어요. 또한 오랫동안 한 팀을 응원했던 습관은 독립서점을 방문하는 습관과 만나 시너지를 냈죠. 한 팀을 오래 응원한 사장님과 말이 통했던 것도, 한 팀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에 공감했던 것도 제가 12년간 영국의 어떤 팀을 응원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 나아가 그 공감을 통해 새로운 아이템이나 재미를 얻은 게 아닌가 싶고요.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나 혼자의 재미’를 ‘여럿의 재미’로 확장시킨 시도가 아니었나 싶어요.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도 재밌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 중 하나인 공황장애 역시 함께 재밌는 것들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어느 정도 치유가 된 것 같고요.


비록 이상이 높았다-라는 점에서 아쉽긴 했지만 온사이더스 역시 저를 또 다른 즐거움으로 이끌어줬다는 점에서 온사이더스를 만들고, 참여한 경험은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불안에 휘둘려 자격증을 따거나, 빚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갚지 않고, 온사이더스를 포함한 일상의 재미를 유지하는 일들을 한건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포항 직관에 갔을 때 찍은 사진. 경기를 보러 인천에서 포항까지 간다는건 이전에 나에게 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특히 재미에는 귀천이 없다는 사실을 본 건 더더욱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같이 활동했던 ‘온사이더스’ 멤버들 중에는 스타트업 대표님도 계셨지만 아르바이트 생도 있었어요. 저는 뭐 어땠나요. 취준생이라는 이름을 달았던 백수였던 시기도 있었고, 콜센터 직원이었던 때도 있었죠. 누군가가 볼 때 이런 ‘급’의 사람들이 같이 어울릴 수 있나- 싶겠지만 재미에는 귀천이 없었어요. 온사이더스는 같이 이야기를 하고 떠들 수 있는 공간이었죠. 누군가는 스타트업 대표가 대수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맞습니다. 온사이더스 내에서는 그 직책이 ‘대수’가 아니었을지도 몰랐어요. 다들 그저 건강하게 축구로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멤버십들이자 한 인간이었거든요.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에 귀천이 없다는 사실은 ‘돈 버는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저는 결국 재미를 통해 새로운 직업에 흥미를 뜨게 됩니다. 그때 어영부영하게 더 돈 주는 곳으로 취직했거나 알바를 구했다면 지금 저는 지금의 직장에 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역시 재미에는 귀천이 없어요.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컴퓨터를 배웠’지만 사람이 여전히 재밌는 건 사실인걸요.


어떤 재미에는 위아래가 없다.


“이걸 왜 이렇게 할까?” 일한 지 2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에요. 일에 적응되니 이제 제 마음속에 반골기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걸 이렇게 하지?’ ‘왜 저걸 저런 방식으로 처리하지?’ 라며 눈에 조금씩 불만이 집히고 밟혔어요. 자다 일어나 밟은 레고정도는 아닌데, 걸리 적 걸리는 조그만 택배박스정도의 귀찮음, 일종의 덜그럭거림, 빨리 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무언가였습니다.


하지만 콜센터라는 곳은 위계가 아주 빡빡했죠. 제가 거기서 할 수 있던 건 질문뿐이었어요. 거기서 순수한 척 질문을 하며 하나씩 프로세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질문해서 프로세스나 상황이 바뀌면 완전 땡큐. 하지만 그냥 대답만 들어도 저는 나름대로 이해해서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사와 질문과 대답을 받아가며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제 눈앞에 본사 직원이 등장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듯이요.


온사이더스를 할 무렵, 함께 하는 즐거움을 좀 더 키워보고자 다른 커뮤니티를 기웃거렸습니다. 거기서 하나의 작은 모임을 만들었는데, 우연히 대화를 나누던 도중 그분이 본사 직원이었음을 알게 됐어요. 시스템, 프로세스, 소통하는 방식, 답답함 등을 이야기했고 각자의 답답함 그리고 고충들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그렇게 좋은 기회로 끝나나-싶었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사이트 개선사항을 분석한 PPT를 보냈어요. 저도 모르게 부업, 본업, 온사이더스 등등 없던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PPT를 만들고, 다듬고, 붙였어요. 따로 시간을 만나 개선사항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고요.


뿐만 아니라 기웃거린 커뮤니티의 대표님은 나름대로의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계셨어요. 대표님과 이래저래 얼굴을 보며 해당 스타트업의 디자이너 겸 MD분과도 친해지게 됐죠. 저 스스로 일의 어느 부분을 재밌어하는지 더 또렷하게 느낀 건 이때였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스타트업의 디자이너분을 앉혀놓고 해당 서비스의 문제를 분석하는 PPT를 20장 이상 준비해 발표를 하고 있었죠. 그때 알았습니다. ‘아 나는 무언가를 개선할 때 심장이 뛰는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본사직원분이 참 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 보면 위탁업체 직원이 겁 없이 개선사항을 들이밀어 예의가 없다고 판단해도 저는 할 말이 없었어요. 마찬가지로 디자이너분을 턱 하니 앉혀놓고 개선사항을 말하는 것도 자칫 잘못하면 무례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지금 돌아보면 (물론 개선에 대한 마음과 저에게 건네준 환대가 컸던 것 같지만) 재미라는 동력이 그 시작이 아니었나 생각해 봐요. 콜센터에 전화를 거는 사람들의 마음을 관찰하며, 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느낀 재미에서 더 나아가 이를 개선하는 재미가 제 감각을 계속 예민하게 만들었던 거죠. 어떻게든 개선할 수 있는 ‘각’이 보이면 치고 나갈 감각을요.


회상을 이어가다 보니 저는 처음쯤, 말했던 바흐친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축제에서는 위와 아래, 좌와 우가 바뀐다’라는 주장 말이에요. 재미는 위계를 흐렸습니다. 그리고 개선사항과 사람들을 붙잡고 말할 동기를 만들어줬죠. 제가 본사직원분과 디자이너분과 떠들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공감에서 나타나는, 개선을 향한 재미는 저를 한 명의 동료로 인식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전화 한 번에 분노와 슬픔이 오가던 콜센터의 분위기 상황, 집에 가면 녹초가 되어 다른 일을 하기 참 어려웠던 상황에서도 PPT를 만들고 애정 어린 질문을 하게 만든 건 재미가 꽤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 아래’의 개념 없이 덤빈 저의 재미를 스스로 관찰하며 이를 ‘기획’이라는 두 글자로 요약합니다. 아무튼 사람에 대한 기획을 하면 재밌겠다- 싶었습니다.


위아래를 허문 재미는 저를 좀 더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갑니다. 콜센터를 그만두고 직업을 바꾸기 위해 퇴사를 진행한 뒤, 바로 교육과정을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일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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