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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졸업 후 한달. 다시 학교로 돌아오다

by 장수생

2007년 2월 22일 졸업. 한 달간의 취업준비생 생활. 그리고 2007년 3월 20일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내 나이 26살 지금 생각해보면 졸업직 후 어린 나이에 큰 파도 없이 잔잔하게 취업이 결정되었다. 입사하고 가장 처음 한 일은 총무과 회의실에 앉아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학교라는 '갑'과 나라는 '을'이 적혀있는 계약서. 단 두 페이지의 계약서였으나 어지럽게 적혀있는 낯선 글자들. 그리고 눈에 띄는 18,000,000원이라는 숫자. 내 첫해 연봉이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줄에 처음 해보는 계약서 서명. 모든 게 낯설었다. 내 감정까지도.


계약서 사인 후 신입직원 멘토링 행사가 있었다. 1박 2일의 시간 동안 예절교육, 선배 직원들과 멘토링 및 학교 업무 시스템 개선할 점에 대한 개인별 PPT자료 발표가 있었다. 멘토링에 참여하게 된 신입직원은 나와 같은 공채로 입사한 직원 4명과 도서관 사서직, 기능직 공무원까지 10명 정도의 직원들이 있었다. 쉽게 친해지지는 못했다. 낯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어색했고, 그러다 보니 이 분들 중 몇 명은 지금도 인사 정도만 하고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해보니 모든 직원들과 친하게 지낼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문제에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교육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인사법과 전화 예절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을 만한 내용이고, 어렵지 않고 단순하고 어떻게 보면 유치한 교육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건 14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어려운 일이 인사와 예절이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교수. 직원. 학생들과의 인사와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 말하는 법은 지금도 과연 정답이 있긴 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렵다. 같은 인사말, 같은 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친절하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불친절하다고 말한다. 일은 배우면 할 수 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건 배워도 안된다. 너무 어렵다.


첫날 멘토링을 마친 후 학교 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청하려고 누웠으나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누워있는 상황이라 한층 감정적인 상황이기도 했다. 며칠 전만 해도 목표 없이 떠 다니는 부표 같은 사람이었는데, 이젠 월급의 액수가 크고 적고를 떠나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그 사실이 나를 흥분케 했고, 울컥하게 했으며, 잘하고 싶다는 다짐을 수 없이 하게 만들었다. 내가 돈을 내고 다녔던 학교에서 이젠 돈을 받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은 2007년의 봄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학번으로 운 좋게 추가합격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형의 지나가는 듯한 말 한마디로 학교에 지원서류를 제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행운들로 지금까지 14년째 학교에 근무하고 있으며 학생생활까지 포함하면 20년째 학교에 머물고 있다. 앞으로도 사건사고 없이 시간이 흘러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면 20년은 더 학교에 머물게 된다. 이 정도면 학교와 나는 운명공동체가 아닌가 싶다.


둘째 날까지 진행된 멘토링을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교 캠퍼스를 크게 한 바퀴 걸었다. 찬 기운이 남아있지만 따뜻함이 더 가득한 3월의 봄에 캠퍼스는 아름다웠다. 왁자지껄 웃으며 걸어가는 학생 무리들, 신입생을 들이기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음악 동아리 학생들. 그 주위에 겨우내 잠들어있던 푸릇함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캠퍼스의 수많은 나무들. 그 나무들 잎사귀 사이사이에 닿는 바람소리들. 모두 나를 위한 교향곡 같았다.


황홀한 교향곡 소리와 함께 나는 다시 학교에 돌아왔다.


그리고 교향곡 소리가 곡소리로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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