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생 Jul 19. 2021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다.

별일이 없다는 게 행복이다.

하루가 시작되었다.


새벽 5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새벽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 핸드폰을 켠다. 뉴스를 읽는다. 그리고 책을 본다. 또는 글을 쓴다. 이 시간엔 아내도 일어나 있다. 작은방에서 본인만의 시간을 보낸다. 거의 책을 읽는 것 같다.. 서로 굳이 방해하는 행동을 하진 않는다. 각자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아보기 위해서.


아침 6시. 주방에서 소리가 난다.

가족들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거의 매일 밥을 새로 한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아침에 먹을만한 밑반찬이 뭐가 있는지, 국 끓일 재료는 또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한다. 결국 귀찮은 마음에 가장 손쉬운 재료인 계란을 꺼낸다. 국하나에 계란찜 아니면 프라이.


아침 7시. 식탁에 수저와 젓가락을 놓는다.

가족들이 아무도 주방에 나오질 않는다. 방 안에서 이미 잠에서 깬 가족들이 누워있는 상태로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괘씸한 마음에 일부러 큰 소리가 나도록 대리석 식탁에 수저와 젓가락을 세게 놓아둔다. 그래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낼 때 그 반찬을 접시에 옮겨 닮아 식탁 위에 내려놓을 때도 접시가 깨지지만 않을 정도로 세게 내려놓는다. 그 정도 소리에도 아무도 나오질 않는다. 결국 밥상을 다 차린 후 "밥 먹자"라고 말한다. 그때서야 아이들이 눈곱을 떼며 식탁에 와서 앉는다.


아침 7시 30분.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별로 차린 게 없는 식탁이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아서 짜증 낸 게 미안할 정도로 아이들이 밥을 잘 먹는다. 잘 먹는 걸 보니 기분이 또 좋아진다. 가족들이 밥을 다 먹고 떠난 텅 빈 식탁의자와 치워야 할 것 들로 가득 차 있는 식탁 위를 보며 한 숨을 짓는다. 내 몸을 움직여서 식탁을 치우고, 반찬들을 다시 냉장고에 넣어 두고 설거지를 한다. 그래도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내 일의 반 이상을 도와준다. 고장 나지 않길 바라며, 식기세척기 전원을 누른다.


아침 8시. 막둥이를 씻기고 옷을 입힌다.

막둥이는 엄마가 해준다고 해도 식탁을 치우고 있는 나에게 꼭 양치를 해달라, 씻겨달라, 옷을 입혀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누가 제일 좋아라고 물어보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보기만 해도 귀엽고 웃음이 나오니깐 양치도 해주고, 씻겨주고, 옷을 입혀준다. 큰 딸은 알아서 다 잘한다. 오히려 도와준다고 하면 기겁을 한다. '너, 너무 빨리 큰 거 아니니'


아침 8시 20분. 등교를 시킨다.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건다. 그리고 5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등교를 시키고 집에 돌아온다. 이젠 아이들도 없이 어른 둘만 있는 집에서 편하게 쉴 수 있다.라고 휴직 초반엔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단 하루도 생겨나지 않았다.


아침 8시 40분. 청소와 빨래를 시작한다.

큰방, 거실, 작은방 1, 작은방 2, 베란다 순서로 청소를 한다. 이번에도 다행히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대신해준다. 내가 할 일은 로봇청소기가 쉽고 빠르게 청소할 수 있도록 바닥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위로 올리는 것이다. 의자를 책상 위로, 널브러진 옷가지들은 옷걸이에, 책들은 책장에, 장난감은 장난감 통에 넣은 후 청소기를 돌린다. 청소기가 바닥 청소를 하는 동안 걸레를 들고 이곳저곳을 닦기도 한다. 가끔. 글리고, 한 번씩은 냉장고 정리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빨래를 돌린다. 당연히 빨래도 세탁기가 해준다. 하지만 각 방구석마다 존재하는 빨래들을 찾고, 뒤집어진 옷들은 다시 원상태로 돌린 후 세탁기에 넣는 일도 쉬운 것만은 아니다.


오전 9시 30분.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 둔다.

건조기가 있긴 하지만 장마철이 지나고 햇볕이 좋은 이때에는 대부분 건조대에 널어서 자연건조를 시킨다. 건조기에서 말릴 때의 뽀송함도 좋지만, 햇볕에 말릴 때 물기가 하나도 없이 다 빠져나가 갈라질 것 같은 바삭임이 너무 좋다. 모든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와 건조대에 탈탈 털어서 널어둔다. 이때만큼은 날씨가 항상 맑기를 바란다. 그리고 전날 널어놓고 마른빨래를 갠다.


오전 10시. 점심 고민을 시작한다.

냉장고를 뒤진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스캔한 후 인터넷에 재료들을 검색하면 해당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 검색된다. 그중에서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메뉴를 선정한다. 그리고 동영상으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공부한다. 그러면 꼭 주요 재료 하나씩은 우리 집에 없다. 그러면 근처 로컬푸드로 장을 보러 간다. 일부러 간다. 휴직 전에는 집에만 있고 싶었는데, 휴직 후에는 나갈 일을 그것도 혼자 나갈 일을 일부러 만든다.

오전 10시 30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내 기준에서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커피인 맥심 모카골드를 마신다.(첫 번째로 맛있는 커피는 남이 타주는 커피이다.) 커피를 마시며, 재택근무 중인 와이프 간식을 챙겨준다. 나 혼자 마시긴 미안하니깐.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쓰기 전에 우선 그날그날 재미있어 보이는 다른 작가님들의 글들을 읽는다. 그리고 공감되는 글들에 하트를 몇 개쯤 눌러준 다음 내 글을 쓰기 시작한다. 평생 이런 릴랙스 한 기분으로만 살고 싶다는 기분이 들 때쯤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정오 낮 12시. 점심을 차린다.

