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벼루는 진시황 때의 것으로 추정한다. 벼루는 무겁고 자리도 많이 차지한다. 그래도 소모품치고는 잘 닳지 않아 문방사우 중 소장가치가 높은 물건에 속한다. 꽤 가치 있는 골동품이 많다. 그래서 박물관에 전시된 벼루가 의외로 많다. 그러니 귀하다. 두 번 말하면 입 아프겠지만 유명 벼루는 상당히 비싸다. 그래도 자꾸 보게 된다.
벼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다. 세상을 담은 미니어처다.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벼루도 예외일 수 없다. 바다와 땅, 연못과 집, 길도 있다. 연지, 연당, 묵도, 묵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안고 있으니 무거울 수밖에.
말도 못 하게 화려한 벼루도 있고 담백한 벼루도 있다. 외형은 그렇더라도 무엇보다 좋은 벼루는 먹이 곱게 갈리고 먹물은 흡수되지 않아야 한다. 입김 정도의 수분은 아니더라도 물 몇 방울로 정체를 알 수 있다. 내 벼루는 물 몇 방울 정도는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초보용 벼루는 그 가격만큼 한다. 내 벼루는 저렴하다.
유명한 벼루에 중국의 단계연과 흡주연, 우리나라의 남포연이 있다. 중국 제품은 가성비 좋은 물건으로 시장에 넘쳐난다. 그래서 우리나라식 벼루의 총칭인 해동연은 훌륭했던 과거의 명성을 뒤로하고 수요가 너무 적어 그 맥을 잇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벼루의 상황만은 아니다. 문방사우 모두 그렇다.
벼루의 수명은 사용 후 관리가 좌우한다. 먹물에 함유된 아교가 마르면 물에 잘 씻기지 않는다. 긁다가는 좋은 벼루를 망친다. 쓰고 난 뒤 바로 씻어두면 된다. 붓보다 관리가 훨씬 쉽다. 단순하고 게으른 초보자는 관리가 힘들다. 아교가 잔뜩 말라붙어 있는 내 벼루는 비싸지 않아 다행이다.
과거 지속형 서예 도구 중 놀랍게도 현대적 기계가 있다. 세련미는 없지만 벼루를 장착한 먹을 가는 기계가 등장했다. 성능이 궁금하지만 구매의사는 아직은 없다. 초보자가 사용하기엔 아직 먹물을 소화할 만큼 연습 양이 많지 않다. 그리고 가격도 좀 비싸다. 아직 나에게는 먼 나라의 기계다. 빠른 포기는 덜 추잡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