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나가 예뻐 내가 예뻐?" 질문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에게 당혹감을 주는 질문은 이런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이 사실 '질문의 시대'에 도달한 우리에게 꽤 의미 있는 질문이라고 본다. 사실상 어떻게 하면 혁신을 일으키고, 어떻게 하면 욕망할만한 제품을 만들지 고민하는 세계에서 상대방의 욕망에 맞는 대답을 하는 것은 곧, 욕망에 맞는 상품을 만드는 것과 닮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건 상품의 영역만은 아니다. "카리나가 예뻐 내가 예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완벽한 도덕이란 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마치 R&D를 진행하는 이과생들의 질문과도 같다고 느껴진다. 마치 어떤 '정신'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는다고 해야 할까. 카리나를 통해 여자친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리의 신이, 화학의 신이, 지구과학의 신이 우리에게 나에게 질문을 던지면 내가 그것에 대답하는 방식을 찾는 방법은 마치 어떤 '정신'에 대답하는 일과 메커니즘이 비슷해 보인다.
이제 질문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급작스레 질문에 대한 수요와 이야기가 높아졌다. 그러나 항상 질문의 '응용'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해 봤다. 그래서 던져봤다. 질문은 어떻게 질문이 되는 걸까.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봤다. 우선 질문의 방향성과 질문의 맥락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눴다. 그다음 세부영역을 붙였다.
1_1 생각을 향한 질문
: 우선 생각을 향한 질문이다. 왜, 상대의 '생각'이나 정보를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질문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스스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공룡은 물을 먹고살았을까? 왜 지구본은 기울어져있지? 식물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왜 우리 부서는 이 모양일까? 등등이 여기 해당된다. 혹은 상대방에 대한 질문도 그렇다. 저 부장님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회의 때 어떻게 하면 내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 그러면 우리는 GPT를 켜서 물어본다. 대부분 '생각'에 대한 질문은 여기서 해결된다.
정보성 글은 답이 명료하다. 곧 인간이 측정가능하거나, 답이 명시적으로 정해져 있거나, 근거가 과학적으로 확실한 경우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다. 물론 GPT의 거짓 정보나 헷갈림(할루시네이션) 이슈가 있지만 대부분은 구글 검색으로 접근이 더 빨라지고 가능해졌다.
해당 '생각'에 대한 질문이 단순하지 않더라도 GPT는 나름대로 잘 연산해서 잘 대답을 가져다준다. 통계예측이나 통계열람, 다음 연도 매출 예측이나 매출의 플로우 등 내가 잘 정제된 데이터만 있다면 GPT는 이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을 가져와 대답해 준다.
심지어는 GPT가 어느 정도 머신러닝을 처리하는 시대. 곧, 좋은 정보만 넣으면 좋은 정보가 나오는 시대다. 하지만 GPT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감정'의 영역이다. 아쉽게도 마케팅부터 여자친구의 "카리나가 예뻐? 내가 예뻐?"라는 질문, 조금이 질문이 가볍다면 "여자친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어떤 맛집을 데려가줘야 할지-"라는 질문까지 GPT는 대답해 주기 어려워한다. 그래. 어떤 질문은 GPT로 해결할 수 없다. 감정에 해당되는, 상대가 '생생'하고, '예측가능'하지 않은 범주에 있는 생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1_2 감정을 향한 질문
"그래도 답하자면 너. 최종."이라는 질문자조차 견디기 어려운 답변이 나온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GPT는 내가 얼마나 여자친구를 좋아하는지, 얼마나 사귀었는지, 이전에 어떤 질문들이 나왔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 감정의 맥락을 잘 알지 못한다. 반대로 여자친구의 입장도 더더욱 알지 못한다. 내가 여자친구에게 외모의 집착을 강요했거나, 여자친구에게 수동적인 역할을 강요해 마지막 저항의 질문으로 "내가 예뻐? 카리나가 예뻐?"라고 화가 잔뜩 난 채로 질문했다면 내가 해야 할 답변은 단연코 "미안해"다.
그러나 저런 해괴한 멘트를 그 상황에 친다면 나와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부서질 가능성이 높다. 저 질문 자체는 어쨌든 '내가 여자친구와 더 잘되고 싶은 욕망' 혹은 '여자친구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욕망'에서 나올 테지만, GPT는 생생한 분위기나 상황, 그 찰나의 무드를 알지 못한다. 물론 전반적인 맥락도 말이다. 이를 마케팅의 상황으로 옮겨보면 어떻게 될까?
KPOP 아티스트가 미국에 진출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미국에서 KPOP이 소비되는 현황, 상황, 감정, 맥락등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예술의 분야이니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을 인터뷰해야 할 것이고, 무대연출이나 아이템도 좀 더 '한국의 KPOP' 스러움보다는 미국에서의 익숙함에 좀 더 가까이 가야 할 것이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양념치킨'의 맛이 고추장과 초고추장사이의 달콤하고 매운맛이지만, 미국 치킨 브랜드에서 나온 '양념치킨'의 맛이 불닭볶음 맛이 나듯, 트렌드와 맥락에 맞춰서 고민하고 질문을 던져야 하는 건 필수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상대방과의 대화와 반응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모든 문제를 GPT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설을 세우고, 고객의 피드백을 보는 이유도 역시 여기에 있다. 곧, 감정을 향한 질문은 정보로는 풀기 어렵다. GPT에게서 이 답변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이는 한계가 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트렌드와 감정이 GPT에게 취약점이듯, 감정을 향한 질문은 좀 더 '사람'에게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좋은 '감정을 향한 질문'을 던져 부장님이건, 여자친구건, KPOP 소비자들에게 건 긍정적 답변을 얻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이런 현상을 보게 된다. '반응'만 할 뿐,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들을 말이다.