와이프와 둘이 점심을 먹는다. "뭐 먹고 싶어"라고 물어본다. 열 번중 아홉 번은 "아무거나"라는 대답을 듣는다. 그래도 물어본다. 한 번쯤은 메뉴를 정해주니깐. 그리고 그 메뉴는 대부분 국수이며, 국수는 와이프의 최애 식당으로 나가서 먹자는 이야기이다. 남이 타주는 커피처럼 가장 맛있는 밥도 남이 차려준 밥이기에, 나가서 먹으면 언제든 좋다.


낮 1시. 이 시간엔 놀고 싶다.

점심을 먹고 치우고 난 이후엔 일이 없다. 그렇기에 이때 강의를 듣거나, 무언갈 공부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있다. 휴직 중 가장 꿈꿨던 시간들을 이 시간대에 해볼 수 있다. 그렇기에 절대 낮잠은 자지 않는다. 휴직하면서 다짐했던 것 중 하나가 평일날은 절대 낮잠을 자지 않는 거였다.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아서. 그런데 이 시간에 이상하게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긴다. 밖에 나가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거나, 직장에서 전화가 온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세상이 무작정 편하게 놀게 하진 않는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하루 중 좋은 시간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오후 3시. 간식을 고민하고 준비한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됐다. 학교만 갔다 오면 첫마디가 "오늘 간식 뭐야?"이기에 뭐라도 만들어 두려고 노력한다. 휴직 초반보다는 많이 해이해져서 안 하는 날도 있긴 하지만, 뭐라도 먹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오후 4시. 아이들을 데리로 간다.

아이들이 동네 어귀까지 스쿨버스를 타고 온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들과 함께 3분 정도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오기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조잘댄다. 참새들 같다. 귀여운 내 새끼들.


오후 4시 10분. 막둥이를 씻긴다.

학교 갔다 온 막둥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힌다. 어떤 날은 먼저 씻고 싶어서 쉽게 씻기지만, 어떤 날은 어르고 달래야만 씻길 수 있다. 전쟁 같은 날이 되지 않도록 오늘은 유치원 갔다 와서 먼저 "씻고 싶어요"라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다. 아이를 씻긴 이후에는 뭘 하고 싶지 않아도 뭔가를 하게 된다. 치워야 할게 자꾸 생기고, 챙겨줘야 할 것들이 자꾸 생긴다. 아이들 둘이 싸우는 것도 말려야 하고, 우는 막둥이도 달래줘야 하고.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금방 저녁 먹을 시간이 된다.


오후 5시 30분. 저녁을 준비한다.

또 밥 먹을 시간이 됐다. 사람은 왜 하루에 세 번씩이나 밥을 먹어야 되는 건지, 알약 하나로 끼니를 때 울 순 없는 건지에 대해 고민하여 밥을 차린다. 저녁은 아침과 다르게 뭘 먹을지 기대하는 눈치이길래 생선이라도 한 마리 더 꺼내 구워줘야 한다. 이젠 날이 더워져서 불 앞에 조금만 서있어도 이마에 땀이 흐른다.(눈물인가?) 그래도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저녁상을 차려낸다.


저녁 6시 30분. 와이프와 운동을 한다.

휴직 후 아내와 함께 하는 일이 생겼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다니고 있는 '필라테스'이다. 움직이지 않는 나의 뼈들을 원망하며 마스크를 껴서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50분간의 운동을 한다. 초반엔 운동 후 다음날까지 온몸이 아팠는데, 지금은 운동을 한 순간만 아프고 몇 시간 지나면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운동은 참 하기는 싫은데, 하고 나면 뭔가 하나 해낸 듯이 뿌듯하긴 하다.


저녁 8시. 독서를 한다.

우리 집은 저녁 8시부터는 큰일이 없는 한 1시간 동안 독서를 한다. 막둥이는 아직 글씨를 못 읽기에 나나 와이프 중 그날 막둥이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막둥이가 읽기 싫을 때까지 책을 읽어준다. 막둥이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과 큰 딸은 본인이 도서관에서 각자 골라온 책을 읽는다. 처음엔 억지로 읽기도 했지만, 이렇게 라도 책을 읽기 시작하니 이젠 이 시간이 전혀 나쁘지 않다. 오히려 기다려지기도 한다. 모든 가족이 모여 있으면 귀가 쉴 수가 없다. 어떤 소리든 들리기 마련이니깐. 하지만 이 시간은 조용하다. 들리는 소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와 막둥이에게 책 읽어 주는 소리이기에 귀가 너무 편하다. 하루를 마감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저녁 9시. 잠자리를 준비한다.

독서가 끝나면 물을 마신다거나, 화장실을 간다거나, 책상을 정리한다던가 간단히 본인들 일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잘 준비를 한다. 우린 방이 3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방에서 같이 잔다. 큰 딸조차 본인 방이 있지만 절대 방에 가서 혼자 자질 않는다. 애들을 재워야 하기에 우리 부부도 방에 들어가서 같이 눕는다. 모든 방의 불을 끄고 잠을 잔다. 처음엔 아이들만 재우고 나와서 나만의 시간을 즐겨야지 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별로 한 일이 없었던 하루 같지만 몸이 피로를 느낀다. 그래서 그 시간에 나도 잠이 든다. 우리 가족은 절대 밤 10시를 넘기지 않고 잠을 잔다. 그리고 또 새벽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별일이 없는 무탈한 하루를 보낼 때의 나의 하루이다.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너무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무탈하게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다. 큰일이 발생하지 않는 하루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 옆집 아저씨에게 -

아저씨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시나요? 휴직 중인 전 너무나 잘 지내고 있네요. 

 








이전 12화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