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를 좀 더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자신이 평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관심을 받으면 빛이 샤르륵 난다. 내 두근거리는 눈빛은 가끔 정말로 빛이 되어 그 사람의 특별함을 되살릴 때가 있다. 나에겐 순수한 재미였는데, 그 사람은 자신 안에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한 살짝의 느낌. "오... 혹시 왜 그런지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하고 물으면, 그 사람은 더욱 신나 이야기를 말해보고 시작한다. 순수한 관심의 힘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판단이 아닌 환대로 기울 때, 경청을 넘어 상대의 순수한 호기심을 유발한다고 인식할 때 그 사람은 샥 하고 살아난다.
마치 빛을 받은 유리조각이 주변을 밝히는 느낌으로 그 사람은 즐겁게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마다 유리조각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빛은 유리조각보다 더 눈이 부시다. 사실 따져보면 어떤 이야기라고 고유하지 않을 수 있겠나-. 나의 빛을 받은 그 빛은 자신의 빛을 가진 또 다른 빛이니 내 빛이 들어갈 때는 얼마나 찬란하던가. 특히 자신조차 부정하거나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에서 이 질문이 들어오면 끝내 빛은 움켜쥔 자신의 밝음을 밖으로 내뿜는다.
그런 고로 내 눈빛이 빛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여지가 없는 마음이겠다. 질문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사실 궁금해하지 않을 것도 궁금함 투성이다. “왜 거기선 그런 선택을 하셨어요?” “왜 거기선 그렇게 행동하셨어요?” “오… 너무 재밌는데 더 말해줄 수 있으세요?” 하면서 나도 모르게 물음표 살인마가 된다. 이렇게 나도 모르는 눈빛과 함께 이야기에 빛이 비치면, 어느샌가 그 사람도 자기 안의 이야기의 특별함을 발견하곤 신나게 떠들어댄다. 나는 그러면 이렇게 감탄을 속으로 삼킨다. 아- 그 떠들어댐의 빛깔은 얼마나 찬란한가. 마치 깨진 유리조각일수록 오히려 주변에 더 찬란히 빛나듯, 네온사인처럼 빛나는 이야기과 흥분-은 얼마나 영롱한가. 그 사람의 마음을 더 주워 모아 인생 중 한 시간의 인덱스를 달고, 고이고이 반복재생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좀 더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재미를 위한 욕망과 순수한 사랑이 좀 더 눈빛으로 나와 타인의 이야기를 찬란히 비추는 정직한 빛이 되었으면 한다. 그럴 때 그 이야기에는 생기가 돋는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에 좀 더 정직하고 솔직해진다. 진정한 글쓰기는 긍정에서 탄생한다는 말이, 우리 모두 각자 인정 투쟁을 하고 있다는 말이 여기에도 붙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