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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Aug 13. 2021

주부생활 권태기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휴직 후 가족들 삼시세끼 차리기, 설거지, 빨래, 청소, 숙제 검사, 씻기기 등 수천 가지 집안일을 주업으로 삼은 지 6개월이 돼가고 있다. 처음 3개월은 정말 열심히 했다. 주부 생활과 허니문 기간이었다고나 할까. 매일매일 유튜브를 보면서 살림에 도움 되는 게 무엇인지 어떤 간식을 만들지에 대해 공부하는 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짧은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가 지금은 권태기가 온 것 같다.


<권태기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이라고 나와있다. 정말 내 상태를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


힘들다. 날씨는 덥고 습하고, 코로나로 맘 편히 집 밖을 나갈 수도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방학중인 아이들과 부대껴야 한다. 잘 놀다가도 싸우고, 싸우다가 울고, 울면 달래줘야 하고, 달래 놓으면 잠깐 좋았다가 다시 반복 반복.


짜증 난다. 열대야로 잠을 잘 못잖든, 냉장고가 텅텅 비었든, 뭐가 있든 없든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차려내야 한다. 너무 귀찮고 먹기도 싫다. 난 안 먹고 싶은데 딸애는 6시에 눈을 뜨자마자 "아침 뭐 먹어?"라고 묻는다. 어느 날은 너무 짜증이 나서 앞으로 "뭐 먹어?"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아빠가 알아서 차릴 테니깐 물어보지 마"


귀찮다. 로봇청소기가 청소를 다 해준다. 그리고 식기세척기가 설거지를 다 해준다. 또, 세탁기가 빨래를 다 해주고, 건조기가 빨래를 다 말려준다. 그런데도 귀찮다.


로봇청소기가 잘 지나다닐 수 있도록 바닥에 있는 모든 것들을 모두 정리해서 위로 올려야 한다.


식기세척기에 넣기 전 그릇들을 간단하게 세척하고 차곡차곡 잘 집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큰 냄비나 반찬통은 직접 씻어야 한다.


세탁기를 매일 돌려야 한다. 색깔과 재질로 나눠서 돌려야 한다. 세탁기가 할 일을 다 마치면 잘 털어서 건조대에 널어놓는다. 비가 안 올 때는 건조기를 잘 쓰지 않는다. 테라스에 널어놓는 게 더 잘 마르기 때문이다. 잘 마른빨래는 아내 것, 내 것, 딸 것, 아들 것 나눠서 이쁘게 갠다.


하기 싫다. 장마가 지나고 해가 쨍쨍하면 마당의 풀들이 순식간에 사람 키만큼  자란다. 한 낮엔 너무 덥기에 아침 차리기 전 새벽 5시쯤 예초기를 돌린다. 땅에 있는 돌이 튀어 오르기에 긴 옷을 입고 보호 안경을 쓰고 장화를 신고 일을 해야 한다. 새벽이어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힘들다. 힘들다 말하며 거실 바닥에 누워있는 날 보면 아내가 늘 하는 말이 "난 이걸 12년 동안 했어"이다. '예초기는 12년 동안 내가 했는데'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어떻게 이걸 너는 12년 동안 했냐. 난 12개월도 못 채울 것 같다. 너 정말 대단하다. 존경합니다".  라며 가족들 기분 맞춰주는 일까지 하고 나면 지쳐서 밤이 되면 기운이 쭉 빠져 쓰러지듯 잠이 든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복직일이 다가오는 건 너무 싫다. 그런데 주부일을 감내해야 하는 남은 날들이 긴 것도 싫다.


다 힘들고 다 귀찮다. 주부생활 권태기인가 보다.라고 하기엔 6개월은 같잖고 웃기기도 해서 민망하다. 

그래도 지금은 그냥 그런 걸로 해야겠다. 권태기는 권태기이니깐.


- 옆집 아저씨에게 -

혹시 권태기 극복 방법을 아시나요? 알면 저 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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