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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령 Sep 22. 2020

5. 검은 먹의 반전 은은한 향기


  먹의 주재료는 그을음, 아교, 향료다. 그을음을 만드는 기름의 정체가 먹의 이름을 결정한다. 소나무 송진에서 얻은 송연묵이 최고라 한다. 식물의 기름에서 얻은 유연묵이 있으나 현재는 거의 중유, 경유 등 공업용 기름으로 양연묵을 만든다.   

   

 좋은 먹은 가볍고 두드려보면 소리가 맑고 윤기가 있다. 수박을 두드려보면 안다고 해도 잘 모르겠던데. 맑은 소리의 기준을 알 수도 없고. 우리나라는 평안도 양덕과 황해도 해주의 먹이 유명했다.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의 먹은 카누 비슷하게 생긴 신라 먹 2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없다. 일본에 있다.


 고형의 먹을 만들 때 아교를 넣는다. 아교는 성능을 대체할 접착제가 없는 훌륭한 첨가물이다. 그런데 단백질인 아교는 부패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갈아놓은 먹물은 상온에 오래 두면 상한다. 썩는다. 그리고 아교의 불편한 냄새가 있다. 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향을 넣게 되었다. 비싼 먹에는 좋은 향을 첨가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먹을 살 때 향을 맡아보면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먹으로 글을 쓰는 곳에 가면 대체로 상쾌한 박하향 비슷한 향이 난다.     

 

 먹은 글쓰기 전 정신과 육체의 준비운동용이다. 시작해 보자. 원래는 물을 한 방울이라고 하지만 서너 방울 벼루에 떨어뜨린다. 절대 한 번에 많이 부으면 안 된다. 먹을 잡은 손에 힘을 적당히 살짝 주어 천천히 간다. 또 서너 방울… 세월아 네월아 하고 간다. 또 간다. 계속 간다. 벼루의 연지에 넉넉히 채워질 만큼 먹을 간다. 갈면서 생각을 한다. 어떤 글을 어떻게 쓸 것인지. 글을 오늘 안에 쓰게는 되려나. 서예 공부에는 정신적인 수양에 관한 부분이 있다. 방향은 다를지 몰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제대로 공부해보지도 못한 내가 없는 인내력을 어디서 찾을지 고민할 때 제품 하나에 눈이 간다. 이미 갈려져 나온 액체 먹물이 선명하게 보인다.   

   

 액체 먹물은 물을 섞어 농도를 조절해서 쓰기만 하면 된다. 이런 훌륭한 제품을 보았나. 단점이 없지 않다. 액체 먹물은 쓸 때는 좋지만 붓을 씻어보면 아교와 특히 pva라는 합성수지가 들어있는 먹물의 검고 긴 그림자가 보인다. 거의 먹을 가는 시간만큼 붓을 씻는 것 같다. 그래도 조삼모사의 함정에 빠진 나는 나중은 생각하지 않고 액체 먹을 쓴다. 당장 편리한 액체 먹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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