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뉴욕. 자신의 속도로 산다는 것.

by 시몬 베유

뉴욕여행은 사회에서 강요한 속도보다 훨씬 느린 속도였다.

아니 낯선 속도였다.


퇴사 전 이사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냥 여기서 이직하고 가요. 그래도 회사에서 기여한 사람이 밖에 나가서 얼어 죽는 건 좀 나도 마음이 그래”


효율과 애정 어딘가를 가로지르는, ‘얼어 죽는다’는 역설적인 말.

따뜻함이 느슨히 배어있지만 ‘얼어 죽는다’는 차가움도 동시에 가진,

무엇보다 ‘이것이 정답’이라는 단단한 힘을 가진 말. 아- 나는 거기

살짝 흔들릴 뻔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특유의 습성이 나온다.

외국인인 척하기. 문맥을 못 알아듣는 척 하기.


“아 진짜요? 아 뭐… 나가서 저는 이런 계획도 있고 이런 계획도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맞다. 그 계획은 터무니없고, 가능성도 없다는 걸.

바깥공기는 차갑고, 취업은 어렵다는 걸. 하지만 난 뭔가 알았다.

여기서 더 있다간, 계속 효율이라는 리듬에 삼켜져

나의 느린 템포의 연주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렇게 나왔다.

회사를.


사실 퇴사 직후 떠난 제주도까지는 걱정이 없었다.

다녀와서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정론이었으니까.

하지만 뉴욕은 좀 달랐다. 퇴사 후 2개월. 그때부터

취준을 해야 한다는 말에 토를 달 한국인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고 싶었다. 가야만 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도, 심지어 친한 친구의

결혼식도 불참하던 이유는 ‘겸사겸사’였다.

어떻게 스타트업의 부대표님을 알게 되어 인터뷰하러 간다는

그런 핑계와 진심 사이. 결국 그분이 계신 아틀랜타는

극악무도한 항공사 프런티어 항공이 당일 퇴짜를 놓는 바람에

아틀랜타는 흙조차 밟아보지 못했지만,

결국 뉴욕이 인생을 바꾼 여행인 건 확실하다.


매 번 나보고 장난으로 ‘너는 어떻게 매 여행이 인생여행이냐’

핀잔을 주는 친구가 있지만

나는 진심 어리게 실패한 여행이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진정 ‘내가 옳음’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옳은 점’이나 ‘그들의 대안’을 겸손하게 확인하기 때문이다.

나의 말랑함, 개방적, 호기심, 겸손함은 거기서 빛을 발하고

나는 정말 변해서 온다. 그래서 이 번 여행, 이 번 여행은

나를 찾은 게 꽤 컸고.


나의 속도로 밀고 나간 곳엔, 내가 있었고

다양성이 있었고, 정체성이 있었고, 내 질문이 있었으며

곧 포근함과 강인함이 있었다. 언어도 서툴고, 지역도 낯선 그곳에서

처음으로 ‘집에 가기 싫다-‘라는, ‘모국’이라는 표현을 왜 쓰는지 알 것 같다는

교만한 감정이 있었다.

IMG_5200.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철학과를 나와 콜센터에서 배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