1_3 욕망을 향한 질문
결국 마케팅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질문이 여기에 당착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감정을 넘어, 호감을 넘어 '행동'하게 만드는 맥락 말이다. <나에게 "마음"은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연애를 하고 시간은 안 내주네..>라는 질문부터, 사람들에게 '호감'은 얻었으나 직접 구매로 연결되지 않네-까지,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시작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은 이렇게 변할 수도 있겠다.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을 내주게 하려면 어떻게 하지?
사람들이 우리 제품을 좋아하는 건 같은데, 사게 하려면 어떻게 하지?
조회수나 체류 시간은 꽤 긴데, 어떻게 하면 멤버십에 가입하게 하지?
사람들이 행사에는 많이 오는데, 어떻게 하면 꾸준히 머물게 할 수 있지?
등등이 이와 같다.
'전환'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 경험이 더 멸종되어 갈수록 보는 행위에서 사거나 직접 해보는 일, 행동을 바꾸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탄생하는 것이 바로 욕망에 관한 질문이다. 그 사람이 이것을 어떻게 갖고 싶어 하고, 소유하고 싶어 하게 끔 만드는가- 그리고 소유 '하게(do)' 만드는가.
사실 소유에 초점을 맞춰 서술하게 했지만, 정확히 나는 '하다(do)'에 초점을 맞춘다. 협력'하게' 만들기, 계약'하게'만들기, 함께'하게'만들기, 투자'하게'만들기, 구매'하게' 만들기 등 매력의 영역에서 자신의 손실을 무릎'쓰게' 만들기의 영역은 정말 어렵다. 마케팅의 영역을 넘어 결국 욕망에 대한 질문은 '하게 만들기(doing)'의 영역에 속한다.
욕망의 질문은 GPT는 더 모른다. 그 사람에게 직접 물어야 알 수 있다. 아니, 그 사람이 정확히 모르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는 항상 이유가 붙고, 이야기가 붙는다. 우린 거기서 더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의 '감각'을 찾아낸다. 마크로스코, 피카소, 바스키아 등의 미술작품은 왜 우리에게 경탄을 자아내게 만드는가, 아이돌의 춤이나 목소리는 왜 수만 명을 이끄는가 등의 이야기들을 우리는 정보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실행할 수 없다. 그들에게 물어도 우리에게 정확한 답변을 해주지는 못한다. 만약 이 답변이 '정확'하다면 그러니까 이게 '정보'의 차원으로 정확하다면 내가 똑같이 내가 해낸다고 해도 똑같은 욕망과 똑같은 감정을 만들어 내야 한다. 굳이 미술관에 찾아가서 돈을 내고 내가 똑같이 그린 작품을 보고, 힘들 때 문뜩 내가 정확하게 커버한 노래가 생각나 나의 노래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 사람만이 이끌어내는 무언가가 있다. 곧 이는 이런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실 앞의 예시들은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뤘지만 술에 취해 정말 힘들 때 나도 모르게 카카오 택시를 타고, 어떻게든 편의점에 가서 숙취해소제를 사 먹는 건 몸에 내재된 욕망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판단이 흐려지고 감정조차 무뎌진 그 상황에 특정 브랜드의 숙취해소제를 떠올리는 일, 나도 어떻게 왔는지 모르지만 카카오택시를 켰던 일, 그리고... 가끔은 잊지 못해 전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일-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욕망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욕망에 관련된 일들 역시, 뇌과학을 기반으로 한 정보에서, 또한 '감정'을 기준으로 한 통계와 정성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에서 힌트를 얻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욕망을 다루는 질문은 두 가지 영역보다 더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
3_ 나가며
가설이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현상을 많이 목격한다. 소비자의 타깃은 이제 나이, 지역등을 넘어 어떤 '이야기'를 공유하는지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너무 어렵다면 이렇게 설명해도 좋을 것 같다. 제주도 카페를 창업했을 때 이전 타깃은 "20대 중반. 제주 첫 방문. 인스타그램 자주 사용. 감성 카페 좋아함" 정도였다면, 이제는 "다들 퇴사하고 제주도를 간다고 해서 제주행 티켓을 끊은 20대 중반의 A 씨. 그럼에도 자신이 '멋진 사람'인 것을 보여주는 것은 놓치지 않으려 멋진 카페를 중간에 넣기 위해 방문한다'의 이야기가 좀 더 디테일해진다.
아무래도 욕망에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가 많아졌고, 그만큼 자신이 복잡해진 한 편, 자신의 취향과 자존이 높아짐과 동시에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는 이 콘텐츠를 엮는 역량마저 높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 같다. 반면, 취향과 감도가 지금 시대의 생존에 유리하므로 감각들은 더 선명해지면서도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우리의 취향과 감도는 더 높아지고, 이야기는 더 복잡해졌다.
여기서 우리의 질문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결국 그 사람의 이야기에 향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이야기이던, 나쁜 이야기이던 간에 우리는 그 사람이 왜 갑자기 행동하게 됐는지, 왜 갑자기 욕망의 흐름이 바뀌게 되었는지 질문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당신은 왜 거기서 그런 행동을 했는가. 저 사람은 왜 저기서 저런 행동을 했는가. '인문학'이라는 추상적 단어 이전에, 우리가 던져야할 질문은 이야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나는 묻는다. 당신은 왜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 왜 그것을 샀는가. 왜 그 카페까지가서 돈을 쓰는가. 그 고객은 왜 전향했는가. 전향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무엇이 그 고객과 그 사람의 드라마틱한 전향을 만들어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