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대 행정실에서 근무한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았을 때, 농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외 연수가 계획되고 있었다. 내 담당 업무가 학생행사 관련이 아니었기도 하지만 내 업무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을 때이기에 학생 국외연수 관련해서 나오는 내용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행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지 며 칠 후 원장, 부원장, 실장과 팀장의 간부 회의 중 나를 불렀고, 그 자리에서 이번 연도 학생 국외 연수는 중국으로 가게 되었는데 내가 담당해야 할 것 같다고 하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지금까지 국외연수는 학생 20명 정도와 원장 그리고 담당 직원이 인솔자로 참여하는 관례였다. 그러니 원장 입장에서는 퇴직을 앞둔 나이 지긋한 직원분 보다는 제자였기에 다른 직원들보다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내가 같이 갔으면 하였고, 실장이나 팀장도 별도의 반대 의견이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내가 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0여 명이나 되는 대학생들 연수의 인솔자로 참여하는 업무이기에 신경 쓸 일은 너무나 많고 즐거울 일은 거의 없는 업무 이기에 행정실 직원 누구도 행사 인솔자 자리를 탐내지 않았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담당할 수도 있는 업무였기에, 배운다는 마음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당시 내 나이가 26살이었는데 그때까지 단 한 번도 해외를 나가본 적도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었다는 거였다. 학생들을 인솔하려면(당연히 여행사에서 안내해주시는 분이 따로 있기는 했다) 기본적인 매뉴얼이나 안전 사항들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도 생소한 일이었기에 나의 무지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을 많이 했었다.
내 업무로 결정이 된 이후에 가장 먼저 여행사를 선택하고 비용을 확정하였고, 그와 동시에 참가를 원하는 학생들 신청서를 받고 심사하여 최종 참석자 명단을 확정하였다. 그 당시 농대 학생 해외 연수시에는 학생들 자부담이 일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농대 졸업생 동문회에서 매년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해 주었다.(당연히 나는 업무상 출장이기에 학교에서 출장비가 지급되었다)
그렇게 계약서, 참가확인서, 동의서, 항공권발권, 여행일정 등 각종 서류와 씨름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 연수 당일이 되었다. 인천공항까지 가기 위해서는 새벽 5시쯤 학교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리고 출발 당일 걱정했던 대로 출발 시간까지 오지 않은 학생이 1명이 있었다. 5통이 넘는 전화에 겨우 연락이 닿았고, 학교로 오는 있던 도중 여권을 챙기지 않았다는 걸 알아채고 다시 집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래도 20분 정도의 지각으로 중간에 아침식사 시간을 조금 짧게 진행하면 제시간에 충분이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공항도착, 학생들 면세점 쇼핑, 비행기 탑승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목적지인 중국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연수 내용은 평이했다. 대학 간 협약이 맺어진 중국 대학 몇 군데를 방문하고 농대 학과 특성에 맞는 장소들 몇 군데 방문하는 4일간의 짧은 연수였다.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상황에도 문제는 발생하였다. 학생들 연수가 지루하지 않게 중간에 잡아놓은 문화 관광 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중국의 한 산에 올라가는 일정이 있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도착하고 보니 학생 2명이 올라오지 않은 거였다. 학생들 숫자를 일일히 세지는 않았지만 케이블카를 타려는 일행이 우리 연수생밖에 없어서 모두 올려 보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나와 현지 가이드가 가장 마지막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왔었는데도 불구하고 2명이 보이지 않는 거였다.
가이드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서 한 참을 학생들을 찾아다녔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땀 흘릴 일이 별로 없는 내게 이날은 인생에서 손꼽힐 만큼 진땀이 많이 흐른 날이었다. 그렇게 땀 흘리며 두근 되는 심장을 부여잡고 30여분 넘게 케이블카 타는 곳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그 순간 학생 2명이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 걸 보게 되었다. 화도 나지 않고 오로지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두 학생을 데리고 케이블카를 다시 타고 올라가면서 물어보니 두 학생은 사귀는 사이었고, 운 좋게 둘 다 연수 대상자로 선정이 되었던 것이다. 즐거운 추억을 남기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 보니 조금 멀리까지 가게 되었고, 돌아왔더니 모두 올라가고 아무도 없기에 다시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근처에서 간식 거리를 사고 대기실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앉아있었던 거였다.
미성년자가 아닌 대학생들이고 나와 나이 차이도 2~3살 밖에 나지 않았기에 걱정했었다라는 말 이외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스스로 충분히 깨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몇 번더 사진을 찍기 위해서 무리와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걸로 봐선 많은 걸 깨닫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이 이상의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고 다친 학생 없이 일정대로 연수를 진행하고 잘 끝마칠 수 있었다.(다음 연도에 일본을 갔을 때는 1명이 다리가 부러져서 반나절을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의 병원에서 마음을 조리는 일이 발생했었다.)
나의 첫 해외 방문에 낭만과 로망은 없었다. 긴장과 걱정이 반 이상인 업무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생각하면 순간순간 기분 좋았던 장면들이 힘들었었던 것보다 더 많이 생각이 난다. 그런 걸 보면 인생 첫 해외여행(실제로는 연수이지만)이 '안 좋았다'라는 것보다는 '좋았다'라는 감정에 더 수렴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첫 번째 해외 방문 경험이 추후 결혼 후 신혼여행을 갔을 때 해외여행이 처음인 와이프 앞에서 생색도 낼 수 있고 앞에 나서서 처리하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었기에 그 점에서 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학생 연수 인솔자 업무는 이젠 하고 싶지 않다.
여행은 내 돈을 지불하고 내가 원하는 장소로 내가 원하는 시기에 떠나는게 가장 좋은 여행이다. 이 외에는 모두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