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을 보면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바라보는 풍경이 다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내 몸은 같은 대학교의 같은 단과대학에 있지만, 학생과 직원이라는 달라진 신분이 모든 걸 새롭게 보이게 만든다.
등교하는 길에 건물 앞에 핀 꽃이나 잘 다듬어진 잔디를 볼 때는 '이쁘네, '깔끔하네' 정도의 생각만을 했다면, 출근하는 길에는 조경 담당 직원 분이 소음 때문에 수업에 지장이 있을까 봐 학생들이 없는 새벽부터 출근하셔서 예초기를 돌리셨구나. 날씨도 더운데 꽃 심으시느라 고생하셨겠네. 꽃 구입하는데 얼마의 예산이 필요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건물 입구에 서있는 자판기를 볼때면 학생 때는 우연히 건물 앞에서 친구나 선배를 만나게 되면 자판기 커피 한잔 할까? 라며 인사를 건네었던 것 같은데, 직원일 때는 작동은 잘 되고 있나? 자판기 계약 업체에서 재료는 다 채웠나? 주말에 율무차가 안 나와서 다시 고쳐 놓는다고 했는데 고쳐 놓으셨나?라는 오로지 '생산적'이기만 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여름 장마철에는 우산을 가볍게 털고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문제 될 게 없다 생각했는데, 출입구 및 계단이 청소한 지 30분만 지나도 빗물과 흙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환경미화원 직원분들이 수시로 쓸고 닦기 때문에 미끄러져서 다치는 학생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직원이 되어서야 눈에 보이는 일이었다.
은행나무의 열매가 떨어지는 계절은 더욱 심하다. 은행 특유의 구린내 때문에 캠퍼스를 거닐던 많은 구성원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렇기에 새벽부터 본부 조경팀이나 환경 담당 직원분들이 바람으로 불어 내거나 쓸어낸다. 다만, 몇 날 며 칠을 청소한다 하더라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의 양이 사람이 치우는 양보다 많을 밖에 없기에 불쾌한 냄새를 모두 막을 순 없다. 그렇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생겨나는 문제가 아니라 인력 및 시간의 문제로 그 이상을 할 수가 없는 데로 비롯한 문제임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겨울철도 마찬가지이다. 초겨울 바람이 많이 불면서 수많은 나무의 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건물 옥상 위나 인도, 도로 등을 구분하지 않고 떨어져 쌓인다. 특히, 건물 옥상 배수구를 막는 경우가 많다. 그럼 당연히도 직원 중 누군가는 배수구를 다시 뚫어야 한다. 눈이 많이 쌓이는 날이면 전 직원이 모두 삽과 빗자루를 들고 나와서 캠퍼스 전체 그 중에서도 인도 부분의 눈을 쓸고 얼음을 깬다. 당연히 하고 있지만 당연히 해야하는 업무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직원들도 각자의 고유 사무 업무가 있기에, 그 외의 업무가 당연히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구성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러한 학생때는 하지 않았어도 되었던 일들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점은 도대체 왜 교수는 이런일을 하지 않는가 하는것이다. 학생은 등록금이라는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이기에 안전하고 깨끗한 시설물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교수는 직원과 마찬가지로 '돈'을 받고 다니는 생산자 아닌가? 맡은 업무의 범위가 다르다곤 하지만 학교 시설물 관리에 큰 어려움이 생기는 장마철이나 폭설이 내리는 경우에는 같은 구성원으로서 소비자의 안전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는 척이라도 해야 되는거 아닌가? 도와주지는 못할지라도 학생들보다 본인들 공간부터 먼저 수리해주고 치워달라라는 말 정도는 하지 않아야 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들을 정말 많이 했었다.(뭐 당연히 모든 교수들의 이야기가 아닌 극소수의 일부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내가 행동하지 않았음에도 생활하는데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을 크게 느끼고 있다면,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나의 편안함을 위하여 희생하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게 집, 회사, 동네, 여행지 어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