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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출근이 즐겁다

by 장수생

아주 오랜 기간의 재무과 근무를 종료하고 자연대로 첫 출근하는 날이 되었다. 발령이 나면 심란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그러지 않았다. 즐거웠다. 당연히 발령 첫날은 재무과로 출근을 해서 재무과 식구들과 함께 자연대로 넘어가야 하기에 재무과로 출근을 했다. 하지만 업무를 하기 위해 출근하는 것과 정리를 하기 위해 출근하는 건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재무과는 12명의 직원들이 근무를 하는 부서인데 오래 근무하다 보니 재무과에서만 30명은 넘는 직원들과 함께 근무를 했었다. 많은 직원들과 근무를 하며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는 것이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남은 가장 큰 자산이다. 그 직원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져 있기에 지금도 수많은 도움을 받아가며 지금도 일을 해나가고 있다. 마지막에 함께 있었던 직원들도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헤어짐이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였으나 어차피 어디선가 또 같이 근무할 직원들이기에 미련이 남지는 않았다.


자연대로 발령받아서는 처음부터 적응이 너무 수월하게 잘되었다. 내가 맡게 된 업무의 일부를 담당했던 전임자가 퇴직을 하셨기에 인수인계받는 과정이 조금 불편하긴 하였으나 업무 자체가 어렵지는 않아서 쉽게 배울 수 있었다. 또한 과장, 팀장 포함하여 5명밖에 안 되는 작은 부서이고, 처음에 함께 근무하게 되었던 직원분들이 자연대를 떠난 지금까지도 사적으로 모임을 가질 정도로 좋은 분들이었다. 귀가 아플 정도로 목소리가 크신 분이 워낙에 사무실 분위기를 잘 이끌어 주셔서 매일 출근하는데 전혀 부담감이 들지 않았다. 일도 사람도 모두 좋았다.


재무과가 다신 가고 싶지 않은 부서라면 자연대는 정년 때까지 있더라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매일매일을 즐겁게 출근하며 일을 했었다. 그리고 보직 교수들이 대부분 특이하고 이상하고 쉽게 말해 '또라이'나 '사이코'라 불리는 사람들이 맡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반해 그 당시 원장, 부원장을 맡고 있는 교수들은 '부처'나 '신사'라고 불릴 정도로 인성이 좋은 분들이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자연대 행정실이 힘든 부서였다고 한다. 본부에서 다루기가 어렵거나 성격상 다른 직원들과 쉽게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직원들만 모아 놓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많은 직원들이 일은 편하지만 가고 싶지 않던 곳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내가 발령받아 근무하게 된 자연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보면 결국 직원들이 선호하는 부서와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은 부서의 차이는 업무의 양과 난이도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상관이나, 아니면 옆자리에서 함께 일을 해야 하는 동료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난관이나 어려움 그리고 고달픔 같은 감정은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대부분 해소가 된다.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거나 불필요하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대부분 일이 가진 성질 때문이 아니라 전부 일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빨리 해결하자면 할 수 있는 일도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끌면서 담당자만 애태우는 구성원들이 종종 있다. 아니 종종이 아니라 자주 그리고 많이 있다. 특히 앞서서 이야기한 교수들.


분명 자연대에도 그런 행동이나 말을 하는 교수들은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대에서는 하는 일이 잘 처리되고 지금도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는 건 그런 교수들의 말 같지도 않은 태도나 요구들을 당시 보직자였던 학장이 거의 다 해결을 해주었다는 거다. 보직자들도 모두 교수이고 팔은 안으로 굽히는 거기에 타 교수들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쉽게 거절하거나 무시하지 못한다. 그런데 당시 학장들을 행정실의 입장을 대변해서 일을 처리해 주었고 행정실에서 꺼려하는 교수들한테는 직접 찾아가거나 연락을 해서 일을 해결해 주었다.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도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출근이 즐겁고 일하는 게 신이 난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 생활 중 그런 천국 같은 기간은 정말 짧다. 나도 자연대에서 2년이란 시간을 근무했지만 1년 근무한 다른 부서보다도 더 짧게 끝난 것 같아서 지금도 너무 아쉽다.


좋은 곳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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