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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학생회장의 삿대질

by 장수생

입사한 지 한 해가 흐르고 조금은 불편했던 학장님도 바뀌었다. 두 번째로 모셨던 학장님은 14년간 일하면서 만났던 모든 교수 보직자 중 가장 따뜻하고 사람 냄새 풍기는 분 중 한 분 이셨다. 1년이 지남에 따라 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처음엔 나를 경계하거나 불편해했던 직원분들과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정도로는 친해졌다.(여기에서 친해졌다는 오랜 친구처럼 가까워졌다는 뜻이 아니고 업무시간에 사무실 안에서 가벼운 농담을 하면서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모든 대학에는 총학생회가 있고, 단과대학마다 단과대학 학생회가 별도로 존재한다. 현재와는 다르게 2008년 즈음에는 학생회장을 하고자 하는 학생도 많았고, 학생들도 학생회에 관심이 많이 있었던 때이다.(지금은 학생회장 선거에 나오는 학생이 없어서 몇 년째 학생회가 없는 단과대학도 있다.) 그럴 때이니 학생회의 성격도 '강성'노조의 성격을 가진 학생회가 존재했었고, 그중 한 곳이 그 당시의 농대 학생회였다.


입시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 당연하게도 신입생들의 개인 연락처를 가장 먼저 알게 된다. 입시는 12월에서 1월 사이에 대부분이 이루어지기에 이 기간에 최종 합격한 학생들의 명단과 연락처를 받아 보게 된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최소한의 학사운영에 관련된 내용이 아닌 이상 해당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안으로 다루어진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하였다.


모든 단과대학에서는 3월 개강 전에 대학별 또는 학과별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 여기에서 학교 차원에서 진행하는 오리엔테이션이야 학교 측에서 홈페이지에 공지도 하고 개별 문자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학생회 차원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행사는 합격자 명단을 알지 못 하기에 진행에 어려운 점이 많다. 그때 학생회에서 합격자 명단과 연락처를 넘겨달라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개인정보이기에 넘겨줄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학교차원에서 진행하는 오리엔테이션 당일날 참석자들에게 직접 동의를 받고 연락처를 취합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몇 분쯤 지났을까? 당시 학생회장이 행정실로 찾아와서 대뜸 방금 본인과 통화한 담당자가 누군지 찾았다. 나하고 통화를 했다고 말하니, 나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자기가 학생회장인데 왜 학생들 연락처를 넘겨주지 않느냐? 학생회 활동을 못하게 핍박하고 있는 것이야? 지금 당장 연락처를 내놓지 않으면 원장한테 찾아가겠다는 둥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전혀 말이 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얼굴을 붉히면서 본인이 낼 수 있을 만큼의 큰소리로 삿대질을 해가며 나에게 대거리를 수 분 동안 해대었다.


혼자 계속 말하는 게 힘들었던지 잠깐 말이 멈춘 사이에 답변을 해주었다. 학생회 활동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법을 지키는 일이다. 지금 나에게 학생들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넘겨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묻고 있는 거냐? 그렇다면 국가기관에서 행정업무를 하고 있는 직원에게 불법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맞는 거냐?라고 물었다.


학생회장은 학생회가 학생 연락처를 넘겨받는 게 왜 불법이냐? 나 신입생 때도 선배들이 내 연락처를 넘겨받아서 먼저 연락이 왔었다. 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니냐?라고 재차 물었다. 나는 예전엔 어땠을지 모르지만 내가 담당하는 동안 동의 없이 연락처를 넘겨줄 수 없다. 원장에게 찾아가던지, 총장에게 찾아가던지 그건 학생회장이 판단해서 할 일이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연락처를 넘겨줄 수 없으니 그렇게 알고 있길 바란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학생회장은 씩씩거리며 행정실을 나갔고,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원장에게 연락이 왔다. 원장실에 들어가니 원장은 학생회장이 찾아왔었다며 방금 행정실에서 발생했던 내용에 대하여 말을 하고 갔다고 했다. 내가 무언가 답변을 하기 전에 원장님은 답변 잘해주었다고 했다. 본인도 학교 측에서 전체적인 협조 요청이 오지 않는 이상 단과대학 차원에서는 진행할 수 없다는 말로 학생회장을 설득했다고 하면서.


결국 학생회에 연락처를 넘겨 주지는 않았고, 학과장(교수)에게 각 학과 학생들 명단을 넘겨주면서 학과 행사 시 학생회가 아닌 학과장 책임하에 진행하도록 요청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지금 부서에서도 입시를 담당하고 있지만, 대학원이라서 그런지 별도로 학생회에서 연락처를 요구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학생들 합격자 명단을 받게 되면 10여 년 전 그 학생의 얼굴과 내 눈을 향해 치켜들고 있었던 그 손가락이 항상 기억이 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생겨나고 없어진다. 14년간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은 수백 명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일들은 쉽게든 어렵게든 시간이 지나 결국은 해결이 되었고, 일이 끝난 후 남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리고 그 당시 그 사람의 '태도'가 '기억'이 되어 '평가'로 이어지게 된다. 그 평가가 내가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나타내어진다.(타인의 나에 대한 평가도 나의 일처리 능력보다는 나의 태도에서 결정되어질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결국 일을 하며 가장 중요한 건 '태도'인 것 같다. 그 일을 겪고 난 후 나 스스로도 타인을 대할 때의 내 태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결정한 나의 태도는 최대한 공적이며, 비즈니스적인 태도를 모두에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사적인 관심으로 친밀감을 주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일만 바라보며 상대방을 대하는 방법이다. 당연히 이렇게 사람을 대할 경우 일이 끝난 후 내 곁에 사람이 남는다거나, 그 사람과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언제든 불편하지 않은 관계로 '일'을 처리하는 데는 가장 좋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이 방법이 좋다고 보이지는 않을 테지만 남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고(관심도 주지 않지만), 나의 감정 소비도 하지 않기에 나에게만큼은 가장 잘 맞는 방법인 것 같다.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다면 삶이 풍요러워 질 순 있겠으나, 사람 관리가 어려운 나 같은 사람에겐 주위에 불편한 사람을 두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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