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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술과 함께

by 장수생

자연대에서 담당한 업무 중 학생 지원업무가 있었다. 쉽게 말하면 학생 행사나 학생 민원과 관련된 업무를 말한다. 학생 행사는 신입생 O.T나 학생회 간부 수련회, 농촌봉사활동, 체육대회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고 사고가 자주 나는 행사가 신입생 O.T이다. 대부분 학과에서는 신입생 O.T를 1박 2일로 진행하는데 자연대는 관례적으로 2박 3일 일정으로 항상 행사를 시행했었다.


난 내가 신입생일 때도 O.T에 참가하지 않았었다. 모르는 친구나 선배들과 잘 어울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낯가림일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걸 귀찮아하는 성격 때문일 수 도 있겠지만 내 성격과 이러한 행사는 잘 맞지 않는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원으로서 학생들 O.T에 참석하는 건 행사를 즐긴다거나 참여를 한다는 의미하고는 전혀 다르다. 단순히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오로지 '제발 아무 사고도 발생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만 하며 2박 3일을 보내는 '일'이다.


신입생 O.T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술이다. 학생들이 버스를 타기 전에 건물 앞에 성처럼 쌓여있는 소주와 맥주를 보는 순간이 실제 2박 3일 동안 현장에 있는 것보다 더 떨린다. 저 많은 술을 정말 다 먹겠다고 가져가는 건가 싶을 정도로 웬만한 편의점에 들어있는 술의 양보다 더 많다. 그리고 결국 그 술들의 90%는 다 먹고 온다. 하지만 그 많은 술들은 결국 사고를 일으킨다. 신입생 O.T 시즌이 되면 항상 뉴스와 신문에 대학가 사건사고 소식이 들려온다. 그 일들의 대부분은 술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기에 행사 시즌이 되면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다. 자연대 학생회와 수시로 만나가며 몇 명이 가는지, 방 배치는 어떻게 했는지, 남녀 숙소 층을 별도로 분리했는지, 어떤 행사를 하는지, 참석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불이익은 없는지 등 정말 여러 가지 문제들을 사전에 돌아보고 대책을 마련한다. 그리고 숙소도 행사 전에 가보고 소방시설, 대피시설, 식사 등등을 다 살펴보고 안전대책을 마련하여야만 행사가 진행될 수 있다.


내가 있는 2년간 2번의 신입생 O.T가 있었고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술을 많이 마셔서 행사 마지막 날 아침 병원에 데려가서 술 깨는 주사를 맞은 학생(신입생이 아니고 재학생이었음)도 있었고, 게임하는 중 미끄러져서 발목이 골절이 돼서 밤늦게 응급실로 실려간 학생도 있었다. 그 정도의 사고도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더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서 지금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하여 2년째 온라인으로 신입생 환영회를 대체하고 있다. 신입생들을 당연히 좋아하지 않겠지만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담당자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행사 진행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가 생기기 전에는 대학마다 술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하여 자기가 술을 마실지 안마 실지 정해서 팔찌(인권 팔자라 부른다.)를 차고 행사를 하는 대학도 있었다. 술은 마시지 않겠다는 팔찌를 찬 학생에게는 술을 강요하지 않도록 하는 목적이다. 오죽하면 이런 팔찌까지 만들어가며 O.T를 진행했겠는가.


신입생 O.T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궁금한 점에 대하여 교수, 재학생 선배들이 알려주는 자리이면서, 학생들끼리 친분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오로지 술과 게임을 배우는 자리로 변질되었었다. 직원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간담회, 등반대회, 체육대회 등 이름만 다를 뿐 결국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행사가 많이 있다. 몇 년 전 문화회식이라는 미명 하에 영화를 본다던가, 볼링이나 당구 같은 운동을 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행사가 생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문화생활 뒤에 뒤풀이로 결국 술을 마셔야 했다. 오히려 영화를 보느라 술자리가 늦게 시작했기에 끝나는 시간만 더 늦어지는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이런 걸 생각해보면 대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우리는 너무 노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이런 문제가 생긴 건진 알 수 없지만, 술 없이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에는 어차피 대면 모임은 불가하다. 만나지 않고서도 친목을 다지며 재미있게 잘 놀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야 할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굳이 같이 놀아야 하는가 이긴 하다. 혼자서 잘 노는 사람들을 함께 놀자며 굳이 불러서 술을 마시는 게 단합이고 협동이고 소통인가? 당연히 아니라고들 답할 것이다. 하지만 함께 놀지 않으면 '일'에도 끼워주지 않느다. 일은 공적인 영역이고 노는 건 사적인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두 영역을 분리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사적인 영역에서의 어울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술은 먹고 사람만. 노는 것도 놀고 싶은 사람만. 그리고 사적인 활동을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을 함에 차별을 두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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