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사무직이 한 부서에서 이동 없이 6년을 근무하는 일이 흔하지 않다. 사서직이나 전산직 또는 시설직처럼 전문직종이 아닌 이상은 그럴 일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장 6년의 기간 동안 재무과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한 부서에서 한 가지 업무를 오랜 기간 맡아서 했을 때는 당연히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단점도 많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2~3년에 한 번씩 발령을 내준다.
우선 장점이라면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노하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한 가지 업무를 수년간 전담하게 되면 어떤일이 생겨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게된다. 왜냐하면 기존의 틀을 깰만한 새로운 업무가 생기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업무처럼 보일지라도 그 실상을 드려다 보면 기존에 업무와 거의 비슷한 과정과 절차로 해결이 된다. 국가기관 행정이란 게 법과 규정 안에서 업무 처리 매뉴얼이 대부분 고정화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 경우 한정 일지는 모르지만 야근이나 주말 출근 같은 시간 외 근무를 거의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저녁 있는 삶,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삶'을 실현하고 살았다.
그리고, 직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업무 하면 떠오르는 유일한 직원이 된다는 것이기에, 업무 능력을 비교할 만한 타 직원이 없다. 그래서 초반 몇 년만 고생하면 그 이후부터는 직장 생활하기가 편해진다. 그 업무에는 나 만큼 잘 알고 있는 직원이 없기에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어떤 과장이 발령받아 오더라도 나를 쉽게 내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다. 그렇기에 상사들이 자주 바뀌더라도 내 주장을 조금은 쉽게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단점도 많다. 우선 책임 문제이다. 해당 업무에 대하여는 본인이 최초 검토한 내용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 이기에 검토상 실수가 있을 경우 모든 책임 또한 당사자가 져야 한다. 그리고 보직자에 대한 대부분의 업무 보고는 팀장급 이상이 하게 되어 있는데, 내 경우에는 국장이나 처장선까지 보고는 직접 대면 보고하거나 또는 주요 보직자들 기획 회의에 불려 다니는 불편함도 있었다.
더 큰 단점을 따로 있다. 바로 매너리즘이다. 3년 차를 지나 4년 차가 되는 해부터 틀에 박힌 업무를 또 1년간 해야 된다라는 생각에 실증과 지루함을 넘어 집어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이러다가 정년 때까지 이 업무만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공포감까지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정말 하기싫다라는 무력감이라는 감정을 그 시절에 처음 느껴본 것 같았다. 출근하면 오로지 퇴근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중해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며 칠이 나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그러는 와중에 옆 자리 또는 뒷자리에 앉은 직원들은 자주 바뀌어갔다. 한 곳에 계속 있는 건 나였지만, 직원들이 수시로 바뀌니 다시 적응해야 하는 것도 나였다.(당연히 새로 발령받아 오신 분도 적응하느라 힘드셨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도대체 시설직이나 사서직 직원분들은 어떻게 한 곳에서 2~30년씩 근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못 견뎌낼 것 같다.
다양한 업무를 모두 경험해본 직원과 한 가지 업무에 특화된 직원 중 어느 쪽이 더 회사에 필요한 인재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당연히 회사 입장에서야 다양한 업무 전부를 전문가처럼 해낼 수 있는 직원을 원하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적절히 분배해서 2~3년마다 대부분 발령을 내서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게 하고, 특정한 업무 몇 가지를 선정하여 전문가를 키우려고 하는 것 같다. 문제는 실제 업무를 배정받은 직원이 어떤 성향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직원이 한 가지 업무를 전문적으로 맡아서 담당하길 원하는지, 여러 군데를 경험해보길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인사가 만사'다 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잘 뽑아서 그 사람의 능력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모든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 인사를 담당하는 자와 인사 발령을 받고 움직이는 자 사이에는 깊은 괴리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인사팀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조용한 사람이다. 어디로 발령을 받던 지 뒤에서는 욕할지라도 그대로 따르는 사람. 직접 찾아가서 따지거나 호소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처음부터 반영해서 인사를 한다.(당연히 인사권자들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주장하겠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나 또한 그랬다. 인사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부당하다거나 내보내 달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기간이 길어지니 답답함과 짜증남에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소심한지라 사무국장이나 총무과장을 찾아가지는 못하고 그 당시 재무과장에게 제발 좀 내보내 달라고 요청을 했다. 구두상의 약속을 받고 5년 차 하반기 학교 정기 인사 때 보내줄 거라 생각했는데 발령 공문에 내 이름이 적시되어 있지 않아서 화가 났다. 속상한 마음에 이틀 연가를 내고 쉬었던 적도 있다. 그 연가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제야 진심이라 받아들였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연도 상반기 정기 인사 때 드디어 발령이 났다.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직장이라는 곳이 말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면 알아서 신경 써주는 게 아니라 본인들 입맛에 맞게 이용하려 하는구나 하는 걸 말이다. 그렇다고 성격상 인사부서를 찾아가 따지고 인사권자를 붙잡고 사정하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없다. 다만, 직장이라는 곳에서 말없이 참고 인내하고 지내는 다수의 직원들의 의사를 더 물어보고 더 반영해서, 항상 본인의 작은 불편에도 큰 소리부터 내는 소수보다 더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재무과 근무 6년 만에 드디어 발령이 났다. 발령 공문을 받았을 때 시원섭섭한 감정이 아닌 시원한 감정만 들었던 것으로 보아 정말 나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발령 받은 곳은 지금까지 학교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자연대 행정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