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4. 첫 워크숍을 떠나다

by 장수생

교직원이 된 지 한 달 즈음에 학교 전체 교직원 워크숍 행사가 있었다. 사무실에 필수 직원 1명을 제외하곤 모두 참석하는 큰 행사였다. 행사 당일 실장님을 포함한 우리 농대 직원들도 모두 버스에 탑승하였다. 전체 600여 명의 직원 중 4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참석하는 큰 행사였기에 관광버스만도 10대가 넘게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버스를 탔던 게 잘못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무실에 남았어야 되는 거였는데.


4월의 따뜻한 봄날 처음 만나는 타 부서 직원들과 버스 안에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창밖만 바라보며 워크숍 장소로 향해 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목적지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였다.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앞자리에 앉은 실장님과 팀장님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나에게 미안한데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될 것 같다고 말하였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네?'라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다시 한번 사무실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내가 담당자이니 빨리 돌아가서 처리해야 된다는 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사건은 이러하였다. 내가 발령받아 일하게 된 자리의 전임자(내가 농대로 발령이 났을 때 그 직원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었다)가 발령 나기 한 달 전쯤 마무리했어야 하는 물품 관련 업무가 있었는데 그 업무를 기한 내 처리하지 않았었고, 또 나에게 인수인계도 해주지 않았던 거였다.


교육부에서는 자료를 제출하라는 연락이 학교로 왔었고, 학교 물품을 총괄하는 재무과 담당자는 농대만 아직 제출을 하지 않았기에 농대로 연락을 했던 거였다. 하지만 사무실에 필수 직원으로 남아있던 직원분은 물품업무를 전혀 모르기에 대신 처리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팀장님께 전화로 보고를 했고 팀장님은 실장님과 상의 후 내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서 처리해야 되는 것으로 결론 지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워크숍 장소로 가는 작은 시골 도로 어디쯤에 있는 주유소 앞에서 내리게 되었다. 후에 들어보니 버스에 같이 탔었던 타 부서 직원들은 내가 화장실이 급해서 내리는 줄 알았다고 했다. 버스에 있는 동안에도 어색하고 낯설었는데 갑자기 차에서 내려 길에 서있는 나를 지나쳐가는 버스들에서 '재는 뭔데 여기서 내리는 거지?'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에 너무나도 창피했다.(내가 탔던 버스가 전체 버스 중 가운데쯤 있는 버스여서, 나를 내려주려고 정차했을 때 뒤에 있는 5대 정도의 버스도 같이 정차했었다.)


문제는 버스가 떠난 이후였다. 대체 학교까지 어떤 방법으로 되돌아 가야 되는 건지 너무 막막했다. 우선 염치 불고하고 주유소에 들어가서 터미널 가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시내버스가 2시간에 한대 정도 있는데 방금 한대가 지나갔기에 2시간을 기다려야 된다는 거였다. 그래서 택시를 불러주실 수 있는지 부탁드렸고 주유소 사장님께서는 지인이 개인택시를 하신다며 흔쾌히 연결해주셨다.


사장님이 불러주신 택시를 타고 작은 시골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가장 빠른 시간대의 버스를 타고 다시 한 시간을 달려 학교가 있는 시내의 터미널에 도착했고, 다시 택시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아직 급여일이 되질 않아서 첫 월급도 받지 못했고, 교통비를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었기에 재정적인 타격이 너무 컸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학교로 다시 돌아왔지만 입사한 지 한 달도 안된 신입이 그것도 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질 못했던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는 전임자에게 연락을 했지만 이번 연도부터 새롭게 진행되는 업무라서 본인도 해보지 않은 일 이기에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재무과 총괄 담당자와 얼굴도 모르는 타 대학 직원에게 수 없이 전화로 물어보면서 어찌어찌 겨우 처리하고 자료를 넘겨줄 수 있었다.(며칠 후 수정해서 다시 제출해야 했지만 말이다)


워크숍 가는 도중에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일을 하는 순간은 긴장을 해서인지 어떻게든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한다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일을 끝내고 1박 2일 워크숍을 위해 챙겨간 옷 가방을 들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동안은 너무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일처리를 할 수 있지?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대학교는 원래 이런가? 별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나 혼자 짜증내고 화내고 그 후엔 스스로 감정 정리를 할 수 밖엔 없었다. 먹이사슬의 관료제 사회에서 가장 약한 초식동물인 신입 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 스스로 단정했기 때문이다. 그냥 진땀 나는 신고식이었다고 생각하고 넘길 수 밖엔 없었다.


다만, 그날 이후 내가 발령을 받아 타 부서로 이동하게 될 경우에는 나의 후임자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지고 최대한 자세히 인수인계를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상대방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인수인계이다.







keyword
이전 08화2-3. 행정실은 학교의 모든 일을 처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