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헤겔에서 배우는 것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야 할까? *철학자 헤겔에서 배우는 것.
요즘 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야 할까...? 저에겐 위대한 철학자 두 명이 있어요. 그건 바로 칸트와 데카르트예요. 철학에 대해 모르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철학자들인데 요즘 들어 이 철학자들에게 심술이 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이성 만능주의', 쉽게 말하면 '앎이나 정보가 매우 중요해!'라고 외친 철학자들이란 점이에요
물론 당시에는 엄청난 파격적 주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앎보다는 기도가, 뚜렷한 근거보다는 왕의 칙령과 말이 더 중요한 시대였으니까 말이에요. 그 당시에는 데이터가 어쩌고, 근거가 어쩌고, 관측해 보니 어쩌고... 가 통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이 왕이 순혈인가. 선택받은 혈통인가. 그리고 그 사람은 무슨 말을 했는가 혹은 신이 선택했는가 등등이 중요했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앎이 중요해!!'라고 말하다니. 정말 제 표현대로 하면... 개 저는 주장이었어요.
하지만 늘 어느 주장이나 완벽하지 않는 법. 칸트와 데카르트의 주장과 한국의 역사적, 문화적, 지역적 맥락은 곧 '학구열'이라는 무시무시한 부작용을 낳았다고 생각해요. 칸트는 앎을 통해 "스스로 생각할 용기를 가지라"라고 말했고,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자아라는 개념을 통해 드디어 신이라던가 권위에 벌벌 떠는 사람에서 독립적인 나를 구해내었으나, 어느샌가 수능은 스스로 생각할 용기보단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기회로,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기회로 가는 방향과 방식이 됐습니다.
앗 잠깐, 혹시 '그래서 수능을 전반적으로 무시하고 공격하고 싶나요?'라고 묻는다면, 전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이것이 나쁘다 좋다를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앎이나 수능을 통해 전달을 좀 더 명확히 하고 싶었어요. 무튼 주장을 이어가 보자면, 사실 수능이 먼저인지 경제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경제가 먼저겠지만) 무언가를 얻으면 삶의 주인공이 된다!라는 도식은 경제를 통해 꽤 팽배한 진실이 돼버렸고, 영어를 잘하면, 깨달음을 얻으면, 이 정도의 돈을 얻으면, 이 정도의 명예나 권력을 얻으면, 장원영과 차은우의 얼굴이 되면 세상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측정가능한 것 그리고 그것을 가지는 것. 정확히는 '이것이 있다면 행복하다'라는 방식은 데카르트와 칸트의 생각 곧, 근대에서부터 왔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법 한데, 여기서 미안하게도 한 명의 철학자를 더 꺼내보려고 해요. 물론! 어려운 이야기를 할 것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름은 한병철. 한국 철학자예요. 그는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 29p
주체라는 이름이 어렵다면 '주인공'으로 표현해도 되는데요. 그러니까 한병철 씨의 말은, 성과주인공, 성과를 계속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 나를 계속 성과를 낼 수 있는 자유에 몸을 맡기어서 몇 시간이고 몇십 시간이고 일을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멈춰서 생각해 봐요. '성과'를 얻으면 정말 자유가 있을까? '성과'를 얻으면 정말 주인공이 될까?
항상 질문하던 거지만, 요즘 들어 특히 이 질문이 들더라고요. 과연 돈을 가장 많이 번 빌게이츠는 돈으로'만' 행복을 얻었을까? 가장 예쁘다고 소문난 카리나나 장원영, 차은우는 정말로 행복의 원형에 가닿아있을까? 싶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등바등 가지려고 하는 것을 진정 얻었을 때 혹은 단숨에 가져왔을 때 과연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질문 말이지요.
생각해 보면 그래요. 현상만 놓고 보자면, 과연 우리가 100억 정도 자산가라고 가정했을 때, 로또의 행복을 지금 당첨되는 것만큼 즐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여기, 칸트 이후에 나타난 철학자가 있으니... 이름은 바로 헤겔이에요. 헤겔이 너무 어렵다면 혹시 '정-반-합'이라고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어요.
헤겔은 세상이 '정(올바름)-반(반격) 이 부딪혀 합(완성)'으로 나간다고 봤어요. 그러니까 정설이 있고, 반박이 있어서 그것이 올바른 것으로 나아간다고 보았죠.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건, 그렇다면 여기서 '주인공'이 누구냐는 거예요. 헤겔은 여기서 대답해요. 이걸 이끌어가는 어떤 '정신'이 있다고 말이에요. 이를 적용해 보면 이런 거 같아요. "네가 열심히 돈을 벌어도, 어떤 자본의 정신이 있어서 너의 열심조차 자본주의의 발전에 사용되고 있어." 혹은 네가 주인공이 되려고 수능을 보겠지만 결국 그것도 역사의 어딘가에 편입된다고-라고 말이죠.
제 착각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아무리 신경을 쓴다고 해도 '세계'를 인식하는 건 필연적인 것 같아요. 내가 열심히 성과를 낸다고 해도, 결국 투자자들이 한 번에 돈을 버는 걸 보며 허무감에 빠지기도 하고, 열심히 주인공이 되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도 남는 건 1등 혹은 큰 힘 앞에서의 무력한 나일 때도 많아요. 이처럼 어쩌면 주인공은 노력한 '나'가 아니라 더 거대한 어딘가 혹은 이를 이끌어가는 무언가일 때가 많아 실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는 '과정'을 좀 주목해보고 싶어요. 애초에 '절대정신'이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은 우발적인 사건들과 상황들로 뒤덮여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 스스로 이 절대정신으로 가치를 만들고 정반합을 써 내려간다면?이라는 질문도 추가해 봅시다. (실제로 이 접근은 요즘 유행하는 니체나 더 나아가 이후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주장과 비슷하기도 해요!) 그러면 조금 내 과정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서사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접근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심지어는 더 깊이 내려가면 내가 방향과 상황을 설정한다는 관점에서 내가 삶의 설계를 하고 기획을 하고 방향을 잡는다는 거니까요.
물론 과정에 대해 고민한다고 해서 우리가 삶의 완전한 주인공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여행을 할 때도, 내가 기획하고 설계하고 또 같이 여행하는 사람과 함께 추억을 쌓을 때 많은 것들이 남고 내 삶이 충만해지듯, 내가 나의 생각과 내가 영향을 받을 그 과정들을 하나씩 통과해 나가면 마음은 좀 더 편해지지 않나 싶어요. 또한 무엇보다 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신이 설계한다는 관점에서도 좀 더 주체(주인공)적이지 않을까 싶고요.
실제로 우리가 무언가를 ‘가져야만’ 자신을 설득하고 보이는 세상 속에서, 이제 ‘과정’에 대해 묻기 시작한 시대로 점점 넘어가지는 않을까 싶은 모습이 들기도 해요. 무언가를 가져서 행복해졌다는 증언들이 설득력을 잃기도 하고, 유튜브나 정보의 범람으로 다양한 행복의 모양이 있다는 것들 역시 확인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왜 주인공이 되었는지 살펴보는 우리의 마음만 들여다봐도, 과정 자체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나- 싶습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시대.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