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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객관식 시험을 보다

by 장수생

재무과에서 근무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날이 었던 것 같다. 외부기관에서 사무국장이 새로 발령을 받아 내려왔다. 처음 인사를 가거나 그분에게 첫 업무 보고를 했을 때 보통 사람과는 결이 다른 특이한 사람(우리식 표현으로는 또라이)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특이함은 며칠 후 생각지도 못했던 종이 시험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전체 사무국 직원을 대상으로 본인과 각 과 과장들이 직접 출제한 문제로 객관식 시험을 보겠다는 거였다. 그 말을 과장님에게 처음 전해 들었을 땐 모든 직원이 농담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연히 그러지 않겠는가. 나는 5년 차 직원이지만 함께 근무하는 팀장이나 직원들은 20년 길게는 30년 가까지 근무 중인 분들이다. 그 직원들조차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이 일어난 거다. 외부 기관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국장이 직원 모두를 본인의 방식으로 평가하겠다고 시험을 본다는 게 요즘 시대에 말이 되는 발상인가?


재무과뿐만 아니라 사무국에 소속되어 있는 총무과와 시설과 직원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농담인 줄 알았던 시험은 전부 실제 상황이었다. 시험문제는 각 부서에서 주로 적용하는 법률 등에 관한 사항을 기본으로 20문제 정도 출제한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 직원들 반발이 있다는 걸 알았는지 점수가 높은 직원에게는 소정의 상품권을 선물로 주고, 이외의 직원들에게는 어떠한 불이익도 주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시험 날짜가 일주일 뒤에 잡혀있긴 하였으나 특별히 공부를 한다던가 하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본인 앞에 쌓여있는 일이 산더미인데 국장의 장난 같은 장단에 맞춰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장이 시험을 보려고 하는 명목상 이유는 당연히 있었다. 직원들이 이 기회에 법률과 규정을 다시 한번 확인해서 업무처리 시 실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직원들 군기를 한 번 잡아보려고 하는 이유가 더 컸겠지만 말이다. 그런 걸 다 떠나서 사무국 직원들은 너무 바빴다.


그리고 시험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막상 눈앞에 닥치니 별거 아닌 일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더라도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걱정을 나만 하고 있던 건 아니었나 보다. 직원들이 걱정을 하기 시작하니 팀장들이 과장실에 들어가서 출제한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달라 말했다.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는 상황이긴 했다. 시험 출제자에게 미리 시험 문제를 알려달라니 말이다. 그런데 더 웃긴 건 과장님이 시험지를 사전에 미리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과장 본인도 너무 바쁜 시기에 국장이 지시해서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있긴 했으나, 직원들이 바빠서 정신없는 상황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시험에 시간 뺏기지 말라고 미리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잠깐 쳐다보며 답만 외웠다.(이 와중에 미리 나눠준 시험지 조차 보지 못해서 실제 시험날 최하점을 받은 직원도 있었다.)


시험 당일 대부분의 직원들은 문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외운 답들을 기계적으로 표기만 했다. 이때 성격에 따라 이미 아는 답이기에 모든 문제의 정답을 정확히 적은 직원이 있었고 나처럼 실제 푸는 척을 하기 위하여 2~3문제는 틀리게 적은 직원들도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만점을 맞은 직원에게는 상품권이 수여되었고 그렇게 대학 졸업 후 5년 만에 본시험은 남는 것 하나 없이 소중한 시간만 빼앗긴 채 끝나게 되었다.


이후로도 그 국장은 종종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결정과 상황들을 만들어 냈다. 힘없는 직원들은 뒤에서 불평은 하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힘들게 버티고 버틴 1년이 지나고 또 국장이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새로 바뀐 국장은 이전 국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대체 왜 '윗사람'이라 불려지는 사람 대부분은 직원들이 생각하기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말과 행동들을 하는 걸까? 강원국 작가의 말처럼 말은 하면 할수록 늘어나기에 나이가 많을수록 말이 많아진다고 하던데 그와 같은 건가 싶다. 오랜 공직기간 동안 수많은 또라이을 만나서 그 들의 또라이 본성을 체득하다 보니 본인은 그 이상의 또라이 기질을 발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이러한 사람들과 오랜 기간 근무하다 보면 결국 누군가에겐 또라이로 비치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이미 또라이가 되어 버린 건가? 알 수는 없지만 스스로 항상 경계심을 늦추진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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