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화가 많은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정제된 감정, 너무 잘 다듬어진 언어, 타인의 눈치를 먼저 보는 편이다.
그런데도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느낀다.
“아, 내가 지금 화났다고 말하면... 뭔가... 뭔가 짜증나고 자존심 상한다."
그게 바로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다.
화가 많은 사람들은 왜, 정작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을까?
화가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지금 화났어?”라고 물으면
"아니!! 화 안났다니까!! ”라며 화를 표출한다.
아니 혹은 이럴지도 모른다.
"화. 안났다고. 괜찮다고"
우리는 종종 그들을 “차가운 사람”, “화난 사람”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감정을 너무 많이 느껴왔고,
그 감정이 타인에게 어떻게 번져나가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감정이란 건 본래 흐름이 있는 것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세계-내-존재(Dasein)’라 불렀다.
즉, 인간은 본질적으로 상황 속에서 의미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데 만약 이 흐름이 강력한 폭발로 인해 끊긴다면?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 주변과 나, 세계와 나의 흐름은 끊긴다.
타인과의 세계도, 나 자신의 흐름도 순간적으로 붕괴된다.
화가 많은 사람은 그걸 안다.
살면서 몇 번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본능적으로 ‘어그러짐’을 두려워한다.
감정이 휘몰아치면, 내가 아끼는 사람과 멀어지고,
내가 지키고 싶은 세계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통제욕도 강한 편이다.
이들은 자신의 마음이나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어그러짐과 통제욕.
이 두가지가 만나 누군가 '너 화났어?'라고 물어보거나
'너 힘들어?'라고 물어보면
그들은 마음의 통제욕과 상황의 어그러짐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이렇게 대답한다.
“힘들어요”가 아니라
“괜찮아" 혹은 "괜찮다니까!!" 라고 하며
“지금은 내 감정을 너에게 맡기지 않을래요.”라는 무언의 선택을 한다.
그게 무례한 건 아니다.
그 사람의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지키려는 노력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그들의 감정을 미리 해석하지 않는 것이다.
“너 화났지?”, “너 힘들지?”라고 단정 짓기보다
화가 풀릴 때 까지 기다려주고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까지 기다려준다.
조금 상대방이 성숙하다면
"너가 화난건 이러이러한 상황 때문이 아닐까?"
혹은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정확한 감정 지적을 통해 통제권을 가져오는 게 아닌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꿰뚫어보고,
자신의 감정을 먼저 끌어내려는 걸 불편해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정리해주는 사람에겐 은근히 고마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들도 자기 감정을 어디에 내려놓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화가 많은 사람은 감정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감정의 위험을 아는 사람이다.
그들이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심한 것도, 냉소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을지 아직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일 뿐이다.
그런 사람에게
감정의 주도권을 지켜주고,
상황을 무너지지 않게 감싸주는 말—
그 말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