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생 Jul 13. 2021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

나도 부모가 됐다. 우리 부모님처럼

휴직 후 매일 아이들의 등하교를 책임지고 있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막내는 큰아이 초등학교 내에서 함께 운영되고 있는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등교할 때는 내가 직접 학교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준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5분 동안의 시간. 아이들은 서로 자기 말만 열심히 나에게 해댄다. 두 명이 동시에 서로 다른 말들을 하기에 대꾸해주기가 쉽진 않지만, 등교하는 길은 항상 시끌벅적하기에 즐거워서 좋다.


학교에 도착해서 차에서 애들이 내릴 때 난 매일 같은 인사를 한다. "오늘도 재미있게 잘 놀다 와. 다치지 말고"라고 말이다. 일부러라도 "공부 열심히 해.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있다. 등교하는 동안 차에서도 항상 수업시간보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즐겁게 떠들고 노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이들 교육상 옳은 방향인건진 모르겠지만 내 마음이 그냥 그러고 싶다. 나도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건 맞지 않는 일일뿐만 아니라 창피한 일인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


아이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바랬던 소원은 오로지 단 하나였다. '아프지만 말아라' 이외에는 바랄 게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빨리 뒤집었으면, 빨리 걸었으면, 빨리 말을 했으면 하고 바라는 게 많아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화내는 순간, 짜증 내는 순간도 많아졌다. 내 눈을 바라보며 한번 웃어주기만 해도 행복했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너무 쉽게 그날들을 지나쳐 버린 것 같다.


아이들은 너무 빠르게 큰다. 그걸 느끼게 된 순간부터는 아이들에게 무언갈 크게 바라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었다. 그렇지만 그 다짐이 하루 아니 한 시간도 채 가지 않는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부모 마음이란 게 우리 아이가 모든 면에서 누구보다 뛰어났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무언갈 하지 않거나 못하면 화를 낸다. 화를 내고 또 후회한다. 최대한 아이들 스스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해야지, 왜 내 뜻에 주장하고 화를 내고 다그치냐며 혼자 후회하고 반성한다. 반성하고 또 화를 낸다. 무한반복이다. 내가 마음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부모인지라 원하는 게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우리 딸은 집 근처에 학원이 없어 학원을 다니지는 않지만, 본인이 원하는 악기와 미술, 영어는 별도 과외를 하고 있다. 유명한 강사에게 수 십만 원씩 지불하고 받는 과외는 아니지만, 이것도 하기 싫으면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원하지 않고 재미가 없으면 언제든 그만 해도 된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계속 끊기지 않고 배웠으면 하는 마음 또한 크다.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기도 하지만 국어, 수학, 사회를 잘하는 것보다는 악기 하나 연주할 줄 알고,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실력이라면 오히려 사는 게 더 풍요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거라면 내가 직접 배워야 하는 건데 시간이 없다느니 이젠 나이 먹어서 머리와 몸이 안 따라준다느니 하는 수 천 가지 핑계로 직접 하고 있지는 못하다. 창피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아이한테는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있다. 잘 못된 상황이라는 걸 알고는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만 너만큼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항상 모든 생각에 앞서있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일은 자식이 나이를 먹어 독립할 때가 되어도 계속되는 것 같다. 지금은 곁에 없는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 형이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 근처에서 방을 구할 때였다. 부동산에서 처음엔 원룸을 하나 보여 주었다. 난 그 방이 너무 좋아 보였다. 싱크대도 있고 침대 놓을 공간도 있고 화장실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보다. 칸막이 없이 나누어 있지 않는 주방과 거실과 방이 하나인 공간. 본인이 힘들었을 때 살았던 작은 셋방 같은 느낌이셨나 보다. 형도 괜찮다고 마음에 든다고 했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최종 결정은 방만 하나 있는 하숙집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하숙집에서 형이 써야 되는 공간은 원룸보다 훨씬 작았지만 아주머니가 밥을 해주는 주방이 별도로 있고, 화장실도 따로 설치되어 있기에 오히려 더 안락한 '집'같아 보이셨던 것 같다. 20살이니깐 이젠 조금 놓아줬어도 되었을 텐데. 그런데 나도 내 딸이 독립할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이렇게 부모와 자식 간의 입장과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자식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마음으로 화내고 어르고 하는 건 아니다. 오직 내가 힘들게 걸었던 길을 자식에게만큼은 걷게 하고 싶지 않기에, 나의 고생만으로 자식의 걷게 될 길이 평탄하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같지만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렇기에 부딪히고 깨지고 그러면서 다시 단단하게 붙여짐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싸우고 화해하고, 다음날도 싸우고 화해하고 그렇게 반복해가는 수 밖엔 없다. 그렇게라도 커가는 아이의 곁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가고자 한다.

오늘도 학교 끝나고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동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 품으로 뛰어온다. 나의 세상이 내 품에 포근히 안길 수 있도록 무릎을 꿇고 팔을 벌린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본다.


- 옆집 아저씨에게 -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11화 아내와 함께 운동을 해보셨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