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인 나의 확고한 주장이 있으니 명필은 붓을 가린다는 것이다. 좋은 붓은 탄성이 있어 복원력이 좋다. 그래서 형태 잡기가 용이하다. 끝이 잘 모여져서 원하는 대로 글이 잘 써진다. 그러니 좋은 붓으로 글을 쓰면 잘 써진다. 붓은 모의 길이, 종류, 굵기... 종류가 갑이다. 종류에 따라 가격도 따라간다. 나는 초보용 붓을 사용한다. 그래서 글도 초보 티가 팍팍 난다. 나도 붓을 가리고 싶다.
붓은 서예 용품 중 가장 까다로운 친구다. 까다로움의 정체는 바로 세척 때문이다. 벼루 관리는 명함도 못 낸다. 붓 사용 후 모에 묻은 먹물은 반드시 씻어 없애야 한다. 붓을 오래 사용하기 위해 귀찮아도 해야 한다. 흐르는 물에서 살살 씻어야 하지만 강한 물살이 모에 직접 닿아서는 안 된다. 말리는 장소도 바람이 잘 드는 그늘이어야 한다. 아파트에 그런 장소가 어디 있다고.
고형의 먹을 갈아서 사용한 먹물은 그나마 좀 낫지만 아교와 합성수지가 듬뿍 든 제조 먹물은 붓을 씻고, 씻고 또 씻어도 먹물이 나온다. 자꾸만 나온다. 끝없이 나온다. 씻다가 털을 다 뽑고 싶을 만큼, 이럴 수 있나 싶을 만큼 먹물이 나온다. 적당히 씻어버리고 말리면 합성수지와 아교의 힘이 발휘된다. 붓이 딱딱하게 마른다. 풀 먹인 붓처럼 딱딱하게 된다. 다시 물에 넣고 씻는다. 성격대로 씻다가 모가 상해서 붓을 망친 적 있다. 붓 씻기가 무서워 글을 안 쓸 때도 많다. 정신수양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