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여행을 통해 배운건 다양한 욕망이였다.

by 시몬 베유

참 아직도 빡빡하다. 20대엔 이렇게 해야하고, 30대엔 저렇게 해야하고, 40대엔 이정돈 가져야하고- 하며 타인의 불안을 불살라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 있고, 계급도를 정리하고 굳이 내어 ‘주인공’의 자리에 꿰차려는 사람들, ‘이거 못가졌으니 당신은 아직 인생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더 열심히 사세요’라고 압박을 주는 사람들, 좀 격하게 말해서 그냥 길을 걷는 사람에게 ‘조상신이 굶고 있어서 당신이 안풀린다’며 굳이 불안을 유도하는 사람들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스위스에선 점심시간 짬을 내 카약을 타는 사람을 봤고, 프랑스에선 굳이 시간을 내 가족과 무조건 저녁 식사를 하는 이들을 봤다.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옆 사람을 보고 웃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 가보면 더 기가 막히다. 철학을 하셨다고요? 좋아하는 철학자 있으세요? 그림 좋아하세요?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런 생생한 질문들과 대화들, 결들이 나에겐 새로운 상상력이였다. 나의 불안을 자극해 무언갈 가져가려는 도믿걸들이 그득해보이는 사회를 벗어나보니.


물론 안다. 모든 유럽인과 모든 외국인이 그렇게 사는가. 난 아니라고 되려 반박할 수 있다. 그건 환상이고, 일률화다. 하지만 ‘쓸모’만을 쫓는 사회에서 타인과 연결되고 대화하는 욕망을 좀 더 철저히 벼려낸 이들의 감각은, 언제나 나에게 보고 배우고 심지어 존경까지 할만한 것이였다. 클럽에서 장애인과 함께 춤추고, “너가 풍경을 찍으면 너는 풍경에 없잖아. 내가 사진 찍어줄까?”라고 묻고, 대화가 좋았다며 매실과 커피, 간식 값 까지 무료로 내어주는 카페 사장님의 욕망들은 도대체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요즘 한국으로 시각을 돌려보면 다양한 욕망을 상상할 환경조차 안되는 것 같아서, 무조건 앞으로만 보고 뛰라는 것 같아서, 결과를 내지 못한 인간들은 죽어야하거나, 1인분을 못하면 범죄거나, 욕먹어도 싸다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계급도를 통해 인생을 마비시키고는, 연봉과 결과로 사람을 넣어놓고는, "욕먹어도 싸다"라는 판을 까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딱 잘라말해, 보고 배울 욕망이 하나인 것 같아서 안타깝다. 더 쉽게 말해 행복에 이르는 길이 하나로만 국한되는 것 같아서, 행복의 레퍼런스가 한가지 종류인 것 같아서 안타깝다.


난 부디 우리의 욕망이 일률화되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배울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한다. 행복에 이르는 길이 하나로만 좁혀지지 않았으면 한다. 사랑의 정의와 상상이 자본과 외모로 단일화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상상은 여기서 멈추는걸까. 추앙의 힘은 계속 다양한 행복을 밀어내는 걸까. 아니. 난 그럼에도 계속 희망을 걸어본다. 안되면 나라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아, 그러니까 모든 예술과 문화와 심리학과 철학과 인문학을 하는 이들을 응원한다는 이야기다. 자기만의 이야기와 행복으로 끝없이 밀고나가는, 자본’만’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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