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인은 도대체 왜이럴까- 에 대한 조금은 긴 생각.
트라우마도 전염된다는 말이 있다 이를테면
내가 불안하니, 너도 이거 못하면 도태된다고 말할꺼야!!
나는 참으며 청춘을 보냈으니, 너도 참으며 보내야해!!
나도 죽어라 노력했으니, 너도 죽도록 노력해야해!!
같은 말들이다.
하지만 이게, 몇십 만 명이 죽은 트라우마라면 어떻게 될까?
보도연맹학살 사건 - 사망자 추산 최대 120만명
6.25전쟁 민간인 사망 - 사망자 추산 최대 25만명
4.3사건 - 사망자 추산 최대 3만명
"옆 집 사는 김씨,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끌려가서 사라졌데요..."내 상상력을 빌어, 누군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할 때 표정을 그려본다 그 표정엔 분명 두려움, 공포, 불안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뿐일까. 학살에서 겨우 도망친 자, 미쳐버린 자, 삶에서 덜덜 떨던 자 그 사람들을 주변 사람들은 목격하고 또 목격했을 것이다. 매일매일. 일상적으로.
그리고 그 목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쟤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미쳐버렸데..."말 한 번 잘못했다가. 말 한 번 잘못했다가.
그 전염은 무서울 정도로 전염된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언론에서, 매체에서.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표현에, 우리는 전염된 감정을 담는다. 너 학교에서 눈에 띄니까 그렇지. 라는 말에 우리는 감염된 트라우마를 담는다. 왕따를 당해도, 자신의 의견을 정당하게 표출해도, 그래서 피해자가 되도 별 수 없다.
감염된 트라우마는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개인의 개성, 전통, 세계관, 감정, 취향. 소위 말해 '튀는 것'을. 왜냐면, 나도 모르는 사이 '말 한 번 잘 못해' 심겨버린 트라우마가 심겨져 버렸으니까.그렇게 인간이 트라우마를 소화하는 방식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우선 두가지는 이렇다.
타인을 공격하거나
자신을 공격하거나
타인을 공격하는 경우는 이와 같다. '너는 왜 다른 사람과 달라?' 라고 말하며 그 다름을 밟아버리기. 우린 이 모습을 5.18 광주에서, 1987년 연대 앞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회사에서 목격했다. 트라우마의 당연함은 합리성의 모습을 띈채 다름을 짓밟았다.
자신을 공격하는 경우는 이와 같다.
'이 생각은 나빠. 이 감정은 나빠. 당연히 '옳은' 것을 선택해야지.
내 세계관? 취향? 감정? 쓸모도 없는데 왜 만들어. 내가 저 사람 좋아해서 남는게 있겠어? 에휴 됐다'
타인을 공격하진 않지만, 자신은 자신의 트라우마에 의해 자신의 아름다움과 감각을 거세해 버린다. 거기서 세계관, 철학, 감정, 취향은 발아하기도 전에 모두 짓밟혀 버린다. 하지만 세번째에 나는 희망을 건다. 그건 바로 '자신이 트라우마를 밀어내거나-'이다.
가정, 교회, 학교.나도 상처에 대해서는 한가닥 하는데,
상처를 정말 많이 받으면서 알게 된건 그걸 그대로 흘려버리면 누군가 또 다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걸 잘 알았던 것 같다. 나는 내가 가정에서 배운대로만 행동해도 전염된 트라우마가 정답인 것처럼 행동해도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았으니까.
나에게 사회화란 그런면에서 내가 가정에서 자연스레 채득한 습관을 바꾸는 일이기도 했다. 그건 왼손 잡이인 내가 오른손으로 바꾸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지독한 고통을 수반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점점 상처받거나 당황하는 사람이 줄었거든.
나는 10년간 정말 이 상처를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당연히 이 노력은 '모난' 행동이었다. 그러므로 난 꼭꼭 숨겨야만 했다 공격받기 싫었으니까 꽤 외로웠고, 꽤 답답했다 하지만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는게 정말 싫었다다만 답답하면 내가 총대를 매고 뛰는 성질은 이 고민과 시너지가 났다.
남들 스펙 쌓을 때, 나는 이게 중요했다. 남들 무언가 배울 때, 나는 이게 중요했다. 6개월간 준비한 대학원을 떄려친 것도, 이게 핵심이었다. 2000만원을 쏟아부은 여행의 초점 중 하나도 '대안' 이었다. 시간, 학력, 심지어 취업조차 먼 길을 택했다.
그렇지만 분명, 분명히 상처받는 사람은 줄었을 것 같다.
여전히 나는 부족하고, 상처를 주고 있을 것 같다. 아니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트라우마를 전염시키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당당함과 부끄러움 속에서 계속 균형을 맞춰 나갔다.
누구보다 열심히 트라우마를 전염시키지 않을 수있도록 노력한것의 당당함
그러나 아직 부족한 것의 부끄러움
이 균형 속에서 나는 살아왔고 여전히 살 것 같다.
분명 여러분 중에서도, 이 트라우마를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숨어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건 정말 작은 단위
"아빠는 나를 험하게 대했지만 난 아들을 그렇게 대하지 않았어" 일수도 있고
"분노 하는 사람에게 다정히 대하기" "까탈스러움에도 친절하게 대하기"
"식당 아주머니를 사람으로 대하며 꼭 '감사하다'고 인사하기" 등일 수 있다.
혹은 진심으로 사회적 변혁이나 서비스를 꿈꾸는 사람일 수도 있고
이 글을 쓰며 바라는 건 나와 연결되거나 나와 대화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저, 어딘가에서 이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
당신은 어떤 면에서 외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어딘가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150만이 죽었던 트라우마를 내가 다 감당하고 있지도 않고 나는 어쩌면 고작 사회, 고작 가정, 고작 학교의 트라우마 정도를 감당했겠지만 그럼에도 선순환은, 여기서 시작된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아니, 당신들의 그 노력을 통해 그 선순환이 시작됐다고 말하고 싶다.
혹여 슬프신가. 외로우신가.
당신들은 이미 선순환을 시작했다.
그 노력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