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휴직과 삼시세끼

가정주부가 되다

by 장수생

2021년 3월 2일부터 1년간의 육아휴직을 시작하였다. 다행히도 내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교라는 직장은 아빠들의 육아휴직도 꽤나 많은 편이어서 눈치나 불이익을 받는 곳은 아니다. 그렇기에 첫째 때는 월급을 받아야 만 했기에 사용하지 못했던 육아휴직을 둘째가 6살인 올해 사용하기로 하였다. 수년 전부터 와이프와 오랜 기간 상의하고 결정한 일이다. 육아 휴직이란 것도 결국 일을 쉰다는 의미이며, 일을 쉰다는 건 직장에서 월급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기에 가족들 모두의 마음이 일치하여야만 쓸 수 있는 것이다. 와이프는 나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내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를 원했다. 당연히 조건이 일부 달려있긴 했다.


그 조건 중 가장 중요하고 현재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는 건 바로 우리 4인 가족의 삼시 세 끼를 준비하는 것이다. 육아휴직 1년간 수많은 집안일 중 가족들 끼니를 챙겨주는 모든 일을 내가 전담해야 한다. 이제 막 휴직기간 50일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차린 끼니 수는 산술적으로는 150끼 정도일 것이다. 당연히 아이들은 평일날은 학교에 가기에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외식도 하고 본가나 처갓집에서 먹고 오는 경우도 있었고,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 와이프가 준비한 경우도 하루 이틀 정도는 있었다. 그렇기에 실제 차려낸 끼니수는 100끼가 넘지는 않은 것 같다.

휴직이라고 해서 삼식이(세끼를 모두 집에서 얻어먹는 사람)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모든 식사 준비를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자신도 없었다. 휴직의 조건이긴 했지만 당연히 와이프가 많이 도와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와이프는 휴직 날 이후부터 단호히 나에게 모든 걸 맡겼다.(정말 본인 물 마실 때 빼고는 주방에 들어오질 않기로 결정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결혼 생활 12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의 요리만 해본 나에게 끼니를 오롯이 혼자 차려내는 건 너무 어려웠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유튜버와 블로거들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겨우 식탁을 채우고 있다. 누구처럼 식탁을 풍성하게 차리지 못하고 겨우 누룽지에 김치만 올린 적도 몇 번 있지만, 아직까진 내가 밥상을 차려내지 못해서 끼니를 굶고 있지는 않다는데 만족하고 있다.


한 달 넘게 끼니를 준비하면서 느낀 건 하고자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거다. 여기서 '할 수 있다'는 말 그대로 끼니를 차려 낼 수 있다는 것이지 맛있게 또는 풍족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아직까진 그런 실력은 갖추지 못했다.(유튜브 보고 똑같이 하는 것 같은데도 미묘하게 맛이 이상하다. 맛이 없어서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먹을 만은 하다. 유튜브들이 만든걸 보기만 했지 먹어보진 않았으니 내가 만든 것과 같은 맛일 수도 있긴 하겠다.) 여기에서 웃긴 건 와이프는 뭘 먹어도 정말 맛있다고 칭찬을 한다는 거다. 왜 그렇게 칭찬을 하는지 이유를 알 듯하다. 그래야만 없는 실력이라도 발휘해서 무언갈 더 만들어 낼 테니깐.


- 와이프의 짜증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

전업주부 생활을 하면서부터 이상하게 짜증이 늘어난 것 같다. 그중 가장 짜증이 올라올 때가 있는데 가족들이 '아침 뭐 먹어?', '저녁 뭐 먹어?', '이거 해주면 안 돼?'라는 질문을 할 때이다. 와이프가 재택근무를 하면서 12년 동안 거의 삼시 세 끼를 전담했었는데, 그때는 나도 이런 말을 너무도 쉽게 와이프한테 했었었다. 그럴 때 와이프가 짜증을 내면 '그냥 한번 물어본 건데 뭘 그렇게 짜증 내냐"'라고 말하기도 했었고, 짜증 내는 이유를 잘 몰랐다. 근데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항상 밥을 먹으면서도 다음 끼니때는 뭘 먹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메뉴를 정하는 게 요리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내가 만든 요리이지만 다음 끼니 걱정을 하느라 맛있게 먹어지지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머릿속으로 하고 있는 생각도 정리가 되고 있지 않았는데, 내가 답이 안 나와 고민하고 있는 것과 같은 질문을 해대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그러면 하기가 싫어진다. 어렸을 때 이제 막 공부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그만 놀고 공부 좀 해라"라는 말을 듣는 순간 공부가 하기 싫어지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 무언갈 자꾸 깜빡하게 되었다 -

요즘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곧 찾아 지기는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당최 기억나지 않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전에는 이런 일이 거의 없었는데, 주부가 되면서 오히려 챙기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져서 그런 건가 싶다. 그중에서도 핸드폰, 차키, 지갑을 하루에 한 번씩은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찾아다니고 있다. 육아휴직 전에는 와이프가 이렇게 깜빡깜빡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넌 뭘 그렇게 자꾸 잊어버리냐? 이해가 안 되네.'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와이프한테 내가 이 말을 듣고 있다. 그런데 나도 내가 이상하다. 왜 기억이 나질 않는 거지? 어느 날은 저녁을 준비하면서 국을 끓이고, 에어 프라이기에는 생선을 굽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생선을 구웠다는 사실을 저녁을 다 먹고 나서 기억이 났다. 먹을 만한 반찬이 식탁에 없었는데도 왜 먹는 동안 그 고등어가 생각이 나질 않았던 건지 지금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작년보다 한 살을 더 먹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가정 주부에게만 나타나는 직업병인 건가 싶기도 하다.


1년의 육아휴직 기간 중 이제 50일이 지났다. 전업 주부 생활을 시작한 지도 50일이 지났다. 가사를 전담하기 전에는 출근하는 것보다 집안에서 주부생활을 하는 게 당연히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50일이 지난 지금은 둘 중에 하나를 고르기가 쉽진 않다. 6개월이 지났을 쯔음은 출근이 하고 싶어 질 것 같다. 1년이 지나서 출근할 때가 막상 다가오면 그때는 또 어떤 생각이 들지는 모르겠다.


지금 주부로 살면서 느낀 건 위에 적은 몇 가지밖에 되질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걸 느끼게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왜냐하면 바로 집안일은 배워도 배워도 배울 게 있고, 일을 해도 해도 더 해야 될 일들이 자꾸 생기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하루하루 충실히 집안일을 하다 보면 적응도 되고, 적응이 되면 몸도 편해질 거라 생각한다. 그때쯤이면 와이프의 12년 간의 고됨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 까도 싶다.


- 옆집 아저씨에게 -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하지 마세요. 돕는다는 건 정말 정말 작은 도움일 뿐입니다. 같이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회사에서 내가 맡은 내 업무처럼 당연히 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만 가사의 힘듬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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