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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지도교수를 학장으로 모시다

by 장수생

만화책 '미생'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상사가 곧 회사'다. 나는 여기에서 '상사'는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뿐 아니라 직장 선배, 동료 또는 후배까지 포함되는 '회사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직장이든 같이 근무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이 내 기분과 감정에 너무나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일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80% 이상은 일의 어려움보다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 같다. 근무일에는 하루 24시간 중 최소 8시간 이상을 함께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14년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했었던 직원들 중 '나쁜'고 '못된' 사람은 없었다. 다만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나를 불편해한 직원이 있었을 뿐이다.


첫 근무지인 농대 행정실엔 나를 포함 5명의 직원과 학장, 부학장, 행정실장, 팀장이 있었다. 모두가 다 처음 본 사람들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직급상 가장 마지막 결재권자인 학장이 나의 학생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학과 교수님이었다는 것이 몇 가지 문제를 만들어냈다.


첫 번째 문제는 다른 직원들이 나를 불편해한다는 것이었다. 직장인이라면 흔히들 쓰는 단어인 '라인'을 타고 내려온 사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다는 것이다. 직원들끼리 친해지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상사 뒷담화다. 함께 비밀을 공유한다는 것, 한 상사를 동시에 씹어될 수 있다는 동질감 등 뒷담화의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오죽하면 한 식품회사에는 상사를 씹으라면서 상사 껌이라는 걸 만들었겠는가) 하지만 처음에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만큼은 최대한 표현들을 조심한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나를 따돌리거나 힘든 일을 준다거나 그런 건 없이 너무 잘 대해주셨다. 다만 거리감을 좁힐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두 번째 문제는 원장과의 관계 설정이다. 한 달 전만 해도 제자였던 학생이 어느 날 직원이 되어서 본인이 학장으로 있는 대학에서 일을 하게 되니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방법에 어긋남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학생이 아니니 어엿한 직장인으로 대우를 받길 원했다. 하지만 원장은 학생 때의 나를 기억하기에 다른 직원들처럼 대하는 게 쉽지는 않았나 보다. 결재를 들어갈 때도 어느 날은 반말, 어느 날은 존댓말. 그리고 내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 상시 나에게 업무 절차나 진행 과정들을 물어보았다. 아직 내 업무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퇴근 이후에도 급하지 않은 업무인 것 같은데도 나에게 전화를 해서 자료를 찾아봐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땐 자취방에서 다시 학교로 뛰어들어가 어찌어찌 자료를 찾아서 보고 드리곤 했었다. (최대한 사무실 직원들에게 이런 문제에 대해선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기에 그 당시 직원들이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 않을까 싶다)


원장과의 관계를 뒤로하면 첫 발령지가 농대여서 나에게 좋았던 점도 많았다. 단과대학 행정실 업무의 대부분은 학과의 조교들과 협업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조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단과대학 직원들에게는 가장 필요한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졸업한 학과의 조교는 잘 아는 선배였고, 이후에는 내 동기였다. 고등학교 동창이 조교인 학과도 있었다. 그렇기에 낯선 조교들과 조금은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고, 업무 처리과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도움으로 입사 초기임에도 불구 여러 가지 업무를 빠르게 잘 처리할 수 있었고 이러한 점이 나의 능력으로 포장되었고 다른 직원들에게 업무능력을 인정받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행정 업무가 수월했던 건 아니었다. 처음 행정실에서 사무분장(직원들이 각자 담당하게 될 업무를 나누어서 정하는 일)을 할 때 행정실에서는 이런 업무까지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학생 신분일 때는 등록금을 내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편하게 누리면서 다니면 되는 거였는데, 돈을 받게 되는 순간부터는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발이 닿는 곳 모든 곳에서 내가 처리해야 할 일거리가 생겨났다. 그렇게 나에게는 처음 접해보는 많은 일들이 하나씩 쌓여가기 시작했고, 그 일들을 하나씩 배우고 처리해내면서 나는 시나브로 보통의 직원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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