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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대학교 직원 채용에 합격하다

1-3. 대학교 직원 채용에 합격하다

by 장수생

2007년 2월의 어느 날이었다. 내 인생에 가장 극적인 달이 있었다면 바로 2007년 2월이 아닌가 싶다. 그 달은 대학교 졸업식이 있는 달이었다. 취업이 결정되지 않은 나 같은 학생에겐 자신을 표현할 만한 그럴싸한 단어가 없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대학생이 아닌 그냥 백수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하자면 취업준비생이 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나는 여전히 고시학원에 다니고 있었으며, 친형과 함께 학교 앞 작은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도서관을 가려고 준비 중인 나에게 형이 말했다. 학교 홈페이지에 직원을 채용하는 공고문이 올라왔는데 한번 지원해 보면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나는 관심 없다는 듯 말하고는 도서관으로 나와서, 도서관 컴퓨터로 아무도 모르게 공고문을 확인하였다. 채용하는 직원은 사무직(정규직) 4명이었다.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그리고 면접이라는 많은 관문을 통과하여야만 도달할 수 있는 자리었다. 예전 같으면 '자신 없는 일은 시작도 하지 말자'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지원 자체도 하지 않았을 텐데, 운명에 이끌리 듯 서류를 접수하게 되었다.


서류 접수 후 서류전형은 통과할 수 있을까? 난 안 되겠지? 그래도 모교인데 서류전형은 통과시켜 주지 않을까? 근데 대부분 지원자가 같은 학교 출신이지 않을까?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많은 걱정을 하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서류전형 결과 발표일 오전부터 홈페이지를 몇 번씩 들락날락 거리며 새로고침을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합격자 발표 공지를 확인한 후 떨리는 손으로 해당 공지문을 클릭했다. 그리고는 너무 허무해졌다. 서류 응시자 264명 전원 합격이었던 것이다. 허무했지만 그래도 참 다행이다.


그리고 며칠 후 필기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4명 모집에 1차 서류 합격자는 264명. 60대 1의 경쟁률 속에서 학교 강의실 6군데에서 90분간의 필기시험이 시작되었다. 필기시험 과목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어, 수학, 과학, 시사 등을 모두 포함하여 객관식 50문항이었다. 추후 합격한 후 생각해 보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배웠던 내용과 매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정독했었던 신문이 일등 공신이 되었던 것 같다. 성공하진 못했지만 1년이 넘는 공무원 고시 준비 기간이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다만, 최종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기에 지금도 몇 점으로 합격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필기시험을 보고 난 일주일 후 합격자 발표가 있었고, 거기엔 거짓말 같이 내 이름이 쓰여 있었다. 기뻤다. 아직 면접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까지도 가족이나 여자 친구 그 누구한테도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자 흥분된 마음을 다스리며 면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인생 두 번째 면접(첫 번째는 대학 입시 때)이었기에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도서관에서 관련 책과, 인터넷을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내용을 종합하여 내가 내린 결론은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사말과 함께 주어지는 30초 또는 1분간 자기소개라도 판단했다.


그때부터 30초 또는 1분간 2가지 시간대에 따른 자기소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기소개를 준비하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대학생 시절 중 나 자신을 소개할 만한 뛰어난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걸. 공모전을 나가본 적도, 배낭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학과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몇 달간 아르바이트(노래방, 당구장)한 내용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해낸 내용은 군대 생활을 최대한 어필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행히 군 생활을 경찰서에서 의경으로 근무했었고, 경찰서 사무직 의경으로 행정업무를 2년간 경험했었다는 것이 유일한 내세울 경험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반 육군 보병이 아닌 경찰서 교통계 사무실에서 2년간의 군 생활을 보냈었다는 게 천운이었다. 공문도 작성해보고, 보고서도 작성해 보았다. 경찰공무원들이 하는 행정업무의 편린들을 경험해보고 느껴보았다. 그 편린들을 모으고 모아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었다. 그 문장들을 최대한 아름답게 가공해서 빛 나게 해야만, 내가 합격할 확률이 1%라도 높아질 것 같았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고민해서 짧은 자기 소개문을 작성했고, 그 후에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우고 또 외웠다.


면접 당일 졸업식 때 입으라고 부모님이 사주셨던 네이비색 정장을 입고 학교에 도착했다. 4명 모집인데 면접대상자가 20명 이상이었다. 신기하게도 인원이 많으니깐 오히려 긴장감이 사라지고 담담해졌다. 떨어지는 사람 쪽이 더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 혼자만 부족하고 모자라서 떨어지는 건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순서가 되었고 나는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면접위원 3명에 지원자 2명이 마주 보고 앉아서 진행되는 다대다 면접이었다.


첫 질문은 예상한 대로 자기소개였다. 준비한 데로 경찰서에서 행정업무를 2년간 해보았다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1분 정도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면접관들의 질문은 자기소개에 있는 내용에서 주어졌기에 당황하지 않고 나의 경험을 솔직히 답변할 수 있었다. 같은 면접조로 함께 면접 본 분이 계셨는데 그분의 외모가 어땠으며, 면접 중 어떠한 말을 했는지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담담한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온몸에 배어 있었나 보다.


그리고 며칠 후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처음엔 수업 중이라 받지 않았지만 몇 분 후 같은 번호로 또 전화가 왔고 이상하게도 그 전화를 받아야만 할 것 같아서 수업 중임에도 불구 조용히 뒷문으로 나가서 복도에서 전화를 받았다. 당연히도 그 전화는 학교에서 걸려온 최종 합격 통지였으며, 내 인생에 가장 짜릿한 통화였다. 몇 번을 감사하다는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 그 직원분이 전화받는 순간의 내 감정을 아실지 모르겠다. 그 이후 10년 넘게 근무하면서도 그 직원분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어서 가깝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 날 전화를 해준 그 목소리만큼은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 직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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