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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또, 학과 교수님이 학장이 되다

by 장수생

첫 입사 후 농대 행정실에서 근무한 지 3년이 넘어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기간 중 2명의 학장을 모셨었고, 3명의 실장, 2명의 팀장과 함께 근무했었다. 그리고 2번째 학장의 2년의 임기가 종료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다시 농대 학장 선거가 시행되었다. 농대 전체 10개 학과에 65명 정도의 교수 중 3명이 학장 후보로 나왔고, 선거 결과는 신기하게도 내가 졸업한 학과 출신의 교수님이 또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그 많은 학과 중 어떻게 내가 졸업한 학과의 교수님들이 자꾸 학장으로 함께 근무하게 되는 건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다시 만나게 된 학과 출신 학장은 사전 경험이 있었던 덕분인지 조금은(아주 조금)은 첫 번째보다는 적응하는게 괜찮았다. 우선 경험치도 쌓여있고, 햇병아리 같은 신입직원은 아닌 그래도 1,000일이라는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다. 상사를 대하는 법 같은 책들도 읽어보았고(당연히 글과 현실은 다를지라도) 경험도 쌓여 있어서 빠르게 새로운 학장이 요구하는 새로운 시스템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연히 불편한 점은 있었다. 새롭게 학장이 되신 분도 다른 직원분들 보다는 학생 때 가르쳤던 내가 가장 편했기에 내 담당이 아닌 업무도 수시로 나를 불러서 처리 결과나 진행 상황들을 물어보곤 했다. 아는 내용에 대해서는 즉답을 해주었고, 담당이 아니기에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보기 힘든 내용은 체크해두었다가 담당자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러면 담당자가 직접 들어가 보고를 진행했다.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한 것만도 3년간 쌓인 일머리 덕분이었던 것 같다. 초년에는 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몰라서 나한테 물어본 건 다 내가 대답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 말 저말 하다가 결국 잘 못된 내용을 보고해서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기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학장과 함께 임명된 부학장과의 관계도 조금은 특별(?)했다. 와이프와 나는 같은 학번의 농대 출신이다. 학과는 다르지만 같은 건물의 2,3층에 위치해 있었다. 부학장은 첫 번째 회식 때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이후부터 사석에서는 자꾸 나를 '사위'라고 불렀다. 와이프 이름을 말해줘도 기억이 안 나는 것 같은 눈치였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나를 가깝게 생각했는지 일처리 하는 데는 아주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학생과의 관계나 본부 부서 직원들과 문제가 생겼을 때 직접 나서서 처리해 주곤 했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학장과 부학장 모두와 공적인 관계 외의 사적인 관계가 설정이 되다 보니 간간히 튀어나오는 불편함이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당연히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과의 관계이며, 그중에서도 실장과 팀장과의 관계의 어려움이었다. 학장과 부학장이 나를 편하게 대하다 보니 오히려 실장과 팀장이 나를 불편해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혹시라도 내가 사무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그들에게 전달할까 봐 의심하는 거였다. 농담 삼아 '오늘 들은 이야기는 비밀로 해줘'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난 당연히 양쪽과의 관계에서 누구 편을 들거나 누구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다른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일러바친다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느 한쪽과도 굳이 더 친해지고 가까워져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 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업무의 양이었다. 새롭게 학장이 되면 본인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일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공약 중 일부는 기존에는 없었던 일들이기에 업무 분장이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기존 업무에 신규 업무를 추가로 맡아서 진행해야 하는데 학장 입장에서는 내가 가장 일을 맡기기가 편했기에 자꾸만 일이 늘어났다. 다행히 4년 차이기에 반복되는 일들에 대하여는 노하우도 생겨서 시간 배분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어제와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오늘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면 기분 좋을 직장인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늘어나는 일과 기존에 하던 일을 4년째 반복하면서 일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그때 학교 정기인사가 있었고 대부분의 직원이 가기 싫어하는 본부 재무과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학교 생활 14년 차 중 반절에 가까운 시간인 6년을 그 부서에서 보내게 되었다.


재무과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농대 행정실은 '천국'이었다는 것이었다. 농대에서 근무한 지 3년이 넘어가는 시기부터 다른 부서에서도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컸는데 재무과로 간지 3일째부터 농대로 다시 가고 싶어 졌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동일하다. 농대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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