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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ul 27. 2021

엄마가 외출하는 날

우리집 재난 상황

 육아 휴직으로 인해 내가 삼시 세 끼를 차리고 가사의 대부분을 전담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래도 아내가 집에 없으면 평소와 느낌이 너무도 다르다. 아내는 재택근무, 난 휴직 중, 큰 딸은 방학중이라 이 세명은 요즘 24시간 붙어있는 중이다. 유일하게 6살 막둥이만 유치원을 나가고 있다. 그런 상황 중 주말에 아내에게 중요한 일정이 생겼다. 오랜 시간도 아니다. 한 7시간쯤. 식사로 구분하자면 점심 한 끼만 엄마 없이 먹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내겐 아내가 없는 식탁이라는 게 굉장히 오랜만이기에 낯설었다. 하지만 기대감이 더 컸다. 아내는 채식주의자이기도 하며,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토피로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을 잘 못 먹게 한다. 하지만 난 좀 다르다. 아니, 나쁜 아빠인가? 평소엔 아내 말을 잘 듣지만, 아내가 없는 날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 들을 최대한 해주려고 하는 편이다. 어차피 어쩌다 하루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를 알고 있는 아이들도 가끔씩 엄마가 없는 날을 오히려 기대하며 원한다.


토요일 아침 아이들 잠깐 집에 놔두고 엄마를 역에 데려다주고 왔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평소엔 잘 먹지 않는 음식들을 바리바리 사 가지고 들어왔다.

"아빠, 손에 든 거 뭐야?"

"먹는 거"

"뭐 사 왔어? 맛있는 거야? 라면도 샀어? 음료수는?"

"한번 풀러 봅시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나는 식탁 위에 방금 마트에서 사 온 것들을 모두 풀어놓았다.

"앗싸~~~~"(큰딸)

"아빠, 최고!!"(막둥이)

최근 전라북도에서는 개인당 10만 원의 코로나 재난지원금 카드를 발급해 주었다. 재난지원금을 써야 할 때는 바로 이때, 엄마가 집에 없는 재난 상황에 쓰는 게 맞다는 강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카드를 원 없이 긁었다. 실제로 많은 돈을 쓴 건 아니지만 잘 사질 않던 것들은 사다 보니 더 쓴 것처럼 느껴졌다.


컵라면, 탄산음료, 냉동피자, 과자, 아이스크림, 조미김, 햄. 평소에도 안 먹는 건 아니나 최대한 조심하고 피하려고 하는 음식들이다. 그래도 아이들도 좋아하고, 나도 밥 차리기 간단하기에 좋아하는 것들이다. 예전엔 회식을 하고 술에 취하면 꼭 이런 것들을 사 오곤 했다. 그리고 "취하니깐 애들 생각나서 좀 사 왔어"라고 말하고 넘어가곤 했었다. 근데 휴직 중이고 코로나로 인해 밖에서 술을 안 먹은 지 1년이 넘어가기에 그렇게 사 올 수도 없다.


오랜만에(?) 혼이 날만한 눈치 보이는 일을 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기분이 더 좋아진다. 역시 한 번쯤은 늘 가던 길이 아닌 샛길로도 한 번씩은 가봐야 한다. 틀린 길만 아니라면 다른 길로 한 번씩 가보면 엔도르핀이 더 분비되는 것 같다.


와이프에게 혼나지도 않았다. 내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주말도 아내가 외출을 한다고 했다.


"애들아, 엄마 이번 주 토요일 어디 간다는데 우리 맛있는 거 먹을까?"

"와~~ 진짜? 라면, 떡볶이, 짬뽕"


거의 좋아진 아토피가 심해지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되지만, 또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건 모두 먹이고 싶은 마음도 크기에 와이프가 외출하는 이번 주말을 또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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