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의 주재료는 그을음, 아교, 향료다. 그을음을 만드는 기름의 정체가 먹의 이름을 결정한다. 소나무 송진에서 얻은 송연묵이 최고라 한다. 식물의 기름에서 얻은 유연묵이 있으나 현재는 거의 중유, 경유 등 공업용 기름으로 양연묵을 만든다.
좋은 먹은 가볍고 두드려보면 소리가 맑고 윤기가 있다. 수박을 두드려보면 안다고 해도 잘 모르겠던데. 맑은 소리의 기준을 알 수도 없고. 우리나라는 평안도 양덕과 황해도 해주의 먹이 유명했다.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의 먹은 카누 비슷하게 생긴 신라 먹 2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없다. 일본에 있다.
고형의 먹을 만들 때 아교를 넣는다. 아교는 성능을 대체할 접착제가 없는 훌륭한 첨가물이다. 그런데 단백질인 아교는 부패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갈아놓은 먹물은 상온에 오래 두면 상한다. 썩는다. 그리고 아교의 불편한 냄새가 있다. 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향을 넣게 되었다. 비싼 먹에는 좋은 향을 첨가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먹을 살 때 향을 맡아보면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먹으로 글을 쓰는 곳에 가면 대체로 상쾌한 박하향 비슷한 향이 난다.
먹은 글쓰기 전 정신과 육체의 준비운동용이다. 시작해 보자. 원래는 물을 한 방울이라고 하지만 서너 방울 벼루에 떨어뜨린다. 절대 한 번에 많이 부으면 안 된다. 먹을 잡은 손에 힘을 적당히 살짝 주어 천천히 간다. 또 서너 방울… 세월아 네월아 하고 간다. 또 간다. 계속 간다. 벼루의 연지에 넉넉히 채워질 만큼 먹을 간다. 갈면서 생각을 한다. 어떤 글을 어떻게 쓸 것인지. 글을 오늘 안에 쓰게는 되려나. 서예 공부에는 정신적인 수양에 관한 부분이 있다. 방향은 다를지 몰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제대로 공부해보지도 못한 내가 없는 인내력을 어디서 찾을지 고민할 때 제품 하나에 눈이 간다. 이미 갈려져 나온 액체 먹물이 선명하게 보인다.
액체 먹물은 물을 섞어 농도를 조절해서 쓰기만 하면 된다. 이런 훌륭한 제품을 보았나. 단점이 없지 않다. 액체 먹물은 쓸 때는 좋지만 붓을 씻어보면 아교와 특히 pva라는 합성수지가 들어있는 먹물의 검고 긴 그림자가 보인다. 거의 먹을 가는 시간만큼 붓을 씻는 것 같다. 그래도 조삼모사의 함정에 빠진 나는 나중은 생각하지 않고 액체 먹을 쓴다. 당장 편리한 액체 먹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