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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재무과에선 이런 일도 합니다.

by 장수생

재무과로 발령이 나서 좋은 점을 굳이 찾자면, 많은 직원들과 얼굴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단과대학은 약간 고립되어 있는 면이 강하기에 사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이상은 타 직원들과의 접점을 만들기가 어렵다. 하지만 본부 부서는 업무 특성상 타 부서 직원들과 연계되는 일들도 많고, 본부 건물에 수백 명의 직원들이 함께 근무하기에 오다가다 만나게 되면서 알아가게 되는 경우도 많다. 회사일이란 게 FM적으로 법률과 규정, 매뉴얼에 의해서만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수많은 일들이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어려운 일도 쉽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도 빠르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쉬운 일도 어렵게, 빠르게 처리될 일도 마감 기간에 겨우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이상의 친분을 유지하는 직원들이 많을수록 일이 편해진다. 당연히 반대급부로 나를 이용해서 일 처리를 쉽게 처리하고자 하는 직원들도 생기기에 이 부분도 고려하면서 사람들과 적정한 선을 유지해야 할 필요는 있다. 그 적정선이 어디까지인지 알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처음 발령받은 2011년 당시 재무과에는 총 3개 팀 12명의 직원들과 함께 근무를 했다. 우리 팀은 관재팀으로 물품, 국유재산, 실험실습 기자재 등을 총괄하는 팀이었으며, 그중 국유재산 업무를 맡게 되었다. 타 팀은 학교 전반에 관한 회계, 물품이나 공사 등의 계약, 급여, 등록금 수납 등의 업무를 맡고 있었다. 재무과의 대부분의 업무는 '민원'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민원이 가장 많은 업무가 등록금 수납과 내가 맡은 국유재산 업무였다.


국유재산이란 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는 모든 건물과 토지, 즉 부동산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었다. 학교에 200여 개 넘는 건물과 수백만 평의 토지가 지역 곳곳에 퍼져 있었기에, 단 한 번씩 현장을 점검만 한다 해도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한 업무였다. 그리고 건물은 대부분 학교 구성원들이 사용하고 있기에 민원이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토지의 경우에는 많이 달랐다.


학교에서 소유하고 있는 토지의 대부분은 임야라고 구분되어있는 '산'이다. 산이라는 토지의 특성상 산아래 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중 산 바로 아래 지어진 집들은 학교 측 토지에 집이나 마당이 걸쳐 있는 경우가 많다. 50~60년 전에는 측량이라는 게 정확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국가 땅은 먼저 사용하는 게 임자'라는 잘못된 인식에 기인해서 집을 지을 때 산아래 경계 부분을 깎아서 본인의 집 부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은 학교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에서도 상당히 많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항공사진 등으로 측량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현재에 와서 학교 땅을 점유하고 있는 사실을 담당자가 인식하게 되면서 발생하게 된다.


법적으로 허가받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부지는 무단점유이기에 학교 측에 반납을 하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 거주 중인 분들은 수십 년째 집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내 땅이 아니니 집을 철거 후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서 민원이 발생하게 되고 해결이 잘 되지 않는 경우에는 결국 소송까지 이어지게 된다.


재무과로 발령을 받아 국유재산 업무를 담당하지 않았다면 학교에서 이러한 일들을 처리하는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학교라는 교육기관에서 학생 교육이나 교수 연구 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업무가 있을 거라는 건 전혀 알지 못했고, 이를 내가 담당하게 될 거라는 건 더더욱 생각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업무를 5년 넘게 하게 될 거란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국유재산 업무를 하게 되면서 처음 경험한 게 너무도 많다. 민원인에게 멱살도 잡혀보고, 30년간 살면서 들어보지도 못한 각종 욕설도 들어보았다. 또한, 소송을 위하여 변호사도 만나보고 법원과 검찰청도 처음 들어가 보았다.(의경으로 경찰서에서 근무할 때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원고와 피고라는 두 신분을 모두 가져보기도 했었다.


교육 기관에서 담당하기엔 특이하다면 특이한 업무이기에 학교에서 이 일을 맡고 있는 사람은 담당자 단 한 명뿐이다. 전임자를 제외하고는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배우면서 처리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항상 옆에 법률과 규정을 가져다 놓고 스스로 업무를 깨우치고 이해해서 처리해야 했으며, 타 국립대 국유재산 담당 직원들과 교류하면서 일을 해나가야만 했다. 대부분의 업무는 시간이 쌓이면서 일처리가 수월해지는데 반해서, 이 업무는 항시 새로운 민원이 수시로 발생했다. 몇 년이 지나도 항상 신입 직원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나는 법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에 법 조문을 해석하는 것도 너무 어려웠으며, 겨우 해석을 해서 결론을 내었어도 상대방은 전혀 다른 해석으로 민원을 제기하곤 했다. 내가 내린 결정이 완벽했었나라는 걱정이 항상 있었기에, 시원하게 일이 끝났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별로 없다. 항상 가슴 한편엔 걱정과 걱정이 쌓여있었다.


다만, 장점이라면 단 시간에 종료될 수 있는 업무들이 아니기에 시간에 쫓겨서 야근을 한다거나 주말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대학에서 가장 바쁜 부서 중 하나인 재무과에서 가장 한가해 보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타 부서에 있었을 때 이 업무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참 좋은 자리라고 생각했을 정도이다.


그렇기에 겉만 봐서는 그 직원의 일이 많다 적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내가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바쁠 때에는 다른 모두가 한가해 보인다. 나만 일이 많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내가 한가할 때는 다른 사람이 바쁜 게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일 같은데 왜 저렇게 바쁜 거야? 바쁜척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수십 개의 사무를 담당하면서 깨달은 건, 지금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일이 제일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들도 다 본인일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을 하면서 남들과 비교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 지금 내 옆에 앉아있는 직원이 한가해 보일지라도 내가 그 업무를 맡게 되면 나에겐 또 가장 힘든 일이 될 테니깐.


직장에 출근해서 하는 모든 일들은 다 힘들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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