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재산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사람이 학교 소유의 부지를 점유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수는 대략 100여 명 정도 된다. 그중 50여 명은 정당하게 사용료를 내면서 허가를 받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50여 명은 무단 점유 중인 상황이다. 무단 점유 중인 사람들이 사용료가 비싸서 못 내고 있는 상황들은 아니다. 년간 사용료가 10만 원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정상적인 사용 허가를 할 수 없는 부지 위를 점유하고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대학교 근처에 00 마을 이란 곳이 있다. 이 곳엔 30여 채의 가구가 있으며 대부분 70세 이상의 노인분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마을 전체가 학교 부지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소송도 진행하였고 협의도 했으나 주민들이 떠나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강제로 내보내는 것도 도의적으로 쉽지가 않은 상황이었다. 국유재산 업무를 맡게 되고 처음 이런 상황에 놓인 마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며 칠 후 지금은 퇴직하신 직원 선생님과 함께 해당 마을을 현장 점검하러 갔었다.
마을을 방문하니 할머니들 몇 분이 텃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난 별 뜻 없이 그냥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학교에서 나왔습니다." 그 순간 할머니들이 손에 쥐고 있던 낫, 호미를 그대로 들고서 우리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옆에 계신 선생님은 자주 있었던 일이어서 그런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서계셨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당혹스러웠고 공포스러웠다. 우리를 둘러싼 할머니들은 농기구로 삿대질을 해가며 우리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자주 오느냐? 학교 직원들만 보면 심장이 떨려서 죽을 것 같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이러냐? 죽으면 나갈 테니 그만 좀 와라. "라는 뜻의 말을 했다. (정확히 할머니들의 말을 옮겨 적지 못하는 이유는 생전 살면서 들어보지 못한 욕설과 고함을 섞어서 말했기에 기억나는 주요 내용만 순화해서 옮겨 적은 것이다.)
나는 정확하게 업무 파악을 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새로 발령받아서 업무 파악을 하기 위해 현장 점검 한번 나온 것뿐입니다. 오늘 어르신들 내보내려고 나온 거 아니니깐 걱정하지 마시고, 정확하게 업무 파악한 뒤에 이야기 나누로 오겠습니다.' 라 말하고 뒤돌아서 다른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때도 할머니들은 다신 오지 말아라. 라며 뒤에서 들리지 않을 때까지 욕설과 고함을 치고 있으셨다.(너무들 정정하셔서 향후 30년 이상은 건강하게 사실 분들 같다)
몇 시간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학교 부지에 대한 일차적인 현장 점검을 마치고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면서 00 마을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이 중요할 것 같아서, 기존 전임자와 30~40년 전 서류들을 보면서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국유재산은 단기간에 정리되는 업무가 아니기에 40여 년 전 서류까지 캐비닛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며칠간 알아본 현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어떻게든 그들을 내보내는 것뿐이었다.
법률적인 것과 도의적인 것 이 두 가지 중 어떤 게 우선이어야 하는가? 인간적인 관점과 행정적인 관점 어느 것에 중점을 두어서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런 고민들이 계속 생겨나긴 하였으나 나의 입장을 결정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어떠한 고민을 하더라도 내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다면 결국 그들의 입장이 아닌 학교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월급을 받고 사는 직장인이며, 월급을 주는 기관이 원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무과에 근무하는 수년간 수 없이 찾아가서 싸우고 달래고 협상하고 내용증명도 보내면서 행정적으로 절차를 진행하고 말하고 사람들을 대했다. 나이 많으신 분들에게 집 비우고 나가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나도 이기적인 인간이라 왜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으면서 이렇게 버텨서 나를 힘들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만들면 안 되는 거지만, 그렇다고 직장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나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근무한 지 5년 여가 지난 이후에 해당 마을에 대한 업무는 학교에서 감당하기엔 벅찼기에 국가의 전체 토지 업무를 수행하는 자산관리공사로 해당 부지에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하게 되었다. 그분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는 이제 알 수는 없지만, 나의 후임자에게는 큰 선물을 하나 줬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교 국유재산 담당자가 겪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 중 가장 큰 어려움 하나를 떼어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 번씩 00 마을을 지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생각이 든다. 이러한 문제는 학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는다. 매번 싸우고 다투고 서로를 증오해야만 하는 현실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현실을 만들고 있는 게 과연 그 들만의 이기심 때문인지, 측은지심을 가지기 힘든 국가의 편협함인지. 그리고 편협한 국가 기관에서라도 월급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기에 다른 이의 마음보다는 나의 안위를 먼저 돌보겠다고 생각하는 나의 '나쁨'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나오는 영웅 같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정의로운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그럼에도 착한 사람이다라는 말은 듣고 살고 싶은데 그 들에 비친 나의 모습은 전혀 착하지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