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처음으로 지키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나는 혼란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지켜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나도 모르게 외치는 자기 암시가 생긴 건 12월 초반. 나도 모르게 이 문구를 외치고 있음을 알았을 때는 다름 아닌, 3-4일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자신의 기쁨은 자신이 만드는 것. 자신의 행복은 자신이 지키는 것”. 나는 아침 빨래를 돌리며, 또 2층 침대에서 내려와 씻으러 내려가며, 또 아주 가끔은 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며 이 문구를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그러면 부쩍 힘이 났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상쾌해지는 기분. 아니, 더 정확히는 ‘지킬 것’이 있다는 그 기분이, 그리고 그 ‘지킬 것’이 다름 아닌 나에게 무해하고도 좋은 것이라는 게 나에게 ‘있음’이 좋았다.
그러므로 이 자기 암시는 나에게 ‘좋은 것’이 있다는 확인이기도 했다. 기쁨을 넘어, 그냥 내가 지키고 싶고, 또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 두 손에 처음으로 가득 담긴 것이 있다는 것.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면 나를 밝혀주고 든든하게 해주는 어떤 번쩍거리는 것이 있다는 것. 싸우고 싶고, 생을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것. 참으로 기뻤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 빈털터리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돈이라던가, 맥북이라던가, 아이패드라던가, 집에 있는 잭다니엘이라던가, 이런 것들은 나에게도 ‘소유’의 영역에 속하는 어떠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지키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이것들은 언젠가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누군가 가져가는 것이었다.
나는 영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나 빼앗길까 봐 두려웠다. 언제나 나는, 기쁨을 기쁨처럼 집에 들고 가면 아빠는 항상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너는 왜 그렇게 행복하냐-“며 나를 나무랐다. 마치 20만 원을 열심히 벌어 통장에 넣으면, 잘못도 하지 않은 사채업자가 30만 원을 빼앗아가듯 나의 행복은 그렇게 영원한 마이너스 통장으로 20년 동안 하지 않은 대출이 늘어났다.
그러므로 기쁨이란 것은, 나에게 기쁨이란 것은, 아니 정확히는 ‘소유’하는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저기 멀리 오즈의 마법사나 유토피아에 속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소유하는 법을 배울 수 없었다. 그렇게 안전이라도 하고 싶어, 돈을 끌어 집을 나오니 이젠 진정 자본의 논리를 가진 은행에서 돈을 가져갔다.
그러므로 늘 싸움을 피하기만을 선택한 나의 방식은 어쩌면 나만의 고도화된 생존 방식이었음을, 나는 안다. 지키는 방법을 몰라 싸움이 걸리면 나는 속절없이 빼앗겼다. 지킬 줄을 몰라 늘 가져감을 당해버렸다. 늘 나의 마음은 빈손이었다. 물질은 나에게 상징이지 즐거움은 아니었다. 오직 바라는 것은 평화와 안정. 더 가진다는 것은 나에게 사치였다. 아니, 정확히는 더 가지는 방법을 몰랐다. 나는 소유에 해탈한 것이 아니었다. 해탈 이전에 소유하는 방법을 몰랐었다.
전철을 타고 용산역을 나오니 입김이 시리다. 그럼에도 장갑과 목도리를 두르고 부당해고에 대해 힘차게 저항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해가 가지 않았던, 찬바닥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하던 어떤 유가족들도 생각난다. 이를 갈며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와 욕심을 실현하기 위해 바둥바둥 악을 써가던 영화의 수많은 주연과 조연들, 캐릭터들, 왜 그렇게까지 공부하는지 몰랐던 강남 대치의 수많은 수험생들이 생각난다. 또 상처가 많아 보이던 일진 친구들이 왜 그렇게 폭력적이었는지도 생각난다. 갑질하는 사람들과 생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던 이들의 얼굴이 교차된다. 이들의 강렬한 싸움이 이제야 이해되기 시작한다. 아- 이들은 지킬 것을 지키고 싶어 하는구나- 하며.
나는 어쩌면 소유욕에서 자유로웠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소유하지 못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최소한 내가 많은 것에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다고 부쩍 구덩이에 굴러 들어가 본다. 그렇게 묻는다. 나는 본디 쏟아지는 생의 즐거움과 기쁨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내일이 돼도, 모래가 돼도 주문처럼 외울 것이다. 무언가 있어야 지켜내기 때문에. 지켜내는 경험이 없다면, 또 쌓아가면 되기 때문에. 앗아가는 이들에 대해 분명 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나에겐 이제야 쌓아가던 기쁨이 있으니까. 나의 기쁨에 대해 늘 질투하던 감정적 빚쟁이와는 꽤 멀어졌으니까. 마음의 방에 볕이 들기 시작한다. 자세히 보니 예쁜 모양으로 꽃이 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