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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Aug 30. 2021

장보는 즐거움

돈 쓰는 재미

물건을 조금씩 사는 버릇이 들었다. 그래서 자주 사는 버릇이 추가로 생겼다.


예전엔 마트를 간다거나 시장을 가야 되는 일이 생기면 굉장히 귀찮아했었다. 퇴근을 한 이후에 가던지 아니면 주말에 가야 했기에 쉬고 싶은 마음들이 더 커서 그랬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딱히 사람이 만나고 싶진 않지만, 밖에는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겨난다. 그래서 필요한 게 생기면 기분이 좋다. 나갈 이유가 생긴 거니깐.


마트보단 시장 가는 걸 좋아한다. 마트보다 깔끔하진 않지만 사람들도 그렇고 파는 음식 재료나 물건들도 왠지 더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다. 그리고 시장에서 파는 즉석 음식인 호떡, 시장 제과점, 3천 원짜리 짜장면 맛도 좋지만 와글와글 거리며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더 좋다. 하지만 시장까지는 차를 타고 20분 정도 가야 하기에 살게 좀 많을 때만 가는 곳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집 근처의 로컬푸드 직매장을 자주 가는 편이다. 어떤 날은 겨우 두부만 한 모 사 오기도 하고, 파만 한 단 사 올 때도 있다. 이 정도로 사려고 옷을 갈아입고 거울도 한번 보고 밖을 나가야 되는 일이 귀찮을 만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재미있다.


군것질이 늘었다.  


주말에 아이들과 마트를 함께 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 학교를 보낸 후 혼자 있는 평일에 혼자 자주 가고 있다. 혼자 가면 가장 좋은 건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건지 군것질이 늘었다. 그중에서도 빵이나 음료를 자주 사 먹는다. 이것들은 돌아오는 길에 운전하면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차 안에서만 먹고 집안으로는 가지고 오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빈 봉지를 들키는 순간 무슨 말을 듣게 될지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

"응. 왜?"

"아빠 오늘 주스 사 먹었어??"

"아니. 안 먹었는데?"

"먹었고만. 뭘 안 먹어. 여기 쓰레기통에 있는 건 뭐야?"

"넌 학교 갔다 와서 쓰레기통을 뒤지냐?"

"내 껀 어딨어? 냉장고에 있어?"

"아니. 몸에 안 좋은 거 먹이면 아빠 혼나. 그래서 혼자 먹었어. 미안"

"어이없네~~~"


라는 대화를 한 다섯 번쯤 한 다음부터는 차에서 먹고 밖에 쓰레기통에 남은 잔여물들을 치우고 오고 있다. 과자나 음료나 몸에 썩 좋지는 않겠지만 그렇기에 더 맛있는 음식들이니 포기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먹는 것들이 맛있었듯 이것들도 왠지 혼자 몰래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아이들에겐 좋은 것만 주고 싶기에 안 좋은 건 내가 먹어 치우겠다는 아빠의 희생정신이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돈 쓰는 건 쉽고도 재미있다.


매달 국가에서 주는 육아휴직 수당을 받고 있다. 큰돈이라 볼 수는 없지만 일을 하지 않음에도 돈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휴직 수당이 들어오는 날이면 시내에 있는 큰 마트를 간다. 카트를 밀고 다니며 카트 안에 물건들이 하나하나 쌓일 때면 비용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쌓이는 물건만큼 즐거움도 비례해서 쌓이는 기분이다.


평소에 잘 먹을 수 없던 것들 그리고 동네 마트에서는 팔지 않는 것들 위주로 담는다. 그렇게 정신없이 담다 보면 어느 순간 카트 가득 물건이 차게 되고, 계산대 앞에 서있는 순간 약간의 후회와 걱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담은 물건들을 절대 포기하진 않는다. 한 달간  육아를 비롯한 가사 일을 열심히 해서 받은 수당이기에 약간의 FLEX는 충분히 용인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마트 식품 코너를 한 바퀴 돌고 나와 영수증에 찍혀 있는 금액을 보면 수당의 20% 이상은 한 번에 소비되어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아깝지 않다. 그만큼의 재미는 충분히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돈 쓰는 일을 언제나 재미있다. 버는 건 힘들고 괴롭지만 쓰는 건 행복하다.


더 많이 쓰면 더 많이 행복해질 것 같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힘들고 괴로운 돈 버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점이 슬프다.


 - 옆집 아저씨에게 -

돈을 번다는 것과 쓴다는 것 아저씨는 어떤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전 잘 쓰는 것에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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