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그리고 평범이라는 단어는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다. 대학교 3학년 겨울 방학쯤부터 보통사람이면서 평범한 사람인 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9급 공무원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에게 ‘취업’이라는 단어는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취업 공부를 한다고 합격할 자신도 없었고, 입사하고 싶은 회사도 없었다. 취업을 원하는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공무원 시험은 출발점이 아니라 정신없이 도망가다 보니 다다른 막다른 벽이었다. 그 벽을 짚고 간신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운이 좋아 합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부모님의 도움으로 학교 근처의 행정고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2006년 겨울방학 시기에 학원까지 걸어가는 길은 너무나도 추웠었다. 옷은 얇지 않았으나 마음이 얇았기에 더욱 추위가 시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전공했던 학과가 농기계 관련이다 보니 유체역학이나 열역학 같은 계산 위주의 과목만 배우다가, 국어, 한국사, 행정학 같은 이론 과목을 공부하려니 머릿속에 들어오는 내용은 잠시도 머물지 않고 바로 빠져나가 는 것 같았다. 오히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것조차 함께 껴안고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을 보면 볼수록 머릿속은 더욱 하애 졌다.
공무원 공부를 한지 불과 몇 개월 후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그때 첫 시험을 보았다. 가족이나 친구 누구에게도 시험 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불합격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험은 봐야 했다. 그래야 스스로 ‘난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대학생이 아니라 목표를 가지고 있는 고시생이야‘라는 자기 주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험 결과는 당연하게도 불합격이었다. 합격 커트라인과는 너무나도 큰 격차였기에 아쉽다느니 아깝다느니 하는 감정을 느낄 수 조차 없었다.
그런데 웃긴 건 시험을 치르고 나올 때 처음 든 생각이 ‘주관식도 아니고 객관식 시험이니깐 운 좋게 찍은 문제들이 좀 많이 맞으면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는 거다. 그것도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온 다음에야 가능할 일일 텐데. 노력은 하기 싫으면서 요행은 크게 바라고 있었다. 실패한 첫 번째 시험은 뒤로하고 여름쯤 두 번째 시험이 있으니 또 한 번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그 뜻은 정말 시험을 치르기로 결정했다는 말이고, 합격하기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정한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매일 학원도 가고 도서관도 갔다. 학원에서 수업을 할 때는 다 이해가 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학원밖으로만 나오면 기억나는 내용이 없었다. 그리고 도서관 열람실을 이른 새벽부터 나가서 자리를 잡아놓고 공부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항상 성실히 했었다. 문제는 준비를 한 이후에 딱히 수험서를 보지는 않았다는 게 문제였겠지만 말이다, 우리 대학은 도서관 열람실 1층에 그날 일간 신문이 준비되어 있었다. 공부는 하기 싫고 도서관에서 시간은 보내야 되기에 그 신문들을 매일매일 정독했었다. 오죽했으면 대학생 때 지금의 와이프와 연애한 일들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대학생 시절이 자판기 커피를 손에 들고 도서관에서 신문을 보았던 장면일까.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나의 공무원 시험과 관련된 모든 행동들은 당연히도 공무원 시험 실패라는 결과의 원인이 되었다. 고시학원을 다니면서 시작된 1년 6개월의 고시생 생활과 4번의 공무원 시험은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은 실패에서도 얻게 되는 게 있는 것 같다. 공무원 시험은 실패했지만 실패까지 가는 기간 동안 내 몸에 각인된 무언가가 나를 국립대 교직원 공채 시험에 합격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그렇게 나는 대학교 직원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